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웅도 각색이 되나요, 프렌치 내한 뮤지컬 나폴레옹

글 입력 2023.05.1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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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도 각색이 되나요

프렌치 내한 뮤지컬 <나폴레옹>

 

 

 

각색(脚色)이 만드는 각색(各色)의 작품



실존 인물을 극화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각색의 작업일 수밖에 없다. 인물의 필수적인 요소는 그대로 재현하되, 대부분은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품새로 창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임무를 짊어진 창작자는 일종의 각색가가 되는 셈. 누군가가 살다 간 인생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새로 만들지,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을 선택하고 배제해야 할지는 그 삶의 주인이 아닌, 각색가의 몫이 된다. 그리고 이들의 각색(脚色)을 통해 하나의 인생은 각색(各色)의 여러 작품으로서 서로 다른 위상을 지닐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뮤지컬에서 특히나 주요하다. 뮤지컬계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극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실존 인물의 서사가 흥미로운 소재가 되어 줄뿐더러 제작과 투자 면에서도 안정성을 보장하기 때문일 것이다(흥행 원작을 뮤지컬화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작년만 해도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디아길레프>), 프리다 칼로(<프리다>), 마그레타G.젤러(<마타 하리>),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엘리자벳>) 등 다양한 실존 인물들이 타이틀롤로서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보자면 뮤지컬 서사는 각색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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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내한 뮤지컬 <나폴레옹> 역시 같은 과제를 안은 작품이다. 작가 앤드류 사비스톤과 작곡가 티모시 윌리엄스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1769~1821)를 각색의 대상으로 삼아 1994년 캐나다에서 뮤지컬 <나폴레옹>의 초연을 올렸다. 이후 영국 웨스트엔드, 독일, 미국 브로드웨이 등을 거친 작품은 2017년 한국에 논 레플리카 공연으로 처음 소개됐고, 올해 5월에는 한국 프로듀서팀에 의해 세계 최초 불어 공연으로 오르며 세계 무대를 향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나폴레옹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를 황제로 이끈 조력자 탈레랑, 그리고 매혹적인 연인 조세핀을 중심으로 하는 갈등과 사랑의 대서사시”를 그려내겠다는 보도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작품은 나폴레옹이라는 매력적인 원 텍스트를 각색하며 새로운 이야기로 우뚝 서고자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고증의 여부보다는 각색의 우열일 터. “<레 미제라블>, <노트르담 드 파리>를 잇는 프랑스 3대 뮤지컬”을 향한 원대한 꿈은 바로 여기에 달린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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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나폴레옹을 향한 시선



뮤지컬 <나폴레옹>이 취하는 전략은 실존 인물을 다룬 여타 뮤지컬과 유사하다. 작품의 오프닝과 엔딩에서는 ‘워털루 전투’에 선 나폴레옹의 뒷모습을 보여 주며 수미상관을 이루는데, 그 머리와 꼬리 사이에서 서사를 펼치며 캐릭터로서의 나폴레옹을 빚어내는 식이다. 관객에게 오프닝의 나폴레옹은 '불가해한 형상'이지만, 창작자들이 각색한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엔딩의 나폴레옹은 '이해할 수 있는 인간'으로 달리 보이기 마련인 거다.


결론부터 말해 보자면 작품이 보여 주고자 한 나폴레옹은 다면적인 인간이다. 군인, 황제, 인간으로서 여러 면모를 가졌던 나폴레옹을 하나의 핀으로만 조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작중 나폴레옹은 민중을 이끄는 참된 영웅인 것 같지만, '대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는 학살자이기도 하다. 또한, 군사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는 섬세한 지도자면서, 동시에 무리한 전쟁으로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폭군이기도 하다. 나폴레옹이란 한 인간이 그려내는 밝고 어두운 궤적,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그의 가장 찬란했던 영광. 작품이 각색한 나폴레옹의 이야기는 바로 이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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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최승연 평론가의 지적처럼 작품의 관심은 "나폴레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아닌 감성적 재현"에 치중되어 있다. 군데군데 요소들은 나폴레옹의 상반된 면모를 아우르려 하지만, 정작 '나폴레옹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제대로 던져지지 못한다. 오히려 작품은 탈레랑, 조세핀과의 관계와 치닫는 갈등 속에서 '나폴레옹이 무엇을 느꼈나'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조세핀과의 사랑이 비극으로 점철되고 영광이 저물어 가는 2막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탈레랑의 계략과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나폴레옹은 비극의 주인공으로 정형화되고 만다. 작품 말미에 ‘최후의 성전(The Last Crusade)’이라는 넘버가 재차 그의 다면성을 상기시키려 하지만, 관객이 2막 내내 보아왔던 것은 사랑 때문에 고뇌하고 상황 때문에 괴로워하는 남자가 아니었던가.


인물의 풍부한 레이어가 제대로 독해되지 않고 감정 위주로만 전개가 이어지다 보니 오히려 캐릭터의 주체성과 주제 의식은 약해지고 말았다. 갈등 상황과 인물의 감정만이 주되게 다뤄지는 까닭에 궁극적으로 그가 목표한 것과 포기한 것, 그리고 그 이유가 선명해지지 않는 것. 연대기적 정보는 정보 그 이상의 의미를 획득하지 못하고, 그가 끌어낸 어떠한 변화나 사건보다는 그가 변하는 상황 속에서 느낀 감정만이 강조된다. 가령, 나폴레옹이 조세핀을 정치적인 이유로 떠나보낼 때의 결심은 잘 드러나지 않는 반면, 그녀의 죽음 후 절망감은 강하게 느껴지는 식이다. 이 작품의 각색이 여타 실존 인물 뮤지컬, 남성 영웅 서사 뮤지컬과 구별되는 ‘특별한 나폴레옹’을 만들었다고 보기 힘든 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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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불가능이 없는 주인공과의 여정 


 

다소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분명 뮤지컬 <나폴레옹>은 역사 속으로 조용히 사라질 작품이 아닌 듯하다. 연출이자 나폴레옹 역으로 작품에 참여한 로랑 방과 세계 최초 불어 공연을 올린 제작사의 포부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던 나폴레옹인바, 그의 도전 정신을 따라 작품 역시 앞으로 진군할 것으로 보인다. 그 동력은 아마도 나폴레옹이란 인물 자체가 가진 강렬한 힘과 티모시 윌리엄스의 웅장한 넘버에서 나올 것이다. 더불어 제롬 콜렛이 연기한 탈레랑 캐릭터 역시 단순한 안타고니스트 혹은 해설자를 넘어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는 저력을 지니고 있으니 이들의 다음 여정도 기대해 봄 직하다(오히려 탈레랑이 나폴레옹보다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더 좋은 공연을 위해 텍스트 외적으로도 신경 쓸 부분이 있다. 자막으로 제공되는 한국어 가사는 송출 타이밍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맞춤법 역시 정밀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내한 공연에서는 관객 대부분이 프롬프터 속 언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만큼 작은 실수가 집중을 방해하고 작품에 대한 느낌을 좌우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무엇보다 앞으로 세계 무대를 타겟팅 하겠다면 ‘사소한 일이 가장 큰 일을 결정함을 보았다’는 나폴레옹의 말을 유념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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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야박하게 말하면 나폴레옹의 이야기는 '남 일'이다. 나폴레옹의 자리에 다른 어떤 이름을 넣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의 삶과 죽음, 꿈과 좌절, 사랑과 배신 등은 이미 지나간 옛일이 아닌가. 하지만 긴 러닝타임 동안 우리가 남 일을 보러 기꺼이 객석에 앉아 있는 건, 남의 일생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되짚어 보게 만들어 주는 좋은 작품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린 평생 직접 만날 수도 없고, 만나더라도 말도 통하지 않을(정밀한 프롬프터가 있다면 모를까!) 몇백 년 전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시선을 보내는 것 아닐까.


앞으로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이 어떠한 각색(各色)을 더할지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나폴레옹의 말을 각색(脚色)해 보자면 ‘산다는 건 곧 고통을 치르는 것과 같은’ 인생사 속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는 신’이 아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인간’을 만나는 것. 그래서 우리 삶을 비춰 보는 것. 각색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영광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니려나. 인생의 영광은 '덧없을' 지 몰라도, 좋은 이야기가 된 인생은 영원한 빛으로 남아 오래도록 빛날 테니 말이다.

 

 

참고

최승연, 뮤지컬의 공식과 '인간' 나폴레옹-뮤지컬 <나폴레옹>, 연극평론 통권86호, 연극과평론, 2017.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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