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활활 타오르는 불보다 위험한 건 몰래 타오르는 불꽃이다 - 육쌍둥이

왔어 왔어 우리 왔어. 아비 죽고 우리 왔어!
글 입력 2023.07.0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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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육쌍둥이 포스터.jpg


 

서울의 한 빌딩 망루 불이 타오른다. 물을 아무리 부어도 꺼지지 않던 그 불은 고물을 줍는 한 사내에게 옮겨붙는다.

 

 

 

# 누가 좀 꺼줘요.. 내 마음의 불씨



육쌍둥이 공연사진_7.JPG

 

 

아르코 예술 극장에 발을 디뎠다. 혜화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이 극장에서 난 잔뜩 부푼 기대감을 안고 문을 열었다. 뜨거웠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배우들과 제작진들의 열정이 흘러넘쳐서 그런지 뜨거운 공간이 펼쳐졌다. 극장을 들어갔더니 육쌍둥이를 먹이고 키운 엄마가 막내인 조진내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마치 어미 새가 아기 새를 지치기 위해 그 주위를 맴돌며 나는 것처럼. 그녀는 점프를 하고, 기어다니고, 조진내의 땀을 닦으며 그의 주위를 원의 형태로 머물렀다.

 

조진내, 리어카에 올라가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던 육쌍둥이의 막내아들. 아이스크림을 계속해서 핥았다. 역시 조진내도 극장 안에 열기가 더웠나 보다.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먹던 조진내의 눈빛은 그저 공허했다. 엄마를 바라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아이스크림을 바라보며 행복해하지도 않았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다면 행복한 표정을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는 그저 아이스크림의 ‘차가움’이 필요했다는 것을 연극이 끝난 뒤 알 수 있었다.

 

연극이 시작되고, 육쌍둥이를 각각 소개하는 장면을 마주했다. 함화자, 이기라, 최고야, 신기해, 박수처, 조진내. 이름도 참 특이하고 또 유별나다. 우습게도 그들의 성격과 주관은 이름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그들의 성격을 바탕으로 작명을 했다고 할 정도로 그들은 자신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더 나아가서 관객석까지 다가와 호응을 강요했다. 함화자가 사 온 와인을 마시며 그들은 더 열심히 취해가고, 돌아가신 아버지 장례를 위해 모였던 육쌍둥이의 과거 회상이 시작된다.

 

 

육쌍둥이 공연사진_4.JPG


 

자신들을 끔찍이도 함부로 대했던 고물상 아버지. 친아버지라고 믿으며 평생을 곁에 머물렀지만, 육쌍둥이에게 그는 그저 커다란 활화산일 뿐이었다. 건드리면 터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터지는 그런 화산. 그렇기에 그 아버지 곁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조진내와 어머니뿐. 나머지 오쌍둥이는 모두 집을 가출해,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그런 육쌍둥이가 아버지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품었을까. 당연히 그러지 않았다. 관객들에게 죽은 아버지의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관객인 나는 그 험담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난 그들을 볼 때 그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처지와 금전적인 상황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그 환경이 안쓰러웠다.

 

육쌍둥이는 아니 오쌍둥이는 추후 자신의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해방감에 가득했다. 아..해방감이라니. 자신의 출처와 본질이 어디인지 깨닫지 못한 채 기쁨에 빠져 술을 마시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많은 감정을 느꼈다. 그들은 참 차게도 식었구나. 차게도 식어서 따스한 사랑과 감정을 모르겠구나. 박수처는 그냥 하염없이 웃었다. 정말 웃겨서 웃은 적인 있을까?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는 그녀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슬픈 감정으로 가득 차게 했다.

 

더 끔찍한 것은 차갑게 식은 오쌍둥이에겐 붉은 욕망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욕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얼굴의 붉은 자국은 점점 커져갔고 그 욕망은 단 하나, 유산으로 향했다. 유산을 얻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함화자는 자신이 첫째라서, 최고야는 자신이 가장 똑똑해서. 각자 이유는 다양했다.

 

하지만 더 웃픈 것은 조진내와 어머니에게 할당되어 있는 유산 금액까지도 그들을 포용하여 받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오쌍둥이에게 조진내와 어머니는 그저 돈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 욕망을 붉디붉었지만, 정말 차갑게 식었다.

 

 

육쌍둥이 공연사진_10.JPG


 

그러나, 조진내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는 달랐다. 화재로 인해 약속된 금액을 받지 못했던 육쌍둥이의 아버지는 홧김에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그리고 조진내도. 자신의 불행한 상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모두를 버리려고 했다. 뜨겁다.. 너무 뜨거워서 데일 것 같다. 결국 그 뜨거움을 조진내가 꺼드렸다. 그 도구가 칼이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러나 그 뜨거움은 식지 않고 옮겨붙었다. 조진내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의 노력에도 그의 뜨거움은 없어질 생각을 안 했다. 연극 내내 여기서 얘기하는 뜨거움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처음에는 욕망이라고 생각했지만, 오쌍둥이와 조진내 그리고 어머니의 뜨거움은 각자가 달랐다. 오쌍둥이의 뜨거움은 그저 욕망, 그리고 조진내의 뜨거움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살인 그리고 멈출 수 없는 충동. 육쌍둥이의 뜨거움은 결국 죽음이라는 도구로 차게 식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식지 않은 뜨거움이 있었으니, 바로 엄마다. 엄마가 육쌍둥이의 죽음을 불러일으켰다. 마지막, 조진내를 죽임으로써 마침내 한 사람에게로 뜨거움이 머무르게 되었다. 처음엔 엄마의 마음을 이해 못 했다. 그러나 조진내를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어머니의 입장에서 그 뜨거움의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죽였던 것은 아닐지.

 

사랑으로 기인한 붉은색의 울렁거림. 그 울렁거림이 비인도적이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와 붉은색 화염 속으로 빨려 들어가 우리 눈엔 그저 붉게 보였던 것은 아닐지. 긴 이야기를 끝내고 싶어 시작한, 영원히 붉어질 이야기 <육쌍둥이>였다.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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