[Review] 공생을 거부하는 인류의 결말은 - 연극 ‘용의 아이’

글 입력 2023.07.2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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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고전극장, 고전 문학을 연극의 언어로


 

올해로 10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산울림 고전극장>은 고전 작품을 연극의 형태로 접할 수 있도록 기획된 소극장 산울림의 레퍼토리 프로그램이다. 매년 주목받는 신진 연출가와 배우들과 함께 고전 문학을 다채로운 연극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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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혈우

 

 

2023년 <산울림 고전극장>의 주제는 “고전문학, 이야기의 기원을 찾아서”이다. 문학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 태초부터 존재해왔던 신화와 우화, 민담과 설화에 주목한다.

 

올해 산울림 고전극장의 첫 무대에 오른 작품은 극단 혈우의 <용의 아이>. 고려시대 삼별초의 신화적 전승을 기반으로 하여, 삼별초 항쟁 최후의 주역인 ‘김통정’의 일생을 신화극으로 재구성한 무협 활극이다.

 

 

 

괴물로 죽게 될 운명, 김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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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순간 부모를 여의고 홀로 남겨진 ‘김통정’. 몽골군과 맞서 싸우다 쫓기는 신세가 된 부모는 김통정을 용의 동굴 안에 숨기고 최후를 맞이한다. ‘인간이 아닌 괴물로 죽게 될 운명’이라는 용의 예언 속에 태어난 김통정은 온 몸의 흉측한 붉은 반점과 남다른 괴력을 지닌 소년으로 자라난다.


힘을 숨긴 채 살아가던 김통정은 어느날 도적떼로부터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처음으로 자신의 힘을 드러내게 된다. 괴력을 가졌다는 김통정에 대한 소문은 결국 몽골군에게까지 가닿게 되고, 김통정이 몽골대장군의 목을 벤 김천지의 숨겨진 아들임을 알게 된 이들은 대대손손 가문을 멸족시키기로 결심한다.

 

고려 역시 몽골과의 화친의 의미로 김통정을 함께 잡아들이기로 하고, 김통정의 양아버지와 일가 모두 처형당하고 만다. 모든 사태의 책임자인 고려 왕실의 장군 김방경을 향한 분노에 휩싸인 김통정. 삼별초와 손을 잡은 김통정이 본격적인 복수의 길을 걷게 되며 극이 전개된다.

 

 

 

공생의 가치를 저버린 인간사의 결말은



극의 전반을 이끌어나가는 두 주인공, 삼별초의 김통정과 고려 장군 김방경은 대척점에 서서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지만, 한편으로 거울에 비춘 듯 서로를 닮아있다.

 

김통정은 몽골군과 고려 왕실의 손에, 김방경은 무신정권의 권력 암투에 휩쓸려 가족을 잃었다. 남은 것이라곤 손에 쥔 칼자루 하나밖에 없는 두 사람. 오로지 서로를 향한 복수만을 남은 생의 원동력으로 삼고 살아간다.

그러나 극의 후반부에 다다랐을 때, 연출가는 김방경의 입을 빌어 두 주인공이 꿈꿔왔던 건 복수가 아닌 ‘화풀이’에 불과했다고 소리높여 외친다. 더러움을 더 큰 더러움으로, 피를 더 짙은 피로 덮어내는 게 얼마나 무용하고 무의미한지 곱씹게끔 한다.

 

내가 거울 앞을 떠나지 않으면 거울 속의 나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듯, 평생 서로를 마주본 채로 칼 끝을 겨눠왔던 김통정과 김방경. 김통정은 지난 삶에 대한 화풀이보다 지금 이 순간 곁에 남아 있는 이들과 함께하는 게 더 가치롭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비로소 거울로부터 등을 돌린다.

 

용이 되어 동료들과 백성들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고 김방경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태어날 적 예언처럼, 김통정은 결국 괴물의 모습으로 인간의 칼에 맞아 스러졌다.


끝까지 살아남은 건 고려 장군 김방경지만, 홀로 남은 그의 마지막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나레이션으로 흘러나오던 ‘공생을 거부하는 인류, 공생을 바라는 비인류’라는 대사가 뇌리에 남는다.

 

공생의 가치를 저버린 인류의 역사는 어쩌면 매 순간 멸종의 역사가 아니었을까. 칼과 총으로 쓰여진 인간사의 결말은 아마도 김방경의 마지막 모습을 닮아있지 않을까. 천 년 전 시대를 다루고 있는 <용의 아이>는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 듯 하다.

 

 

[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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