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회피 심리를 소개합니다, 제2편 [도서/문학]

글 입력 2023.05.15 15: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회피형 인간>의 1부가 ‘회피형 보고서’라는 이름 아래 회피형 인간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면, 2부는 ‘회피형 가이드’라는 이름으로 조금 더 세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회피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회피형 본인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등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내용이 다소 ‘좋아하는 상대를 공략하는 방법’ 같은 느낌이 나기도 했지만 작가는 꼭 연인을 의미해서가 아니라 본인이나 가족, 친구 등 넓은 범위를 생각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1부를 공감하며 읽었다면 2부는 조금 더 실용성 쪽에 집중되어 있어서 그런지, 공감보다는 그렇구나, 그런 방법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며 읽었다.


 

회피형이 아닌 사람들이 이 책을 읽더라도 기존에 본인이 갖고 있던 인간상의 지평을 넓히는 창구로서 인식된다면 좋겠다. 외모도 행복도, 성공도, 우리는 정형화된 몇 가지 것만을 들이밀며 재단할 수 없다. 편협함은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데 이것은 어쩌면 우둔함과도 같지 않을까. 삶에 정답이 없음을, 누군가의 삶이 오답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을 가려내고 채점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그 사람 본인의 몫임을 알길, 그러니 남의 답지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 마음대로 점수를 매겨놓는 실수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하지 않길 바란다.

 

분명히,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당신의 삶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작가라면 본인의 북제품이 아니라 정말로 살아 있는 듯한 다양한 인물들을 작품 속에 입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이고, 사람을 대하고 사람과 교류하는 직업을 가진 모두가 더욱 유연한 마음가짐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 대해 공부하고 탐구하는 것은 당신이 꼭 인류학자가 아니더라도 평생에 걸쳐 유용한 취미가 될 수 있다. 사실 앞으로 당신은 더 많은 회피형 인간들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그들에게 안성맞춤인 사이버 시대가 전염병의 위험과 함께 도래했으며, 이전에 지배적이었던 가치들의 철옹성에는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위 내용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뚜렷하게 내놓은 말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의 리뷰 중에 ‘회피형을 이해해보려고 읽었는데 왜 저럴까 하는 생각만 든다’라는 것이 있었다. 이해해보고자 한 그의 의도는 좋았으나 작가의 메시지가 바르게 전달되지는 못한 듯하다. 그러나 이것이 누군가의 잘못은 아니다. 그저 둘의 삶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회피형에 대한 이해든, 내가 가진 회피성 모습에 대한 이해든 어떠한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본 입장에서 그 리뷰가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만일 내가 회피성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익명의 누군가처럼 이 책을 이해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어느 정도 회피형인 나조차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그가 ‘회피형’ 인물들도 이 세상에 있다는 인식 정도는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듯이 ‘유용한 취미’를 위해서 말이다.


 

생각해보면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사람에게 각기 다른 페르소나를 갖는 건 당연하다. 우리는 상황과 상대에 맞추는 유연성을 갖고 있으니까. 여기서 무엇이 진짜 나고 가짜 나고를 따질 게 아니라 그 다양한 모습이 전부 나인 것이다. 어떤 건 내 마음에 들고 어면 건 아닐 수도 있는 거지, 모든 나를 좋아할 수도 없는 것이다. 내가 나를 항상 좋아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존감'이라는 개념이 만든 강박 같다.

 

F(x)의 '피노키오' 가사처럼 '조각조각 부숴보고 맘에 들게 다시 조립하는' 순간들이 필요하다. 내가 나를 해체해보고, 불량부품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고치면 좋을까?' 정도를 생각해보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아주 천천히,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오래 어쩌면 펑생에 걸쳐서 나를 바꿔나가면 된다. 흑시 아나, 죽기 전쯤이면 아주 많이 너그러워진 내가 '사실 그 정도는 불량도 아니었어'하고 흡족하게 나 자신을 안아줄지도 모른다.

 

 

2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이것이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한다. 누군가는 나에게 말을 예쁘게 한다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남이 상처 받을 수 있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고 했다. 또 다른 경우에서 누구는 내게 생각이 깊고 상황을 살필 줄 안다고 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생각하지 않고 행동부터 하고 보는 듯하다는 말을 했다.

 

솔직히 말해서 모두에게 동일하게 행동하며 살았다고 자부할 수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 마음을 쏟아 좋은 말을 골라 가며 말했을 것이고, 크게 정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적당히 예의만 지켜 말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다른 평가가 생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본성이라는 것은 동일한 나인데? 기질이나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아무리 상대를 봐 가며 행동했다 손 치더라도 기저에 있는 것까지 변형시켜 행동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똑똑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받아 온 아이러니한 평가들을 생각하다 보니 가수 아이유의 <남성잡지 GQ코리아> 인터뷰가 생각났다.


  
누군가 저를 좋아한대요. 그 이유가 제가 똑똑하게 굴어서래요. 약아서. 약아서 저를 좋아한대요.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저를 좋아한대요. 그 사람이 저를 좋아하는 이유는 생각을 깊게 하지 않고 막 뱉어서래요. 그리고 어떤 사람이 저를 싫어한대요. 제가 영악해서. 약아서 싫대요. 그러고 또 다른 사람이 저를 싫어하는데 그 사람은 제가 멍청해서 싫대요. 그러니까 사실 어느 장단에도 맞출 수가 없어요. 그냥 그게 다 나인가 보다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고 싶어요. 그럼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지? 그건 불가능한 거죠.
 


작가와 아이유, 둘의 공통점은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음을 기꺼이 인정한다는 점에 있다. 나 또한 모두에게 좋게 보이고,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부정적인 이야기 또한 듣게 된다. 설사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의 추악한 부분을 아니, 결코 모든 나를 완전히 좋아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결국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나는 단 하나가 아니라 아주 많은 사람일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었다. 나를 좋게 보는 A가 보는 나도, 나를 나쁘게 보는 B가 보는 나도. 그 둘의 이야기가 상반될지라도 결국 모두 나인 것이다. 내가 단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관념을 기꺼이 버려 보았다.

 

나는 저 글을 읽으며 내가 나를 조금 편하게 미워해도 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내가 인정하지 못하는 나까지 끌어안으며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굳이 그래야 하나, 싶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 대로 싫어하는 게 오히려 나를 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그걸 손에 쥐고 계속 원망할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모아서 성장시키는 것이라는 사실 또한 배웠다. 그러다 보면 더 나은 나를 찾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마저도 조금은 괜찮게 보이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것이니 말이다.


<회피형 인간>이라는 제목 때문에 이 책이 회피형 인간에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모든 인간들이 적어도 한 번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어느 정도의 회피성을 가지고 있을 테니 말이다. 오히려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본인이 가진 회피성을 발견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나를 이해하는 것이 남을 이해하는 길이고, 남을 이해하는 것이 나를 이해하는 길이지 않은가.

 

 

 

에디터 명함.jpg

 

 

[박수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