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니체를 사랑하는 무용가 - 펜으로 쓰는 춤

김윤정 작가의 <펜으로 쓰는 춤>
글 입력 2023.07.2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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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으로 쓰는 춤이라니.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기고할 때마다 제목과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이다 보니, 함축적이고 인상적인 요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카프카, 카뮈, 사르트르, 니체를 사랑하다가 결국은 책을 출간한 작가. 동시에 춤을 업으로 삼고 있는 작가와 완벽하게 어울리는 타이틀이었다.

 

동시에 심상적으로도 매력적인 제목이다. 만년필이나 붓처럼 특징적인 펜들이 도화지 위에서 활보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다. 특히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손에 들린 붓이 그렇다.

 

인상 깊은 센스에 감명받다가, 문득 아트인사이트에 지원서를 낼 때 적었던 자기소개 문구가 떠올라서 민망해졌다. 「자신을 5~7 단어로 표현해 주세요.」 밤을 새우는 것이 취미라며 올빼미 타령이나 했다. 이처럼 자신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 스스로를 강렬하게 요약할 수 있을까?

 

302페이지의 책을 덮고 나서야 그 답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와 친해질 필요가 있다.

 

 

 

엄마의 시골에서 까 먹은 사과

「1장 무대와 인생 - 삶이라는 예술에 대하여」


 

사실 현대무용이나 무대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렇기에 첫 장을 넘기며 각오 아닌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잘 모르는 내용이 나와도 일단 읽자. 1학년 1학기 첫 수업 날. 수학 선생님이 들어오시는 걸 보고 비장하게 교과서를 펴는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항상 수업만 하시는 건 아니다. 볕이 좋은 어떤 날에 첫사랑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하고, 비가 내리는 날에 무서운 이야기를 해 주시기도 한다.

 

작가는 덤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29페이지부터 전라도 영암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어머니의 얘기가 나온다.


 

엄마의 바로 이웃집에 사시는 할머니는 97세이다. ... 할머니는 늘 투박한 사투리에 주어가 빠진 상태로 말씀하시면서 큰 소리로 웃으신다. 그러면 엄마와 나도 같이 웃는다. 할머니가 가시고 나서 "엄마, 뭐라고 말씀하신 거야?" 하고 물으면 그러면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도 몰라"라고 하신다. (33-34p)

 

 

지극히 사적인 동시에 공감이 가는 내용을 보며 작가와 일방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상대방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면 일단 웃으며 긍정하고 보는 것이 필자의 오랜 습관이다. 그것이 질문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렇게 한적한 시골 생활과 자신에 대한 사유를 지나 책의 흐름은 소셜미디어의 위험성으로 넘어간다.

 

처음엔 소통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결국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된 소셜미디어가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 쟁점이었다. 또한, 체계적인 규칙과 시스템을 구축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사과.jpg

 

 

작가가 작업한 공연인 <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 역시 소셜미디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작품이다. 인류 역사에서 '애플'로 상징되는 사건들을 주제로 한 내용으로,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뉴턴의 사과, 현대사회의 사과(기업 Apple)를 소재로 하여 인류의 욕망과 행복을 되짚어 보고 있다.

 

덤덤하게 설명했지만, 사실 공연에 대한 내용을 보고 조금 놀랐다. 당연하게 'apology'의 사과를 생각했는데 스티브 잡스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했고, 선악과에서부터 뉴턴, 아이폰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참신했다.

 

 

 

함성이 극장을 뚫고 들어왔던 멕시코 공연기, 그리고 고정관념

「2장 친밀한 이방인 - 독일살이와 세계 여행기」


 

 

"... ... 인도 출장을 갔었는데 내 인생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야." 아, 우연이라 하기엔 하필 인도행 비행기를 타러 가는 아침, 길에서 들리는 첫 대화가 그런 소리라니. (129p)

 

 

타이밍이 절묘한 순간이었다. 시트콤 같은 상황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작가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지만, 도착해서 직접 마주한 인도는 꽤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그는 마더 테레사의 집을 방문하고, 인도의 전통 춤 오디시를 배웠다. 특히 콜카타에서 보낸 열흘은 꿈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사건은 멕시코 쪽에서 발생했다.

 

 

멕시코.jpg

 

 

작가는 멕시코에 머물며 <우먼, 보디>라는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진행했다. 과달라하라에서의 첫 공연 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트린 것은 전국 곳곳에서 이루어진 시위였다.

 

공연장 밖은 슬픔과 비탄에 빠져 있었다. 교사 임용 차별에 반대하며 시위하다가 실종되었던 43명의 사범대 학생이 모두 사체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연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결국 시위자들과 한뜻이라는 의미로 한쪽 팔에 검은 리본을 달았으며, 공연 시작 전 시인 호르케가 혁명과 관련된 자작시를 낭송했다고 한다. 거리의 함성이 극장 안을 뚫고 들어와 효과음처럼 깔렸을 정도라고 하니 당시의 분위기가 눈에 그려지는 듯 하다.

 

동시에 멕시코는 아름다운 나라였다. 


 

달리는 차 창밖으로는 광활한 테킬라 들판, 온갖 선인장들이 자라는 사막, 반짝이는 호수 등 웅장한 자연경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기후에 풍요로운 자연을 가진 이 나라는 대체 왜 그토록 가난하며 끝없는 사회적 문제들이 산재해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들이 순간순간 스쳤지만, ... (153p)

 

 

작가를 통해 접한 멕시코는 분명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공고히 할 정도로 살벌하지도 않았다.

 

즉, 멕시코는 거대한 슬럼가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상낙원인 것도 아니다. 입체적이고 다양한 면모를 가진 나라를 보며 대상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지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햇살 예찬, 죽음의 사유

「3장 나를 채우는 조각들 - 보고 읽는 것에 대한 단상」


 

3장은 작가가 보고 느낀 것들을 위주로 전개된다. 쿠사마 야요이의 회고전과 프랑스 영화에 대한 감상이 이루어졌다. 동네에 있는 아주 특별한 힙스터 카페도 소개해 줬다. 마치 잠들기 전에 침대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었다.

 

 

햇살.jpg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죽음'에 관한 파트였다. 앞장에서부터 작가는 죽음에 관해 이야기했다. 가깝던 가족의 사고를 설명하기도 했고, 존경하던 스승의 작고를 애도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7월 23일 작고하신 육완순 선생님의 부고를 듣고,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사랑하는 윤정"이라고 다정하게 불러주시던 선생님과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열어보았다. (70p)

 

고인들과의 마지막 순간은 늘 그랬다. 마지막일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그 순간을 어설프게 만나고 헤어졌다. (73p)

 


이처럼 작가의 삶에서 큰 영향을 줬던 이별과 죽음에 대한 사유가 3장에서 비로소 마무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인생이 무한하다면 더 이상 삶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 그러므로 죽음을 이해하고 끝을 이해한다는 것은 삶을 이해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의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 죽음의 두려움을 마주하면 역설적이게도 살아 있는 날들을 소중히 향유하게 된다. (248-249p)

 

 

삶은 유한하기에 가치 있다. 어쩌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제도 필자는 키우는 강아지가 자다 깨서 부어있는 사진을 찍었다. 현재가 재현될 수 없음을 알기에 다양한 수단을 통해 '기록'하며 순간을 붙잡아 보는 것이다.

 

 

 

'펜으로 쓰는 춤'의 감상을 마무리하며


 

김윤정 안무가는 "공연예술은 그 순간적인 존재함과 사라짐이 있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15p)"이라고 이야기했다. 공연은 분명 영화나 음악과는 달리 땀과 눈물이 모두 증발하고 무대가 텅 비어버리는 순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김윤정 작가는 흘러가는 시간을 펜으로 기록하여 흰 종이 위에 붙잡아 둔다. 지금은 멀어져 버린 친구에 대한 기억부터, 존경하던 스승과의 이별에 대한 경험, 혹은 사소한 일상에서 감상까지. 모든 것이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달되고, 유한한 삶 속에서 무한하게 남는다.

 

어떤 노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어떤 추억은 기록됨으로써 소중해진다.

 

따라서 「펜으로 쓰는 춤」을 읽으며 어느 것을 보내주고, 어느 것을 잡아둬야 할지 고민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노력의 순간을 어떻게든 보존하고 싶어서 애를 쓰기도 하고, 소중한 순간을 깨닫지 못하고 놓쳐버리기도 한다. 

 

가령, 현실을 버텨내기 위해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영광을 붙잡는 일이 그렇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목소리를 녹음할 걸 그랬다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길 추천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먹은 이국적인 음식이 취향에 맞을 수도 있고, 친구를 따라 간 헤비메탈 공연에서 신나게 뛰어놀 수도 있다.

 

따라서 많은 경험을 하며 스스로를 알아갈 필요가 있다. 작가는 낯선 나라로 여행을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기존에 머물던 곳과 전혀 다른 장소에 덩그러니 놓여서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느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이처럼 연고가 전혀 없는 낯선 여행지로 무작정 떠나볼 수 있다. 물론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좋다. 음악 스트리밍 어플의 '랜덤 재생' 버튼을 누르거나, 전혀 관심이 없던 장르의 영화를 시도해 보는 것도 의미 있다.

 

그렇게 자신과 친해지고 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어떤 것을 남겨두고, 어떤 것을 소진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때가 되면 아래의 질문에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5~7 단어로 표현해 주세요.」

 

 

[이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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