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Classy, Funny, Sexy 한 시카고 날것의 매력 - 뮤지컬 '시카고' [공연]

글 입력 2023.06.03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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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 미국 뮤지컬 역사상 최장 공연을 기록하며 올해로 브로드웨이 25주년을 맞은 뮤지컬 <시카고>가 한국에 6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뮤지컬 <시카고>는 1975년 뮤지컬의 신화적 존재인 밥 파시에 의해 처음 무대화된 이후, 1996년 연출가 '월터 바비'와 안무가 '앤 레인킹'에 의해 리바이벌된 작품이다. 이는 Tony, Drama Desk, Olivier Awards 등 전 세계 최고 권위 시상식에서 55개 부문을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미국을 넘어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전 세계 36개국 500개 이상 도시에서 32,500회 이상 공연되었고, 3,3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한 스테디셀러 뮤지컬이다.


이번 오리지널 내한 공연은 2023년 5월 27일부터 8월 6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된다. 여기서 1920년대 보드빌 무대를 그대로 옮긴 스타일리시한 무대 위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관능적인 배우들이 풍자와 위트로 가득 찬 스토리를 펼치고, 제2의 배우로서 멋진 라이브 연주를 선사하는 14인조 빅밴드 또한 놓칠 수 없는 경험이 되리라고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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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2 7시 30분

 


사실 영화 <시카고>를 먼저 감상했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약 110분의 아찔한 블랙코미디 쇼에 매료되었던 터라 이를 무대 위로 펼치면 어떻게 될지 더욱 궁금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듯 전체적인 줄거리나 구성, 넘버와 안무를 꿰고 있음에도 현장에서 보여주는 열기와 생생함은 차원이 달랐다. 영화 속에나 존재했던 인물들이 스크린을 뚫고 나와서 Classy, Funny, Sexy 한 시카고 날것의 매력을 맘껏 뽐냈다. 


무엇보다 실력 있는 라이브 밴드가 무대에 존재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음이 이리저리 통통 튀는, 절로 흥이 나는 리드미컬한 재즈 음악이 짜릿한 전율을 선사했다. 특히 지휘자는 단순히 지휘만 하지 않고 록시와 신문을 주고받는 등 제2의 배우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처음에 "5, 6, 7, 8" 이후 신나고 경쾌한 멜로디가 쏟아져나올 때 임팩트는 지금까지 본 뮤지컬 중에 최고의 오프닝 중 하나로 손꼽을만했다. 


무대의 2/3 정도를 밴드 공간으로 사용했기에, 이곳은 중앙 통로나 재판장 등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남은 1/3을 배우들이 사용했고, 심지어 무대 양측은 배우들의 대기 공간이었다. 그래서 무대 세트의 활용이나 전환은 살펴보기 어려웠고, 소품 같은 경우도 의자나 책상 정도라서 시각적인 면에서 아쉬움은 남았다. 그런데도 브로드웨이 배우들만의 강렬한 존재감과 눈을 뗄 수 없는 군무로 비어있는 공간이 확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관객석을 비추는 회전 조명과 환호와 박수를 유도하는 멘트 덕에 한순간 보드빌 공연의 관객이 되어서 그들과 더욱 가까이 호흡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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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첫 내한 공연이었는데 주⋅조연은 말할 것도 없고 앙상블 역시 프로 중의 프로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기력이나 퍼포먼스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대체로 감정표현이 풍부하고 표정과 몸짓이 과장되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여기서 두 주인공에 대해 말해보자면, 로건 플로이드가 연기한 벨마는 굉장히 노련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보드빌 가수 같았고, 케이티 프리든이 연기한 록시는 청순하고 사랑스럽지만 은은한 광기가 도는 스타 지망생 같았다. 극 중 비중이 높다 보니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대사를 뱉는데도 무리 없이 소화했고, 끝을 향해갈수록 무대를 거의 날아다니는 지경이어서 원캐스트인 이유를 절로 깨달았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은 한글 자막이었는데, 단지 해석만 적지 않고 그 캐릭터의 상황과 감정에 맞춰 글씨체, 투명도, 기울기 등을 조절했던 점이 관전 포인트이지 않나 싶다. 다만 좀 더 크고 두꺼운 글씨체를 사용했으면 좋을 듯하다. 2층 앞에서 본 나에게도 살짝 흐릿했으니, 3층 관객들은 글씨를 알아보느라 다소 피로했겠다는 생각이다. 


극은 록시와 벨마가 빌리의 도움으로 살인자 스타가 되어 무혐의로 석방되고, 2인조로 보드빌 무대에 서게 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러니까 범죄는 관심이, 살인은 예술이, 재판은 쇼비즈니스가 되는 곳이 1920년대의 시카고다. "몇십 년 동안 교수형을 받고 풀려나지 않은 여성 범죄자는 없었다"라는 대목에서 당시 사회 수준이 얼마나 추락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 시대 상황을 프레드를 살해한 록시가 교도소에서 풀려나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며, 아무도 이를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꾸며진 거짓을 동정한다는 점에서 낮은 대중 의식을 강조한다. 이러한 시카고를 비꼬는 풍자 섞인 대사로부터 관객들의 어딘가 씁쓸한 웃음이 터졌던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


 뮤지컬 <시카고>의 포문을 열며 벨마의 관능적인 매력을 뽐내는 'All that Jazz', 여섯 명의 죄수가 무죄를 주장하며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Cell Block Tango', 관객을 들썩이게 만드는 그 유명한 빌리의 복화술이 특징인 'We Both Reached For the Gun', 신문에 이름이 나오길 바랐던 꿈을 이뤄 기뻐하는 록시의 'Roxie', 1인 2역을 하며 록시를 설득하는 벨마의 개인기 쇼 'I Can't Do It Alone', 2인조 스타가 그들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Hot Honey Rag' 등 유명하고 좋은 넘버를 오리지널 버전으로 들을 수 있음에 감동했다. 그뿐만 아니라 빌리, 마마, 선샤인, 에이모스가 부르는 개인적인 서사와 감정을 수놓는 넘버들이 무대를 더욱 다채롭게 장식했다.

 

*

 

 처음에는 1부에 하이라이트가 쏠려있어서 2부가 비교적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빠른 템포로 흘러가며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보드빌 쇼 덕분에 극에서 빠져나올 새가 없었다. 처음 접한 내한 공연이 뮤지컬 <시카고>라서 굉장히 만족스럽고, 긴 시간 고난도의 장면들을 소화한 배우들과 살아 숨 쉬는 고퀄리티 연주를 선보인 라이브 밴드, 그리고 이 모든 게 빛날 수 있도록 노력한 주역인 창작진들에게 감사하다. 남은 두 달간 뮤지컬의 본고장인 브로드웨이의 열기를 한국의 많은 관객에게 전하고 떠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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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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