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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알바생 자르기」, 「그 여름」, 「양의 미래」를 중심으로
글 입력 2023.06.17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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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의 「알바생 자르기」, 최은영 작가의 「그 여름」, 황정은 작가의 「양의 미래」를 읽은 후 이 세 작품이 묘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작품들이지만, 내 나름대로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보고 소설 창작자로서 참고하고 싶은 지점도 발견하여 공유하고자 한다. 

 

 

 

세 소설이 지닌 뚜렷한 개성과 장점


 

우선 세 작품이 지닌 개성과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장강명 작가의 「알바생 자르기」를 읽다 보면 독자는 은영 편에 설 때도 있고, 혜미 편에 설 때도 있다. 그 중심에는 ‘정당함’이라는 키워드가 있고, 이를 은영의 시점에서 서술했다는 것이 개성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정당함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부당함이 자연스레 따르기 때문에 비교적 부당함과 더 가까운 을을 화자로 설정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 혜미의 정당함과 부당함을 다루면서도 과장인 은영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은영에서 혜미는 치밀하고 교활한 사람이지만, 마지막의 짧은 한 문단에서 독자는 뒤통수 맞은 듯한 기분을 느낀다. 혜미는 학자금 대출 독촉 연락을 받고 여전히 발목이 아프다는 것이다. 독자는 은영의 발언을 통해 혜미의 사정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차곡차곡 쌓인 혜미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인해 결말에 다다라서야 4대 보험비 액수를 요구한 혜미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것을, 직원들의 비난과 혜미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것을 인지한다. 즉, 작가는 갑을 통해 을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헤미의 입장이 강하게 와닿는 효과를 불러일으키며, 소설의 주제 또한 강조된다.

 

최은영 작가의 「그 여름」은 퀴어 소설이라는 점이 가장 뚜렷한 개성일 것이다. 동시에 ‘퀴어’라는 요소를 개성적으로 드러내고 있지 않은 것이 장점이다. 이경과 수이는 열여덟 여름에 처음 만났고, 서로를 사랑했고, 어쩔 수 없는 차이로 갈등을 겪었으며, 새로운 사람이 등장했고, 끝내 이별했다. 그들에게는 동성애자라서 부여되는 특별한 서사가 없다. 그저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멀어지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독자가 이 소설에서 새로움과 독특함을 느끼지 않는 데에는 ‘자연스러움’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소설 첫 페이지부터 이경은 수이에게 처음 안경을 맞춰 썼던 때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 그 계기나 그들의 첫 만남을 길게 서술하지 않지만, 독자는 단순명료함에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마치 이미 흐르고 있는 그들의 시간을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독자도 함께 보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차별 없이 독자에게 녹아드는 「그 여름」의 자연스러움은 뚜렷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황정은 작가의 「양의 미래」에서는 화자의 단조롭고 무심한 화법이 개성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진상 고객을 상대하며 수치심을 느꼈던 때를 언급하지만, 당시 심정에 대해서는 단조로운 태도로 일관한다. 어린 시절 내내 일했었다는 사실을 그랬네, 정도로 깨닫거나 일하는 곳에서 동급생을 마주쳤을 때의 심정을 부끄럽다는 단순한 표현에 그치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혹은 아예 서술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던 호재가 폭력적인 성관계를 행했음에도 ‘나’는 호재의 얼굴, 그가 내비친 불안함만 서술한다. 감정에 대한 언급이 단순하거나 없으므로 독자는 ‘나’가 서술해준 상황을 통해 그녀의 감정을 유추할 수밖에 없고, 누가 봐도 부당한 순간에서 차분한 ‘나’를 두고 독자가 대신해 큰 분노를 느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독자는 실종 사건에 연루되어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원망을 사고, 서점을 그만둔 후에도 여전히 비슷한 일을 하는 화자에게 더욱 이입하고, 이 소설에 몰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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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소설이 지닌 공통점과 차이


 

세 소설에는 사회적으로 비슷한 지위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알바생 자르기」의 혜미, 「그 여름」의 이경과 수이, 「양의 미래」의 ‘나’가 이에 해당하는데, 모두 사회에서 약자에 속한다는 것이다. ‘나’와 혜미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지 못하고 아르바이트와 같이 비정규적인 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이경과 수이는 성소수자이다. 한국 사회는 아직 성수수자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인 측면에서 볼 때 약자에 속하는 경향이 있다. 세 소설은 사회적 약자의 현실과 사회의 인식을 보여준다. 사장이 혜미를 뒷담화하는 장면, 중학교 선배가 수이에게 툭 던지듯 건넨 말 등을 통해 그들이 사회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고,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드러낸다. 또한 독자는 세 소설에서 의외의 인물에게 공감한다. 4대 보험도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일하는 혜미를 자른 ‘은영’에게, 연인 수이가 있음에도 은지에게 마음이 향하는 ‘이경’에게, 여자아이를 범인에게 가도록 내버려 둔 ‘나’에게 공감하게 된다. 객관적으로 비판을 받아 마땅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그럴 수도 있는, 혹은 타당한 행동을 한 인물로 느껴진다. 그 이유는 독자의 공감이 작가의 의도나 서사적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감을 위한 장치나 전략에서 세 소설은 차이를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알바생 자르기」의 은영에 대한 공감은 혜미의 입장을 강조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이다. 「그 여름」에서는 이경과 수이에게 없었던 사랑에 다다르기까지의 감정 빌드업을 이경이 은지에게 느끼는 감정을 통해 보여준다. 이경이 수이와 맺은 관계가 그 외의 관계와는 다르다고 말하기 위한 서사적 필수 요소인 것이다. 독자도 수이와 은지가 이경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처음으로 사랑이 시작하는 감정을 느끼며 온몸을 앓는 이경을 공감할 수밖에 없다. 「양의 미래」의 ‘나’에 대한 공감은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과 관련 있다. ‘삶이 아닌 생존을 겪는 이들에게 윤리나 도덕성을 따져도 될까’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럴 수 없다’이므로 비인(非人) 서사를 통해 독자가 ‘나’에게 공감하게끔 한다. 이를 통해‘나’가 피해자 어머니에게 자신의 불행과 억울함에 대해 속으로 따지는 장면에서 독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피해자 어머니가 불편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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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로서 이 소설들로부터 참고하고 싶은 점


 

「알바생 자르기」에서 작가는 풍부한 대화문을 통해 혜미와 은영이라는 사람을 독자에게 분명히 알린다. 혜미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자신의 부당함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만큼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다. 은영은 혜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녀의 행동이 혜미에게는 부당함 그 자체이다. 이와 같은 것이 대사와 말투, 괄호 안의 생각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는 인물의 캐릭터가 확실하게 만들어졌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인물 설정이 불분명하면 대사는 그들의 특성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소설을 쓰다 보면 대화문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화문을 넣어도 되는 부분인지, 인물이 이러한 말투를 쓰는 게 옳은지 혼란을 느낀다. 그렇기에 또렷한 캐릭터 설정을 바탕으로 풍부한 대화문을 서술한 점을 참고하고 싶다.

 

「그 여름」은 감각적 표현이 뛰어난 작품이다. 특히 ‘여름’에 대한 계절적 감수성이 매우 풍부하다. 유난한 햇볕과 강물이 실어 온 시원한 바람, 검은빛에 가까운 초록색 식물과 같은 묘사를 접한 독자는 강물과 다리의 전체적인 풍경을 색채감 있게 그릴 수 있다. 작가는 간결하고 핵심적인 표현으로 소설을 전개하고, 불필요한 형용사 어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수이를 만나기 전의 삶이라는 것이 가난하게만 느껴졌다”라는 표현을 들 수 있다. 한 문장만으로 이경의 이전 삶이 어땠는지, 수이를 만난 게 이경에게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전한다. 이처럼 간결한 묘사를 통해 필수적인 내용을 전달하고 소설 특유의 계절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참고하고 싶다.

 

「양의 미래」에서는 ‘터널’이 나온다. 터널은 ‘나’의 암흑 같은 삶을 의미한다. 햇빛도 받지 못하며 일하고, 다시는 연애를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는 ‘나’는 어둡고 공허한 터널과 닮아있다. ‘나’는 터널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섬뜩할까 생각하다가 결국 터널의 존재를 확인하지 않는다. 터널이 있든 없든 마음속에는 그녀만의 터널이 이미 존재하며, 불안정한 삶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징은 작가가 하고 싶은 말과 연결되어 비인에게 윤리적 문제를 지적할 수 있냐는 질문에 다다른다. 이처럼 대상과 상징을 통해 작가의 말을 명료하게 전하는 점을 참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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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소설을 접할수록 다른 감상과 메시지를 이끌어내는 작품이라도 신기하게 미묘한 접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한다. 그 이유는 작가들이 전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며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같은 문제를 맞닥뜨리고 그것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부딪혀보려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열심히 자기만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든 작가에게 감사를 표한다.


 

[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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