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련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삶, 연극 '우주먼지' - 제1회 정:지 연출가전 페스티벌

글 입력 2023.06.1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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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누구나처럼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던 소녀는 문득 자신을 둥둥 떠다니는 우주먼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버스정류장에서 한 노숙자를 만나게 되는데, 노숙자는 스스로를 불필요한 먼지라 여기는 소녀에게 진심 어린 조언과 위로를 건넨다. 과연 소녀는 삶에 대한 정답을 찾고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 게 정답일까?

 

 

우리는 누구나 내 삶에서만큼은 주인공이다. 하지만 주인공답게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는 순간보다는 그저 무대에 불과한 이 세상 때문에 초라해질 때가 더 많다. 통상적인 세상살이의 기준, 그래서 실제보다도 과하게 의식하게 되는 남들의 시선이 끊임없이 우리를 속박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 삶의 유일한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이 이 현실을 더 힘들게 만든다. 자연스러운 본능을 따라 나의 안녕을 바랄수록 만족을 모르는 이기적인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일까.


그럴 때마다 우리는 갖지 못한 것들만 바라보며 종종 비관 속에 가라앉은 채 산다. 그로부터 헤어나와 이상향을 손에 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불투명하다. 저마다의 삶을 운영해 나가는 데에 완벽한 정답이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해서,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도 어떤 길이 가장 정답에 가까운지를 고민하느라 늘 고달프다. 


정:지 연출가전 페스티벌에 참가한 프로젝트 스페이스바의 ‘우주먼지’는 이렇게 누구나 겪을법한 난관을 이야기하는 연극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극중에는 이 광활한 우주에서 마땅한 존재가치를 찾지 못한 채 ‘우주먼지’처럼 유영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자취방이나 버스정류장, 패스트푸드점 등 우리 주변의 평범한 공간을 배경 삼아, 20대 취업준비생인 ‘소녀’와 버스정류장에서 생활하는 ‘노숙자’ 두 명의 주인공이 서사를 이끌어간다.


소녀는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지만 부모님의 뜻을 따라 평범한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자격증 시험을 준비 중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햄버거집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다. 하지만 연기의 뜻을 내려놓지 못해 몰래 연기를 연습하며 꾸준히 오디션에 도전한다. 노숙자와의 첫만남도 소녀가 출근길에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 의자에 올라서서 심사위원들 앞에서 선보일 희곡 ‘갈매기’의 대사를 읊던 중에 이루어진다.


노숙자가 대사 연습을 실제 상황으로 오해하고 소녀에게 말을 걸자, 그녀는 오디션에 도전할 계획인데 실제 같았다면 다행이라며 밝게 웃는다. 이때를 시작으로 이 둘은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서로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다가 안부를 물어봐주는 친구가 생겼지만, 소녀의 상황은 영 나아질 기미가 없다. 부모님의 기대는 여전히 부담스럽고 햄버거집에서는 억지로 웃으며 진상 손님을 상대해야 한다. 정신없이 사느라 공부도 영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간절히 바랐던 오디션마저도 불합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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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날을 앞두고 잔고가 바닥이 나자 소녀는 떡볶이를 배달시켜 먹으려다 돈을 아끼기 위해 포장마차로 향한다. 떡볶이만 생각하면서 있는 힘껏 달려갔지만 야속하게도 포장마차 문은 굳게 닫혀 있다. 허탈한 마음으로 땀을 식히려 버스정류장에 드러누워있던 그녀는 다시금 노숙자를 마주친다. 소녀가 그의 손에 쥐어진 폐기 삼각김밥을 간절히 바라보자 노숙자는 망설인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던 도중,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북받쳐오른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평범하게 행복한 삶을 나는 왜 살지 못하냐고 노숙자에게 외쳐 묻는다. 


이 질문은 삶의 벼랑 끝에 서있는 노숙자에게는 배부른 투정으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진심을 담아 소녀에게 말한다. 자신이야 지금 당장 죽어 세상에서 없어져도 이상할 게 없지만 너는 결코 그렇지 않으니 네 삶을 살아야 한다고, 어찌 됐건 삶의 목표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소녀에게 어찌 됐건 네가 선택한 삶이 아니느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소녀는 그의 말에서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한다.


노숙자는 왕년에 잘 나가는 사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몰락 이후 집도 가족도 잃은 채 길에 나앉은 인물이다. 화려했던 과거를 자랑할 때마다 소녀에게 ‘왕년’이라는 말 좀 그만 쓰면 안되냐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는 자신은 행복이 아니라 돈을 쫓아 살았기 때문에 실패한 삶을 살았다며, 돈이 곧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으니 괜찮은 직장이나 괜찮은 벌이에 얽매이지 말라고 자조를 담아 조언한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녀에게 삼각김밥을 건넨다.


며칠이 지나고 소녀는 노숙자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 소녀는 정류장에 찾아온다. 고민 상담을 해줘서 고마웠다며 그에게 새로 산 삼각김밥과 군고구마를 쥐어준다. 손에 들린 군고구마를 바라보다, 노숙자는 불현듯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꺼내놓는다. 어릴 적 가세가 기울자 군고구마 장사에 뛰어들어 가족들을 건사했던 아버지와 달리, 자신은 가족들을 책임지지 못했다고 소녀에게 말한다.


그러고선 문득 아내와 아들이 아닌 아버지를 찾아가 봐야겠다고 이야기한다. 하루살이 같은 삶에 만족하며 길거리를 보금자리 삼았던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다짐이다. 그래서 이 다짐은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겠다고 말했던 그의 대사와 겹쳐 들린다. 삶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암시와도 같은 이 말에서, 소녀는 다른 낌새를 알아채지 못한 채 그에게도 드디어 갈 곳이 생겼다며 함께 기뻐해준다. 소녀가 작별인사를 하자 노숙자는 소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우주먼치저럼 작은 존재지만 우주먼지가 있기에 우리는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다고, 너 또한 노을을 반짝이게 하는 우주먼지와도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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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가 소녀를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자신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를 내려놓은 그와 다르게 소녀는 행복한 삶을 욕망하고 있다. 그녀가 힘들어할 수 있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삶에 대한 미련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녀에게는 아직 기회가 남아있지만, 노숙자는 그마저도 포기한 채 살아간다. 그의 대사를 인용해 정정하면, 그의 인생은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는’ 삶이다.


그렇기에 노숙자의 삶에는 정답이 있다. 목표도 의지도 없이 그저 주어진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잃을 것도 바랄 것도 없이 그저 현재를 소비하는 것이다. 미련이 없다면 오히려 쉬워지는 것이 인생임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노숙자는 소녀에게 자신처럼은 살지 말라고 말한다. 결과가 즉각 따라오지 않더라도, 정답 없이 방황하더라도 안달내며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아름답다는 것을 일깨운다.


노숙자의 조언은 소녀를 넘어서 관객석에 앉은 우리의 마음에도 와닿는다. 하지만 우리는 소녀를 통해서도 위로를 받는다. 소녀가 노숙자 앞에서 잘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오열하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이는 노숙자가 소녀에게는 눈치 볼 것 없이 감정을 토해낼 수 있는 상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소녀와 노숙자의 진솔한 대화라는 더없이 동화적인 설정이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서 직시하기 어려운 감정을 들여다보게 한다. 


사실 그녀의 상황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극복하지 못할 비극은 아니다. 진로 고민 때문에 방황하는 순간은 청년세대의 일원이라면 누구에게나 너무도 흔하게 찾아온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아르바이트기는 하지만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편히 지낼 수 있게 부모님이 얻어주신 자취방도 있다. 부모님은 용돈이 필요하진 않은지, 밥은 잘 챙겨먹었는지 다정히 안부를 묻는다. 실패를 거듭하고 있긴 하지만 꿈을 향한 뜨거운 열정도 있다. 


조금만 더 현실감을 되찾고 긍정적으로 앞날을 바라본다면 훨씬 나아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녀는 눈앞의 돌부리에 걸려넘어진 채 자기우울에 빠져들어 잘나지 못한 자신을 탓한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 마음의 저 깊은 곳에 어렴풋이 자리하는 당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런 못난 감정이 무대 위에서 헤집어져 증폭되는 순간은, 일종의 카타르시스와도 같이 관객석에 진심 어린 위로를 전했다.


이렇게 노숙자의 조언보다도 소녀의 울분이 더 큰 위로가 되었다는 점은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노숙자의 조언이 그녀의 감정을 보듬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삶을 논하는 연극에 등장하는 노숙자 캐릭터라면 삶을 향한 남다른 통찰이 대화에 녹아나리라 예상했지만, 그의 대사들이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몇 가지 문장으로 달리 위로할 수 없는 게 삶의 고통이라면, 노숙자가 전한 적당한 층위의 공감이 더 현실적인 위로에 가까웠다는 생각도 든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후회, 주변 환경을 탓하는 마음, 타인의 삶을 향한 열등감. 인생의 과도기에 서 있는 이들이라면 너무도 당연한 감정이라서 더욱 끊어내기 힘들다. 이런 생각들은 현실을 타개하려는 힘으로 이어질 때만 비로소 바람직한 결과로 환원된다. 다르게 말하면, 먼저 그 감정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 바로 그 단계에 서 있는 이들에게 연극 ‘우주먼지’는 자기긍정의 삶은 자기부정을 인정할 때 완성됨을, 우리의 미래를 만드는 것은 기약 없이도 아름다운 방황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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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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