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가 그림이 되는 마법 -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에피소드 2

글 입력 2023.07.0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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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달튼 ep.2)포스터_전달용-01.jpg

 

 

최근 들어 영화를 많이 보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본 영화를 어떻게 기록해야 기억에 오래 남을지 고민하곤 한다.

 

책은 원래부터 글로 이루어져 있으니 글로만 기록해도 기억에 잘 남지만, 영화는 글만으로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포스터나 스틸컷, 영상클립 등 영화를 좀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이미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영화를 그림으로 기록하는 이들이 종종 부럽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 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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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맥스 달튼도 자신이 본 영화나 드라마 시리즈, 음악 등에 영감을 받아 작품 활동을 한다. 우리에게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오마주한 동명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2021년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던 그가 두 번째 개인전 ‘영화의 순간들’로 돌아왔다. 63아트에서 열리는 본 전시는 ‘영화의 순간들’, ‘웨스 앤더슨 컬렉션’, ‘맥스의 순간들’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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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막 ‘영화의 순간들’에서는 맥스 달튼이 사랑한 영화를 장르와 시대에 상관없이 잔뜩 만나볼 수 있다. 첫 전시가 대중적인 취향의 영화 중심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작가의 좀 더 마이너한 취향의 영화가 중심이 된다는 설명이 있어서 겁을 먹기도 했다.

 

막상 전시장에 들어서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킬빌>, <이터널 선샤인>, <제임스 본드 시리즈> 등 영화를 평범하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본 적은 없어도 들어는 봤을 작품이 대부분이라 무리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수많은 장면으로 구성된 영화를 딱 한 장의 멈춰 있는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 영화의 가장 상징적인 요소를 작가가 선택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0에서 창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맥스 달튼의 작품에서도 각 영화의 무엇을 표현할 것인지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는 듯했다.

 

특히 <새>와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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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의 영화 <새>에서 영감을 받은 ‘새’는 하늘을 나는 새들이 해골 형상을 이룬 그림이다. 영화의 불길한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이 영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별다른 설명 없이도 <새>를 떠올릴 수 있을 작품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의 경우 세로로 긴 캔버스 아래에 유인원에 가까운 원시시대의 인간이 있고, 그 위로는 망망대해 같은 우주가 펼쳐져 있다. 완전히 분리된 공간처럼 보이는 원시시대 인간의 세계와 우주 사이에는 인간이 하늘을 향해 던진 뼈다귀가 있다.

 

실제 영화에서도 명장면으로 꼽히는 장면으로, 원시시대부터 인류가 우주에 진출한 미래까지 아우르는 이 영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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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막 한쪽에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영감받은 작품들만 모아두기도 했다. 한국 전시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작품들이라고 한다. <마더>, <살인의 추억>, <설국열차>, <옥자>, <괴물>, 그리고 가장 최근작인 <기생충>까지. 익숙한 한국 영화의 한 장면을 낯선 독일 작가의 눈을 통해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발걸음을 멈췄던 건 <설국열차>와 <기생충>에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을 볼 때였다. ‘설국열차’의 경우 미니어처 기차 모형 양면의 칸마다 그림을 그려 넣었고, ‘기생충’은 박사장네 가족이 사는 집의 지하층부터 3층까지를 해부도처럼 섬세하게 그렸다.

 

맥스 달튼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깔끔하고 균형 잡힌 구도가 봉준호 감독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계급격차와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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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막 '웨스 앤더슨 컬렉션'은 웨스 앤더슨의 두 영화 <그랜드 부다패스트 호텔>과 <프랜치 디스패치>를 오마주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맥스 달튼이 책 『웨스 앤더슨 컬렉션』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렸고, 우리도 그의 대표작으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떠올린다는 걸 생각하면 작가와 관람객 모두에게 의미 있는 순서이다.

 

제1막에서는 영화가 각각의 그림 속에만 담겨 있었다면, 제2막에서의 영화는 그림 밖 현실로 나와 관객을 맞이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예를 들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주제로 한 작품이 모여 있는 전시 공간의 벽지와 인테리어는 영화 속 호텔의 모습과 닮았다. 영화를 보다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섹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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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세션인 제3막 ‘맥스의 순간들’에 들어서면 이전까지와는 달리 음악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그림들도 제1막, 제2막과는 결이 다르다. 앞선 작품이 영화의 특정 요소 또는 장면을 포착해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제3막에서는 영화가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맥스 달튼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유명한 화가들의 작업실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서 그린 <화가의 작업실> 시리즈, 직접 그려본 좋아하는 뮤지션의 LP 커버, 그리고 첫 번째 그림책 작업이었던 『외톨이 공중전화기』까지. 영화 뒤에 숨어 있던 맥스 달튼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영화 그림으로만 알고 있던 그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시대의 작가임을 실감하는 순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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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展>은 한 편의 영화를 알기 위해 영화 소개글을 읽거나 직접 영화를 보는 방법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전시였다.

 

사실 영화를 많이 아는 편이 아니라 전시를 충분히 즐기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기우였다. 원래 알고 있거나 좋아하는 영화가 나오면 영화를 보던 순간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즐거웠고, 모르는 영화에서 탄생한 작품을 볼 때는 그 영화가 궁금해지는 경험을 했다. 어떤 영화와는 이런 식으로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 사람이 같은 영화를 보고 그림을 그린다 해도 결과물은 다 다른 모습이다. 그 그림에는 그린 이가 그 영화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봤고 어떻게 영화를 해석하는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단순히 그림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서 작가가 같은 영화를 나와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봤는지 확인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전시를 보고 오니 내가 원래 잘 안다고 생각했던 영화도 다시 보고 싶어진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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