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편집하는 삶을 잠시 벗어나 [사람]

글 입력 2023.07.06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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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삶


 

내 고등학교 생활은 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삶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각 과목 교실을 찾아 옮겨 다녔고, 내 마음을 놓아둘 자리를 찾아 정처 없이 헤맸던 기억이 난다. 수많은 책상 중 그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어 SNS 앞에 꽤 오랜 시간 동안 눌어붙어 있었다.

 

SNS에 나의 시선을 담은 글을 올리는 일은 내가 있을 자리를 만드는 일이었고, 삶의 규칙을 일구는 행위가 되었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가서 가방을 풀어놓고 필기구를 익숙한 위치에 배치하듯 삶의 단편을 떼어내서 공유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졌다.


그렇지만 시험을 이유로 SNS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니 SNS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SNS로 안부를 주고받던 지인들이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SNS가 예전같이 편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내게 변화가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맞다. SNS를 떠난 자리에서 SNS와 함께하던 내 모습을 깊게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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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하는 인생을 살며 잃어버린 문장


 

자신의 삶을 SNS에 공유하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삶의 일부를 도려내어 전시하는 것이다. 행복한 삶만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SNS에 올릴 사진과 글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편집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 과정에서 SNS 바깥의 삶은 저 멀리 사라지게 된다.


평소에 B면을 애써 숨기지 않는 편이다. 그런 사람이어도 SNS 프레임 이외의 시간을 무제로 남겼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랬다. 삶을 지탱하는 대부분의 시간이 무제라는 점을 생각해 보자. 매일 신문에 실리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심심한 일상을 살아가지 않나. 담백한 삶이 있기에 나의 하이라이트가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잠시 잊어버렸다. 내 손으로 나의 삶을 소외시킨 셈이다.


사실 그 빛나는 하이라이트를 정하는 데 있어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한동안 삶의 방향이 불확실했을 때 제법 좋아 보이는 콘텐츠 사이에서 한참을 헤매며 내 삶의 궤적을 모조리 부정했던 적도 있었다. 저마다 빛나는 세상에서 나의 사소한 성공은 상대적으로 어두운 빛이었으니.

 

그리고 SNS에 나의 언어를 잃어버렸다. 내가 있을 자리를 만들기 위함이었지만 정작 안락한 자리가 생기니 긴 글을 쓰기가 힘들어졌다.심지어 지금은 조금 불편해졌다. SNS 환경을 전제로 글을 쓰면서 짧은 글에 익숙해졌고, 글이 엉망이 되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그 때 알았다. 짧은 글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긴 글을 쓰지 못하면서 짧은 글에만 집중하게 되면 그 때는 문제가 생긴다고. 


부끄럽지만 나는 이미 내가 전달하고 싶은 이미지를 단 한 줄도 표현하지 못했을 때, 글을 쓰기보다 사진 하나로 모든 표현을 대신해 버린 적이 있다. 이런 일이 몇 번 더 생기고 나서는 글을 쓰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아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던 적도 있다. 물론 나에게 이용된 사진은 죄가 없다. 다만 충분히 내가 전달할 수 있는 세밀한 표현을 사진이 주는 느낌에만 의존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글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나서도 SNS에 내 시선을 굳이 올려야만 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을까?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 때 나는 단발적인 탄성과 환호로 소통하는 공간에서 본인만의 호흡으로 일상을 공유하기란 원래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다시 돌아왔다. 전화번호 대신 SNS 계정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아지기도 했지만, SNS에는 여전히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 그 자리를 쉽게 떠날 수 없었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대신 SNS가 나의 언어를 대신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했고, 실행하고 있다.

 

익숙했던 그 자리를 먼저 정리했다. 다시 보지 않는 사진이나 괜히 SNS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기억은 모두 지우고, 대신 그 자리에 지금의 내 수준보다 조금 버거운 양의 글을 다시 써 보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연락은 SNS 대신 다른 연락 수단을 활용하며 SNS와 나의 거리감을 적당히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니 나는 당신들이 어떠한 언어로 살아가는지 알고 싶다. 저마다의 호흡으로 잘 숨쉬고 있는지, 혹은 잔잔한 삶의 흐름을 이어나가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지.

 

 

[이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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