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여름, 너와 내가 교차했던 순간 [영화]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글 입력 2023.06.1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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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쉽지 않다. 누구도 종잡을 수 없는 데다 누구나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래서 가장 보편적이다.

 

<그 여름>은 최은영 작가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으로, 퀴어 여성청소년의 성장을 담고 있다. 사랑만큼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다. 그러니 국내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는 퀴어 작품은 가장 익숙한 발걸음으로 찾아와 우리를 기억의 바다에 빠트렸다. 여느 첫사랑 영화가 그러하듯이.


젊은 날의 사랑은 온갖 감정이 뒤엉켜서, 컬러 팔레트의 모든 색을 뒤집어쓰고 내 기억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꺼내면, 사실 흐르는 물결 위의 윤슬처럼 반짝이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다만 금세 내 발치를 지나 멀리 흘러갔을 뿐이다.

 

두 주인공 이경과 수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수이는 햇볕에 건강히 그을린 피부를 가진 까만 머리 까만 눈의 운동부 소녀였고, 이경은 운동이라곤 하나도 모를 것 같은 허연 피부에 갈색 머리 갈색 눈을 가진 조용한 소녀였다. 반대편에서 평행선을 그리던 둘은 위험한 포물선을 그리며 이경의 얼굴로 날아오던 축구공 덕분에 마침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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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약 60분의 짧은 영화이지만, 사랑이 시작되던 겁 많던 열 아홉의 여름부터 끝나던 스물하나의 여름까지 그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영원하길 바라는 순간은 언제나 찰나이며 끝나길 바라는 순간은 영원처럼 느껴지지 않던가? <그 여름>은 상당히 현실적인 작품으로, 평범한 일상과 일상을 깨버리는 사건을 조화롭게 비추되 지루하지 않게 극을 이어 나간다.

 

모든 연애 이야기가 그렇듯이, 우리는 극이 진행됨에 따라 감정을 이입하는 대상을 정한다. 이경이 화자가 되어 진행되는 작품이건만, 나는 이경보다는 수이에게 더 마음이 갔다.

 

수이는 자신에 대해 말하는 법이 없다. 모든 게 다 잘될 것 같던 열아홉의 여름엔 곧잘 털어놓곤 했었지만, 부상과 함께 운동을 그만두게 되면서부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뭐든 혼자서 감내하고 남의 도움 없이도 잘 살아가는 수이의 모습은 오히려 이경이 자신감을 잃도록 만들었다. 그녀를 더 사랑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종국에는 서로의 차이를 실감하게 해 이별로 이어졌다.

 

내게 의지를 하지 않는 연인은 분명 속상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문제로 사랑하는 이를 괴롭히고 싶진 않은 다정함이 몸에 배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 수이는 이경에게 헌신했다. 축구공 때문에 다친 이경을 위해 매일 딸기우유를 사 와 안부를 묻던 처음부터, 악착같이 돈을 모아 그녀의 기숙사 근처에 자취방을 얻고, 또 이경의 마음이 완전히 저를 떠나가기 직전까지도 그를 걱정했으니,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의지가 '되는' 유형에 가까운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경의 외로움이 이해는 되면서도 완전히 공감이 되진 않았던 것 같다. 처음부터 둘의 경제적 여건도 동등하지 않았으니, 철없는 투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경이 후에 은지에게 하던 대사처럼, 사막에서 찾은 바늘에 모래가 묻었다고 다시 집어 던진 것을 보는 기분이었달까.


그러나 원래 첫 만남이란 게 그렇다. 비교 대상도 없고 경험도 없다. 누군가에게 얻어낸 당연한 것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경이 밉지 않았다. 나였어도 똑같이 수이에게 속상했을 것이다. 수이의 수더분함에 똑같이 민망함을 느꼈을 것이고, 그래서 모든 게 반짝거리는 은지에게 더욱 마음이 갔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족한 점까지 끌어안기보단 그이의 완벽한 버전인 누군가를 좇는 일이 빈번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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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의 마음이 멀어지며 자연스레 끝난 수이와의 연애는 그렇게 대단하진 않았다. 엄청난 드라마가 있던 것도 아니고, 매일 같이 한 몸처럼 붙어 다니며 서로의 삶을 속속들이 알았던 것도 아니다. 싸우기도 했고, 시답잖기도 했으니 마냥 아름답지도 않다. 그러나 이 2년 남짓한 짧은 시간을 담은 60분짜리의 영화는 그때 그 여름의 분위기를 따뜻한 음악과 색감을 통해, 때로는 원작의 표현을 인용하여 이들의 인생이 잠깐 교차했던 지점들을 아름답게 그려 냈다.

 

가령 강가에 내려앉은 왜가리, 머리를 검게 염색한 이경의 군데군데 삐져나온 갈색 머리, 개 눈이라는 소리를 듣던 이경의 눈을 아주 오래도록 바라보던 수이의 검은 눈동자 등. 사랑에 관한 어떤 통찰을 보여주던 장면들은 특히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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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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