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숨 참고 Love dive : 현대인의 '사랑'에 관하여 [사람]

글 입력 2023.05.1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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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이 있기 전, ‘자유연애’가 있었다. 중매로 짝을 맺던 시절 연애는 결혼을 조건으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썸’이라는, 연애인 듯 연애 아닌, 정의되지 않는 형태의 사랑이 더 흔한 세상이다.

 

‘자유연애’라는 말은, 전통적 공동체에서 벗어난 개인이 오롯이 자기 마음의 동기에 의해서만 ‘사랑’을 한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과거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집안의 반대, 사회적 계급 차이, 사회적 조건과 같은 외부적 요인이 이들 사랑의 유일한 장애물이었다. 근대사회에서의 개인은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자각한 것이다.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는 한 개인이 ‘자유’를 획득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유에 잇따르는 수많은 ‘위험’까지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즉, 현대사회의 개인은 자기 계발을 통해 '개인의 능력치'를 끊임없이 검증시켜야 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울타리가 사라지고 경계가 불분명한 현대의 개인은 자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썸’도 이런 시대적 분위기 안에서 탄생했다. ‘사랑’조차 ‘리스크’인 세상에서 개인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썸이다. 정의되지 않은 관계에서의 불안함, 그러나 아직 ‘공식적 관계’는 아니기에 여러 미래의 위험요소를 방지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의 안도감. 이 모순된 감정이 썸을 계속 타게 하는 요인이다. 따라서 요즘 로맨스물에서의 사랑은, 개인의 발전, 감정 등 내부요인에 의해서 어려움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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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 말하면 현대 사회의 사랑의 동기는 오직 ‘사랑’뿐인 것이다. ‘행복’이라는 단어만큼 추상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섹슈얼한 느낌이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사람도 있고, 편안한 감정에서 오는 안정감이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어떤 ‘사랑’이건 간에 주변의 이야기나 많은 콘텐츠에서 다뤄지는 사랑 이야기는 비슷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깻잎 논쟁’이나 ‘여사친, 남사친 논쟁’, ‘내가 바퀴벌레로 변하면 어떻게 할 거야?’(연인, 가족에게 일종의 리액션을 기대하는 릴스) 등의 주제를 쫓아보면, 결국은 끊임없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해야만 하는 불안한 현대 상을 반영한다. 내가 아닌 다른 여자, 남자의 깻잎을 떼어준다거나 다른 친구인 여자, 남자와 친하게 지낸다는 등의 문제가 항상 논쟁거리가 된다는 사실은 ‘사랑이 식으면 관계도 곧 끝’이라는 전제를 동반한다.

 

그만큼 ‘사랑’은 유동적이다. 더 이상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헌신적인 사랑이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평가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개인사에 대해 크게 속박하지 않고, 쿨한 관계, 서로가 윈윈하는 관계가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여겨진다. 연애도 스펙인 시대에서 우리는 괜찮은 상대를 찾기 위해 또 끊임없이 자기 계발 한다. 반대로, 어울리는 상대를 찾기 위한 조건(외적이던, 내적이던)도 따진다. 연애를 위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 또한 굉장히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수많은 연애 프로그램에서 며칠 만에 결실을 맞는 게 과연 가능한가 싶으면서도?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서 프로그램을 통해 (그래도 나름 검증이 된) 공통의 목적을 지닌 남녀들이 짧은 시간 안에 ‘사랑’이라는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보면 나쁘지 않은 방법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말그대로 선택과 집중이다.

 

이렇듯 사랑하기 힘든 세상이라고 하지만 연애와 사랑은, 아직도 중요한 문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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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2023년이라는 현대를 살아가는 민지연이라는, 나 개인의 삶은 어떠한가? 말하면. 나 또한 수많은 위험부담을 계산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일 뿐이다. 개인의 발전과 이상을 더 중요시 하는 편에 가까웠던 나는 ‘사랑’이라는 리스크를 굳이 감수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이렇지만, 뭐 결론은 연애 경험이 적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나를 향해 무의식적으로 힐난했던 적이 있다.

 

‘신여성’이라는 말이 나온 지는 100년이 다 되어 가는데, 호감있는 상대가 있으면 난 왜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가.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행위를 습득, 모방하지 못한 나로서는 연애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약점을 가지고 있는 걸까? 등등의 생각들. 한편 ‘나’ 정도 되면 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저울질하며 스펙을 따지는 티 나지 않는 계산적인 생각도 분명 자리했었다. 또한, 누군가의 우주를 이해하고 포용해야 하는 일 자체가 굉장히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아직 부족한 게 많은데. 이와 같은 무한의 내적 소용돌이가 사랑 앞에서는 나를 ‘얼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소용돌이가 결국 소용이 없을 때 사랑이 찾아왔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약점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데서 시작된 것 같다. 연애도 결국 사람 사귐의 일이다. 수많은 위험 요소를 고려하는 탓에 그 무엇도 시작 못 할 거면, 차라리 고려를 안 하는 게 낫다. 물론 끊임없이 생각이 오가겠지, 어떤 계약서로 사랑을 의무화한 게 아니므로 ‘너 나 사랑해?’ 등의 뻔한 말을 내뱉을 것이다.

 

현대인의 사랑의 동기는 오직 ‘사랑’뿐이다. 오히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는 ‘사랑’외에 기댈 수 있는 요인 많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또 사랑을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처럼 결혼이 자연스러운 선택지로 여겨지지 못한 상황에서 연인은 서로 간의 사랑 확인을 매번 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영원의 약속이라고 여겨지는 계약이라도 있으면, 이렇게 불안하지는 않을텐데. <연애정경>을 펴낸 박소정의 말에 의하면, 연애는 정반합이 없는 반복 재배열되는 사랑이다. 

 

그렇다면 또다시 반문해보자. 어차피 반복 재배열되는 것이 사랑이라면 우리는 왜 이 행위를 지속하는 걸까. 시간 낭비, 감정소모를 동반하는 사랑을 우리는 왜 해야 할까. 그 이유 역시도 역설적으로도 또 '사랑'이다. 

 

이처럼 현대인의 사랑의 동기가 오직 '사랑'뿐이라면, 한번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다른 것 다 떠나서 말이다. 어차피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그렇게 못난 사람도 아니다. 사랑 이야기가 늘 흔해빠진 레파토리로 반복되는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사랑' 앞에서는 우리 모두는 '보통'이 되니까. 이상할 것도, 별날 것도 없는 보통의 사람이 살아가는 정반합 없는 인생에서, 유일하게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 역시 보통의 사람이니까. 그러므로 한번 빠져보자. 숨 꾹 참고 Love Dive.

 

 

*참조 및 인용

박소정, 『연애 정경 (우리 연애 이래도 괜찮을까?)』, 스리체어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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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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