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타인의 고통으로 향하는 여정- 다크 투어, 내 여행의 이름 [도서]

비극을 기억하고자 하는 여행
글 입력 2023.07.22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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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받아들이는 태도


 

세상에 살아가면서 아름다운 것, 좋은 것만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당연한 본능이다. 나의 마음을 더 잔잔하게 어떠한 다른 갈등을 채워 넣지 않고 무던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본능은 때론 다른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에 관한 이야기에 잠시나마 흔들렸다가도 다시 자신의 삶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러나 타인의 비극과 아픔을 스치는 생각으로도 마음에 담지 않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잊지 말아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세상에 크고 작은 비극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였으며 기억하기를 택한 사람들로 인해 비극의 흔적은 세상에 남겨져 왔다.


어두운 흔적에 눈길 한 번 주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기꺼이 그 흔적에 시선을 두고,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 순간에 대해 말해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이면서 기꺼이 다른 시간과 사람들, 나라에 있었던 비극을 마주하려는 이들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평면 표지.jpg

 

 

 

어두운 역사를 마주하는 여행, 다크투어리즘


 

다크투어리즘이라는 용어는 인간사에 남겨진 죽음과 비극이 담긴 역사적 장소를 여행하는 모든 형태를 명명한다. 개인의 재미나 호기심을 충족하는 범위를 넘어서 특정 장소에서 있었던 전쟁이나 학살 등의 사건을 그곳에 자리한 기념관, 묘지, 또는 박물관을 방문하면서 배우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여정을 소개하기에 앞서 ‘다크투어리즘’이라는 용어 대신 개인으로서 진행한 여행기를 서술하기에 ‘다크투어’라는 용어을 사용했다고 소개한다. 


6번의 다크 투어, 학살의 아픔을 간직한 곳들로 여행기를 시작하며 저자는 말한다. “모든 학살의 아픔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고, 그렇게 내 여행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 책의 첫 장 아르메니아로 이어진다.” 1차세계대전에 발생한 150만 명이 희생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과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캄보디아 대학살, 보스니아 내전,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군부정권 탄압, 그리고 제주의 4.3 사건까지 저자는 비극의 역사가 자리한 곳곳에서 발을 디디며 마주했던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행의 일상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자리한 풍경, 그리고 각 비극적인 학살의 배경까지 저자는 담담한 어조로 풀어낸다. 여러 문헌의 자료를 인용하면서 학살이 일어나기까지와 그 후의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자신이 마주한 것들에 대한 감상을 덤덤하게 그려내는 저자로 인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또는 생소했던 대학살의 역사와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잔잔하면서도 무겁게 전달된다.

 

 

 

비극을 겪은 이들과 나의 얼굴


 

타인의 비극은 나의 마음에 쉬이 닿지 않는다고 말했듯, 다른 시간과 다른 장소에서 어두운 역사는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가까이 느껴지지 않는 편이다. 또는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 일어나지 않거나 다른 일이라고 여기며 마음속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보다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 또한 다크 투어로 방문했던 여러 장소에서 “마음 한편으로 열심히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 두었던 것”이라고 자신의 마음을 묘사한다.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는 것을 넘어서 심지어 죽음을 생산하는 과정의 학살에 희생당한 이들의 기록과 사진이나 유골 같은 실제 모습을 마주했을 때마다 그들의 종교가, 얼굴이, 시대 상황이 우리와 달랐기에 그 비극을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보다는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려고 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는 오래된 격언처럼, 세세한 계기나 배경은 다를지언정 비극 또한 시대와 장소를 불변하고 우리 가까이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스칠 수 있는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은 말을 하는 이들에게도 말이다.

 

 

 

학살에는 어떠한 정당성도 없다


 

“봉기, 항쟁,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 온 제주 4.3은 아직까지도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다. 분단의 시대를 넘어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그날, 진정한 4.3의 이름을 새길 수 있으리라” 제주 4.3 평화 기념관에 자리한, 글이 새겨지지 않은 백비의 안내판에 적힌 문구야말로 4.3사건의 비극을 함축하고 있다. 반세기가 지나서야 국가원수의 사과가 있었던 만큼, 오랜 시간 동안 입에 오르는 것도 금기로 여겨졌던 것이 희생자와 유족에게는 아픔으로, 나를 포함해 다른 이들에게는 4.3사건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는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민족의식과 사회의식을 키운 이들을 중심으로 도내 행정을 이끌었던 인민위원회와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우익 세력에 힘을 실어주고 본토에서 응원 경찰을 파견한 미군정, 미군정청에 등록된 합법 정당이면서 단독선거 반대 운동을 주도한 남로당,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서 발발한 본토에서 들어온 경찰과 극우단체의 좌익세력 척결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학살은 너무나도 한국적이면서 앞서 언급한 제노사이드를 떠올리게 한다.

 

각 비극의 시작을, 그를 정당화했던 이들의 망언을 다시 되짚어 보다가 4.3사건으로 돌아와 본다. 제주도에서의 학살을 일삼은 이들은 좌익세력 척결을 명분으로 삼았고 시간이 흐른 후 작성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은 좌익운동이 제주에서 활발했던 것은 사실이나 인민위원회나 남로당 인사 모두가 좌익단체 또는 정치세력이 아니었다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오늘날의 진상조사보고서에 “제주도에 칠해진 붉은색”을 지우려는 노력이 있음을 짚어내며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때때로 사람들이 떠올리지 못하는 것을 언급한다. 학살된 모두가 그러한 “빨갱이”였다고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서도 무참히 살해당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어떠한 학살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외면하지 않고 직시해야


 

우리에게 알려진, 그리고 알려지지 않는 학살과 희생의 시간이 지나 역사는 계속 흘러왔다. 시대와 장소는 다를지언정, 각자의 비극의 이야기는 어쩐지 닮아있다. 다르지만 어딘가 닮아있는 어두운 이야기들은 모든 것이 끝난 뒤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일을 살아갈 사람들에게 말한다. 언제든 어디서든 어떻게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라고.


저자가 소개한 6곳의 장소에서는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이들과 그 흔적이 자리한다. 기념관이나 박물관뿐 아니라 나치의 잔혹함을 서술했던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와 독재정권에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이 할머니 세대가 되어서도 거리를 행진하는 남미의 “오월 광장의 어머니들”, 캄보디아 S-21 교도소에 수감된 15,000명 중 살아남은 7인 중 한 명이자 그 교도소였던 제노사이드 박물관에 방문객들을 만나기 위해 자리하는 부 멩과 같은 사람들 그 자체가 학살이 인류사에 자리했음을 보여주고 기억하게 하는 존재이다.


저자는 자신이 해 온 다크투어는 잊힌 얼굴을 마주하고 잊힌 이름을 부르며 이미 사라져간 헤아릴 수 없는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일이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결국 하나로 연결된 이 6번의 제노사이드를 통해 우리는 학살의 역사를 기억함과 동시에 타인의 슬픔과 불행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것임을 다시금 되짚을 수 있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교훈이자 비슷한 모습의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과정이다.

 

 

“그러니 아우슈비츠는 가자 지구다, 킬링필드는 제주다, 혹은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다, 라는 인식이야말로 이 고통스러운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값진 교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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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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