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리는 우연 속에 살아가노니

그러므로 항상 감사하며..
글 입력 2023.06.2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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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을 좋아한다. 짙어지는 녹음과 햇빛을 받아 열렬히 피어나는 꽃잎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초여름의 풀향 섞인 내음을 맡으며 붉어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당장 맥주를 마시며 사랑하는 연인과 얼굴을 붉히고 싶다. 따라서 내게 6월은 또 늘어지는 낭만이 시작되는 썩 괜찮은 시기이다.

 

그러나 그저 낭만이라는 이유 하나로 6월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현충일과 6.10 민주항쟁 기념일이 존재하는 6월은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희생한 영웅들을 기억하는 날이다. 평범한 한 명이었을 그들은 총알과 고문 앞에서 그들의 나라를 지키고자 만세삼창을 외쳐야 했고, 참호를 파고 총의 진동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며 공포스런 소리를 귀에 담아내야 했고, 억압하는 무표정의 권력 앞에서 코와 입을 가리고 타오르는 화염병을 던져내야 했다.

 

여전히 찾지 못한 그들이 존재한다. 조국의 독립을 그리워하며 붉은 벽돌의 감옥 속에서 스러져갔을 그들, 백골을 넘어 흙이 되어 이름 모를 고지에 묻혀 있을 그들, 최루탄 연기에 고통스럽게 도망치다 잡혀버렸을 그들. 그들이 사무치게 그립지만, 어디로 갔을지 모를 그들을 마음으로나마 기억하고, 또 현재의 우리로 살 수 있게끔에 감사히 여기게 해주는 6월을, 나는 좋아한다.

 

그들도 사라지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일 것이다. '어쩌다가' 잡혀서, '실수로' 다쳐서, '운이 나쁘게도' 눈에 띄어서. 또한, 존재하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게 된 것도 우연한 계기일 것이다. 옆 사람이 변을 당하는 동안 도망쳐서, 순간의 기적이 발생해서. 이렇게 생각하면 우연이라는 건, 참 애달프다. 우연으로 생과 사가 순식간에, 결정.

 

그 우연을, 나는 최근에 경험했다. 글을 쓰기에 앞서, 우연으로 사라져간 모든 사람들을 추모하며, 기억한다. 또한 그 때 이후로 단 한 번도 정리된 글로 이 이야기를 작성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 많은 용기를 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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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전 날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 일과를 소화하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항상 가는 길목에 들어섰다. 그 길목은 두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고, 두 번째 언덕 꼭대기에는 쓰레기 집하장이 있다. 따라서 트럭이 쓰레기를 싣고 가파른 언덕을 덜컹거리며 내려가는 것은 종종 목격할 수 있었고,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지 않은 그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은 트럭이 내려오면 눈치껏 피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날 아침에도 트럭은, 쓰레기를 싣고 있었다.

 

아침 8시 55분 가량, 나는 평소보다 일찍 첫 번째 언덕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평상시 걷는 속도와 보폭보다 더 천천히, 더 좁게 걸어가고 있었다. 굳이 헐레벌떡 그 두 언덕을 오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언덕을 거의 다 오른 시점에, 나는 트럭이 두 번째 언덕을 아주 빠른 속도로, 굉음을 내며 내려오는 것을 목격했다. 엄청난 속도였다. 그리고 굉음은 여러 번 났었고, 놀란 내가 바라본 정면에는 쓰레기들이 허공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마치 <웰컴투 동막골>의 팝콘 장면처럼. 지금 생각하면 역겨운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9시 전까지 두 번째 언덕까지 다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놀란 마음을 곧 가라앉히고 '브레이크가 안 잠겨있었나' 라는 생각을 하며 마저 첫 번째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이어 비명소리가 들렸다. 첫 번째 언덕과 두 번째 언덕의 중간 지점에 이르자 보인 것은, 사람이 치어 쓰러져 있는 모습. 그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은 모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급히 119에 신고를 하였으나, 옆에 있던 분이 먼저 신고를 하여 내 신고는 무효가 되었다. 응급처치를 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나는 자꾸만 손을, 몸을 떨었다. 몇 분 뒤 중년의 남성이 길을 통제하듯 하여 다급히 그 현장을 벗어나 일정을 처리하고자 하였으나, 자꾸만 몸을 떨었고 머리가 아파왔으며, 구토감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하루종일 아무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6월 7일, 그 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공간은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지 이틀이 지났음에도 그 상황을 목격했던 나는 충분히 그것을 다시 떠올릴 수 있을만큼 많은 것들이 남아있었고 후속 처리가 미흡했다.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나를 매우 걱정했다. 평소처럼 걸었으면, 30초에서 1분 정도만 더 빠르게 그 곳을 지나고 있었더라면, 아마 그 소식은 나에 대한 것이 되었을 테니까.

 

사람들은 말했다. "너가 아니여서 그래도 다행이야, 그 분은 정말 안 됐지만.." 그러나 나는 내가 살아남은 이유가 단순히 우연에 의한 것임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우연히 나는 그 날, 빨리 그 언덕에 도착했고, 우연히 나는 그 날, 천천히 걷고 싶었다. 우연히 나는 그 날, 긴 치마를 입고 있어서 큰 보폭으로 걷는 것이 불가능했다. 우연이었다, 이 모든 게. 그 분이 변을 당하신 것도 우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우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우연이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으며, 그 우연 덕분에 우리는 숨을 쉬고 있다. 하지만 또 어떤 우연에 의해 우리가 갑작스럽게 삶의 종지부를 찍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 처음 느낀 감정은 '허망함'이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봐도 우연에 의해 나는 휘둘릴 수 있는 것이니까. 두 번째로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왜 우연 속에서 내가 절망하고 좌절하며 살아야 하는지, 나는 화가 났다. 세 번째로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내가 우연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지 않는가. 우연히 살아남은 나는 우연히 아직까지도 살아가고 있다.

 

그럼 우연히 살고 있는 내가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 그건 '감사해하고 기억하기'라고 결론지었다. 이 모든 순간을 내가 우연히 마주하고 있음에 감사히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우연히 스러져 간 사람들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그 우연에 대해 휘둘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체로서 살아가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들을 기억하는 것은 우연한 게 아니라, 내가 나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따라서 나는 현재에 감사한다.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고 마주하는 시간들에 감사하다. 또한, 현재를 기억한다. 스러져 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과 민주열사들을 기억한다. 일상 속에서 갑작스러운 우연으로 세상을 떠난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한다. 앞으로도 나는 기억하며 감사히 살아야만 할 것이다. 내 앞에서 아파하며 세상을 떠난 그 분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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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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