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둘리의 친구에서 고길동의 동료가 될 때까지 [영화]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그때 그 시절로 다시 한번
글 입력 2023.06.1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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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둘리와 같은 시대를 공유하던 어린이는 아니다.

 

대한민국의 마스코트라고 부를 수 있는 캐릭터를 연도별로 줄 세울 수 있다면, 나는 뽀로로 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 애와 같이 눈 덮인 숲속 마을을 누볐다. 마침 뽀로로도 둘리의 뒤를 따라 올해 20주년을 맞이했다고 들었다.


둘리와 뽀로로는 약간의 공통점이 있다. 이번에 리마스터링된 극장판에서 알 수 있듯, 뽀로로와 둘리는 '겨울'을 떠오르게 만든다. 차가운 얼음이 잔뜩 끼고, 눈이 나부끼는 신비롭고 시린 계절 말이다.

 

물론 얼음별은 뽀로로의 거주지처럼 사람 온기 나는 따뜻한 곳이 아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에게 엄청난 환상을 심겨주었을 곳임은 자명하다. 얼음별은 지구가 아닌 저 먼 우주 어딘가에 있는 차가운 행성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당대 어린이들의 가장 첫 SF다. 나보다 더 윗세대들은 둘리와 함께 눈 덮인 마을 정도가 아니라 우주를 모험하며 꿈을 키웠겠다고 생각하니, 그게 조금 부러워졌다.

 

관객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나처럼 향수에 젖게 하는 성공적인 마케팅으로 인해 호기심이 생겨 관람하러 온 청년층도 제법 있었고, 어릴 적 추억을 곱씹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작고 귀여운 아들딸의 손을 잡고 관람하러 온 가족도 있었다.

 

작품이 방영되는 90분 동안 객석은 웃음이 꽉 찼다. 예상치 못한 분위기였다. 오래된 어린이 애니메이션인 만큼 틀에 박힌 교훈적인 내용이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던 탓이다. 인터넷에서 '어릴 땐 몰랐는데 고길동 아저씨가 정말 보살이다'와 같은 이야기들이 왜 심심찮게 보였는지 그 이유를 직접 감상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 둘리 일행은 짱구도 못 말리겠다!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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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가까이 지난 작품인 만큼 지금 와서 보기에 시대에 뒤처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 폭력성이나 선정성 부분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으로선 전체 연령가로 상영하기 부적절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스폰지 밥, 톰과 제리 같은 작품들도 폭력성을 이유로 종종 말이 오가지 않는가. 둘리도 그런 부분을 피해 가긴 어려운 듯 보였다. 이 초록 공룡과 그 무리는 너무나도 많은 사고를 치고 다니고, 고길동 아저씨는 그만큼 너무나도 많은 화를 낸다.

 

하지만 이 말은 곧 어른들의 눈에 즐거운 작품이란 뜻이기도 하다.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은 상당한 웃음 코드와 눈물 나는 설정을 갖고 있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을 위한 리마스터링이겠거니 확신했다.

 

둘리는 제법 은유적이고 신랄한 작품이었다. 세상에, 나는 "독재 타도"라는 문장이 어린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것을 처음 보았다! 어릴 적엔 바요킹들을 그저 무서운 악당으로 여겼을 어른들은 이번 리마스터링으로 비로소 본인이 언제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마음속 깊이 심어두게 되었을지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당대 사회상의 반영뿐 아니다. 고길동의 험난한 여정 역시 그때와 지금이 다르게 보인다. 삶에 지친 어른들을 그대로 반영한 캐릭터이자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라고 해야 할까? 고길동에게 있어서 둘리 일행은 지금의 유행으로 따지자면 쳇바퀴같이 굴러가는 삶에 떨어진 이세계 같은 것이고, 거기서 세상을 구한다는 점이 그렇다. 물론 이 이세계라는 것이 그의 삶을 참으로 고단하게 만들지만 말이다.

 

2023년의 고길동은 더 이상 둘리'를' 괴롭히는 못된 어른이 아니다. 둘리'가' 괴롭히는 불쌍한 어른이고, 그 와중에 보호자 노릇도 하며 독재자도 타도해 우주를 구하는 대단한 어른이다. 게다가 무단결근도 8일이나 해버렸다. 우주 구하기보다도 어려운 일을 고길동은 (타의로) 해내고야 말았다.


사실 둘리가 괴롭힌다고 하기에도 어폐가 있다. 원래 어린아이들은 이리 튀고 저리 튀어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으니까. 우리 모두 어른들의 속을 썩이며 자라왔으니, '육아 난이도 상의 아이를 키우는 어른의 고충을 유쾌하게 풀어내며 지친 그들을 위로하는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게 적합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둘리는 꽤 슬픈 작품이기도 하다. 그것을 어릴 땐 모르다 지금 깨닫게 될 수 있다. 단적으로, 얼음별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을 아이들은 자라 그곳이 더 이상 볼 수 없는 이들과 작별할 수 있는 반가움과 슬픔의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엄마, 같이 있으면 안 돼요? 10분만요! 1분만요!..."

 

이 대사의 먹먹함은 어린이들이 느끼는 것과 다 자란 성인이 느끼는 무게감이 다를 테다.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고, 그 과정에서 얻기도 잃기도 한다. 준비도 채 하지 못하고 헤어진 과거의 누군가를 떠올리자, 우리는 고길동에 공감하던 삶이 팍팍한 성인에서 단숨에 엉엉 우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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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어른에서 어린이로.

 

둘리는 귀환과 동시에 우리를 타임머신에 태우고 양방향을 오간다. 그리고 그 모험은 함께 떠날 가치가 충분한 여정이다. 이 초록 공룡이 나의 시대에서 왔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은듯 하다.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와 재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모든 세대가 아는 캐릭터는 그런 요술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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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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