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발견하는 힘 [미술/전시]

요시다 유니 전시회 <Alchemy>
글 입력 2023.07.08 11:5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요시다 유니는 일본의 예술감독이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란 이게 전부였다.

 

그녀의 개인전이 한국에서 열린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위의 지인들은 SNS 리그램으로 기대감을 보였다. 특히, 대부분의 포스팅에는 전시회의 메인 이미지인 모자이크 과일이 작품이 대표 이미지로 걸려있었다.

 

여러번 봐도, 볼 수록 여름철 어디선가 반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신선함이 내게 불었다. 마치 그래픽으로 한땀한땀 오려붙인 것 같은 이 작품은, 사실 아날로그 수작업이라는 사실을 접하던 날, 어떻게 하면 저런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지 그녀의 생각과 작업물이 더욱 궁금해졌고, 그길로 요시다 유니의 전시회에 다녀오기로 했다.

 


모자이크 햄버거.jpg

 

 

전시회는 크게 세 가지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파트, FREEZE DANCE에서는 전시회의 메인 이미지기도 했던 모자이크 작품을 비롯해 요시다 유니의 수작업이 깃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생명력을 지닌 꽃과 과일의 시간적 유한성을 뛰어넘어 영원의 순간으로 담아낸 자연물 시리즈는 아날로그 수작업의 절정이라고 평가된다.

 

다음으로 HIDDEN PICTURES에서는 브랜드와 아티스트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작품들을 구현한다. 섬세한 소품 선정과 배치가 인상 깊은 섹션으로 그녀만의 개성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PLAYING CARDS에서는 2023년 그녀의 신작을 볼 수 있는 섹션으로 트럼프 카드들의 디자인을 섬세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재현했다.

 

요시다 유니의 작품들은 모두 ‘독창적’이다. 그리고 그 독창성은 아래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사물의 재정의


 

요시다 유니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사물을 다시 정의하는 힘을 가졌다. 바나나의 길쭉한 모양을 사람의 발처럼 보이도록 신발을 신기거나, 페인트 붓의 모(毛)가 있어야 할 자리에 꽃이 수만 송이 핀다.

 

사물의 속성을 재정의하기도 한다. 녹을 수 ‘없는’ 껍질이 녹을 수 ‘있다’는 가정으로 과일 껍질을 조각해 흘러내리는 이미지를 표현한다.


이렇듯, ‘없다’를 ‘있다’로 바꾸는 과감함은 사물에 대한 해석뿐만 아니라 작품을 이루는 형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형태의 재발견


 

요시다 유니의 작품은 보이지 않는 형태를 보이는 것으로 구현한 점이 눈에 띈다.

 

특히 척추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여성이 등을 보이고 자신을 감싸 안은 채 오롯이 앉아있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과일 ‘사과’를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해준다. 가녀린 허리선은 한입 베어 문 듯한 사과의 옆면을, 도드라진 척추는 사과의 심지를 떠올리게 한다. 모델의 빨간색 의상은 더욱 사과로의 연상을 돕는다.

 

 

요시다 유니 2.jpg

 

 

의도적으로 사물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쉽게 특정 사물을 추론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녀가 사물과 사람이 공유하는 형태적 교집합을 오감으로 발견해 도출했다는 점을 뜻한다. 또 서재에 꽂힌 수많은 책으로 사람의 얼굴을 표현해 새로운 형태의 사람을 만들어 내기도 하며 화분 모양의 흙으로 전례 없던 새로운 화분을 도출해 낸다.

 

 

요시다 유니 1.jpg

 

  

또 작품의 형태는 근거리와 원거리로서의 의미도 다르다.

 

요시다 유니가 참여한 일본 드라마의 포스터를 가까이 들여다보자. 등장인물 뒤에 빼곡하게 쌓인 서류, 책더미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걸음 뒤에서 작품을 다시 감상해 본다면 서류 대신 인물이 글리치(주변이 지지직거리는 듯한) 효과를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작품은 가까이서 들여다보다 몇 걸음 뒤로 물러서 감상하면 미키마우스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하이힐과 사과가, 소녀의 배꼽 위에서 우연히 만나는 듯한 아름다움”

 

 

영화 ‘러브레터’의 감독, 이와이 슌지는 그녀의 작품들을 이렇게 칭송한다.


사뭇 난해해 보일 수 있는 말이나, 나는 그의 말을 이렇게 해석해 본다. 하이힐은 어떤 상업적인 사물을 뜻한다. 이를테면 요시다 유니에게 주어진 화장품과 브랜드 마케팅 캠페인 등이 그 예시가 되겠다. 그리고 사과는 비상업적이다. 그리고 주위에 만연한 사물이다. 따라서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저 과일로서의 의미에 그친다.

 

그때 요시다 유니는 때 묻지 않은 소녀의 상상력을 발휘한다. 이미 모두가 인지하는 관념 외, 그러니까 사과이기 전을 가정해 만연한 사물을 달리 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게 두 영역을 배꼽 위에서 데굴데굴 굴리는, 그런 영감의 힘으로 전례 없는 통찰을 자아낸다.

 

아름다움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그녀의 모습이 사뭇 대단해 보인다.

 

 

[박정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