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정적보다 무서운 것이 있다면 - 정:지 연출가전 페스티벌

연극 <막>을 향유하고 난 뒤..
글 입력 2023.06.05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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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jpg

 

 

 

시놉시스


 

쌍둥이 남매인 성희, 성민. 엄마는 기억조차 알 날 어릴 적 돌아가셨고, 아버지마저 교통사고로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사고 현장에 함께 있던 성민은 외상 후 스트레스로 목소리를 잃고 마는데. 1분 일찍 나온 누나, 성희는 그런 성민을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추고 있던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된다.

 

 

 

# 정적보다 무서운 잘못된 동정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과하면 과할수록 이성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기 마련. 아무리 힘든 상황이 닥치더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은 인간에게 아직 없는 듯하다.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연극, <막>이다.

 

오늘도 문래극장에 들어섰다. 오늘은 어떤 충격에 휩싸여 이 극장을 나가게 될지 흥미로워졌다.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따뜻한 공기가 무대로부터 흘러나왔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 배우들이 미리 나와 작은 연극을 펼치고 있었다. 쌍둥이 남매인 성희와 성민, 둘 사이에는 애틋한 감정이 가득했다. 그들을 돌봐줄 사람, 아껴줄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이끌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서로를 의지할 뿐이었다.

 

극이 시작되었다. 객석에 불이 꺼지고 관객의 시선은 오로지 성민과 성희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연극 시작 전 다정하고, 서로에게 의지했던 둘의 분위기는 극이 시작하자마자 나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 사이에는 들키지 않고 있던 비밀이 존재하는 듯했다. 그러나 섣불리 그들에게 거짓된 진실을 뒤집어 씌울 수 없기에 우선 지켜보기로 했다.

 

그 둘은 서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민이 구급차의 경적 소리에 경기를 일으키자 누나인 성희는 성민에게 심호흡을 요구했다. 겨우 진정된 성민은 짧게 숨을 내뱉었다. 바로 이렇게!

 

“후...”

 

성민, 그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 사고의 충격이 너무 커 그만 목소리를 잃고 만 것이었다. 유일하게 뱉을 수 있는 말은 저렇게 경기를 일으킨 후 한숨을 내뱉을 때다. 어떻게 보면 성민이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이 아닐는지.. 그가 한숨을 내뱉을 때 한 가지 감정이 더 느껴졌다. 말하고 싶은 진실이 있는데 그 말이 턱 끝까지 차오르다가 도로 마음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그 안타까움. 성민은 그 탄식을 통해 관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성민은 말을 다시 하기 위해 노력한다. 성희는 수화도 가르쳐 주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주면서 성민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그런 누나의 정성을 아는 건지 성민 또한 누나를 잘 따르고 수화 연습도 열심히 한다. 그러나 극은 충격적인 국면에 접어들었다. 누나인 성희가 집을 나가자 성민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루에 누워 유튜브를 시청했다. 소리에 민감한 성민이 유튜브 영상을 그것도 편하게 누워서 시청을 한다는 것은 성민이 관객에게 자신의 거짓말을 고백한 순간이었다. 사실 그는 말을 할 수 있고, 누나의 관심을 받기 위해 그리고 계속해서 누나에게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주기 위해 말을 못함을 ‘연기’했음을 말이다.

 

자신의 아픔을 ‘연기’하는 것이 더 무서울까, 실제로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더 공포스러울까. 나는 단언컨대 아픔을 연기하는 편이 극단적으로 훨씬 더 무섭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아픈 척을 하는 사람을 나는 정말 많이 보아 왔다. 그런 이들에게는 늘 자신을 동정하는 눈빛이 당연했고, 그런 시선을 받지 못하는 순간 존재감을 잃어 어느 순간엔 자신이 정말 아픈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정말 아픈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픔을 가식적으로 포장하는 행위가 가장 무서운 이유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난 극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성민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어버릴까 공포스러워졌다.

 

하지만 이는 끝이 아니었다. 성희는 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성희는 성민 몰래 영문을 알지 못할 외출을 계속해서 감행했다. 더불어 계속 오는 삼촌의 전화를 성민에게 받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직접 듣고 처리했다. 그녀가 대체 왜 그리고 어디로 외출을 하는가에 대해서 극을 보는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의심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뇌리 속에 스친 것은 바로 그녀의 ‘삼각대’. 그녀는 성민과 수화 연습을 하는 모습, 그리고 그와 함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가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고 있었다. 처음엔 기록하기 위한 용도인 줄 알았지만, 성민이 발견해 버렸다. 유튜브 영상 속에서 수화를 배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린 순간으로부터 말이다.

 

그녀는 그의 동생과의 생활을 외부에 공개하여 동정심을 유발하고, 그 영상으로 후원 기금을 받아 생활할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서로를 향한 지나친 애정이 만들어낸 이 작아 보이는 비극이 나한텐 되려 크게 다가왔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자신의 동생을 하나의 콘텐츠로 판매하는 상황인데, 이는 성민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더불어 성민은 지금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누나를 속이고 있는 상황인데 누나의 의지를 꺾고 싶지 않아 계속해서 말을 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비극적이었다.

 

결국엔, 그들의 결말엔 바뀌는 게 없었다. 그들을 동정해야 할지, 아니면 이러한 현실을 보고도 그들을 도와줄 방법을 알고 있지 못하는 나를 동정해야 할지. 동정의 방향과 정도는 어느 정도가 가장 적당한 것일지 진심으로 고민이 되는 연극이었다. 극의 마지막, 관객들을 보고 인사를 하는 성민과 성희의 모습이 과연 극 속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그들이 커튼 뒤로 들어간 후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성민과 성희가 잘못된 동정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진 않을지.. 그런 세상이 와서는 안 될 텐데..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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