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네 번의 백야가 남긴 것들, ‘하얀 밤, 그리고... 까만 아침’ - 정:지 연출가전 페스티벌 [공연]

글 입력 2023.06.19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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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여름 문래동 주말극장에서 열린 ‘제1회 정:지 연출가전 페스티벌’은 연출가들이 다양한 예술팀을 만나고 서로 교류하는 장을 만들고자 개최되었다.


극단 솥귀는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백야>를 연출의 생각과 색깔로 극본/각색한 작품 <하얀 밤, 그리고... 까만 아침>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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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몽상가의 이야기



작품의 주인공은 줄곧 혼자 지내온 인물로, 현실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공상의 세계에 빠져 사는 몽상가이다.


어느 밤에 거리를 걷다가 울고 있는 한 여자를 우연히 마주한다. 그녀의 이름은 나스첸카이며, 할머니 곁에 온종일 붙어 살며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여인이다.


나스첸카는 주인공에게 ‘자신과 사랑에 빠지지 말 것’을 당부하며, 이 조건만 지켜주면 다음 날 밤에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두 번째 밤에 주인공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한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변덕스럽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무력하고 생기 없게 살아가는 곳으로 보인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환멸을 느끼는 그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어려워하고, 자신만의 안식처에서 공상을 즐기는 것이다. 현실과 다른 그 세계의 마술같이 생생한 화폭에서 몽상가 자신이 중심인물이 되어 세상을 그려간다. 그러나 그는 환상에서 깨어났을 때 외롭고 고독한 감정에 서글퍼진다고 밝힌다. 

 

 

 

자유와 사랑을 갈망하는 여인, 나스첸카



그가 솔직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나스첸카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그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구하고자 한다.


그녀는 과거에 할머니와 같이 사는 집의 다락방에 세입자로 들어왔던 젊은 남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둘은 오페라를 보며 데이트를 하게 되고 나스첸카는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오페라를 보러 갈 때 외에는 냉랭한 남자의 태도에 나스첸카는 그가 동정심 때문에 선의를 베풀었을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남자가 곧 모스크바로 떠난다고 하자 나스첸카는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자신도 함께 데려가 달라고 말한다. 할머니 곁에서 한시도 떠날 수 없는 삶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애원하면서.


남자는 자신이 아직 무능력하기 때문에, 만약 1년 후에 자신이 돌아왔을 때도 그녀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지 않다면 그때 결혼하자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스첸카는 1년이 지난 지금, 남자가 이 도시에 다시 돌아왔음에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깊은 슬픔에 빠져있다.


주인공은 나스첸카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조언하고, 편지를 그 남자에게 전달해주라는 부탁도 들어준다. 또한, 남자에게서 꼭 연락이 올 거라며 그녀를 다독인다.

 

 

 

네 번의 백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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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그녀를 만난 밤들을 백야(白夜), 즉 ‘하얀 밤’이라 표현한다. 몽상 속에 살며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던 그에게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나스첸카는 현실의 환한 빛 같은 존재였다. 그는 첫 번째 백야에 약속한 것과 달리 나스첸카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진심으로 돕고자 하였다. 그녀의 사랑이 다른 사람을 향해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스첸카 역시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무뚝뚝함과 다르게 진솔하고 친절한 주인공에게 호감을 느꼈으며, “당신이 그 남자였더라면”이라 말하며 둘을 비교하기도 한다.


편지가 전달되었음에도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남자로 인해 큰 좌절감에 오열하는 나스첸카에게, 주인공은 그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만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그녀는 혼란을 느끼면서도 그동안 자신과 함께 울어주며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주인공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서로에게 신비스러운 감정을 느끼며 울었다가 웃었다가,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사랑의 시작을 마주하던 바로 그 순간 나스첸카가 기다려왔던 남자의 등장으로 네 번의 백야는 끝을 맺게 된다.

 

 

 

하얀 밤이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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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밤을 지나 까만 아침을 맞이한 주인공. 이전에 그가 공상 속에서 갑자기 깨어나야 했던 순간들 이상으로 더 큰 허전함과 서글픔을 가득 느끼며 깊은 절망에 빠졌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미래를 그려볼 줄 알게 되었다.


나스첸카와 함께 보낸 순간들이 주인공에게 행복이라는 감정을 일깨워 주었고, 현실에 눈을 뜰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원망을 느낄 만한 상황에서 오히려 그녀와 남자의 행복을 빌며 한순간이나마 지속되었던 기쁨의 순간에 감사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극단 솥귀는 작품을 통해 꼬박 4일간의 사랑과 행복이 기나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 보여주며 외로움과 고독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조금이나마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때로 사랑의 순간과 감정은 환상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현실에 집중하고 열정을 가지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인간과 삶에 대한 회의감이 짙어지는 요즘, 두 청춘의 짧은 만남을 다룬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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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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