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낯설고도 묘한, 그러나 확실한 끌림 - 리턴 투 서울 [영화]

글 입력 2023.05.03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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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리턴 투 서울>은 캄보디아계 프랑스인인 데이비 추 감독의 신작으로, 한국에서 태어나자마자 프랑스로 입양을 갔던 ‘프레디’가 25세에 다시 한국에 방문하며 겪게 되는 일들을 다룬다.


프레디는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일본을 여행하려다가 비행기 일정이 틀어져 항공사 직원의 권유로 ‘어쩌다 우연히’ 자신이 태어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이것이 그녀의 첫 번째 리턴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는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한 프레디와 그곳에서 일하는 테나의 첫 만남이 그려진다. 테나에게 헤드폰을 건네받아 한국 노래를 들어보며 흥미로운 듯한 표정을 짓는 프레디의 모습에서는 그녀가 자신이 태어난 이 나라에 대해 어떤 거대한 미련을 가졌다기보다 그저 묘한 호기심이 어린 마음을 품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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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아는 테나와 친구가 된 프레디는 여러 면에서 다르게만 느껴지는 낯선 이 땅에서 그녀와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려본다. 어떤 이는 프레디의 외모가 ‘전형적인’ 한국인 상이며, 전혀 프랑스인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처음에 프레디는 친부모를 굳이 찾으려는 마음도 없었지만, 테나는 친부모의 소식이 궁금하지 않냐며 한 입양 단체를 찾아가 볼 것을 권한다. 어쩌다 한국에 오게 되었듯, 어쩌다 보니 프레디의 발길은 그곳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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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의 친부와 그의 가족들은 “그때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너에게도 더 좋은 결정이라 생각했다.”고 말한다.


교육 환경과 경제적 측면에서는 그러한 생각이 어느 정도 일리 있었을 수도 있겠다. 만약 프레디가 계속 한국에서 ‘연희’로 머물렀고, 모든 상황이 너무도 좋지 않아 최악으로 치달았다면 오히려 불행한 삶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녀의 의지가 한 방울도 섞이지 못한 결정에 만약이란 의미 없고 무례한 가정일 테지만.


그녀가 알지도 못하는 친부모에게 가져왔을 감정을 가늠해보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자신의 근원에 대해 스스로 여러 차례 고민하고 질문해왔을 것이란 사실은 분명했다. 프랑스에서 사는 동안 친구들은 물론 가족과도 확연히 다른 생김새를 가진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어린아이에게 과연 쉬운 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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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에 우연히 한국을 방문한 이후에도 프레디는 두 번 더 자신이 태어난 이 나라로 ‘리턴’한다. 한국에 대한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어쩌면’이라는 생각으로 돌아와서 한국에서의 생활을 즐기기도 했고, 세 번째에는 무기 회사에서 일하며 출장차 방문하게 된다. 이때는 프레디 스스로 이것이 마치 운명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그녀의 여정이 삶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영화의 초반에 그녀는 악보를 처음 보고 연주하는 ‘시주’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 연주하는 음악이지만 곡에 대한 이해도 해야 하고, 어떤 장애물이 나올지 모르는 채 건반을 하나씩 누르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단 하나의 삶이 주어졌으며, 지금은 내가 처음 맞는 순간이다. 전혀 새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상들도 무한한 시간의 폭 안에서 보면 점점 익숙해지는 과정을 경험하는, 그조차도 새로운 순간들이라 생각한다. 처음 보는 악보를 연주하듯 앞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발걸음을 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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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라는 곳에서 우리는 누구나 이방인이다. 프레디가 프랑스인도, 한국인도 아닌 것 같은 자신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느꼈던 것처럼 내가 있어야 할 곳과 해야 할 일을 찾는다는 건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일이든 사람이든, 삶의 방향성이든, 어떤 대상에 대해 서서히 이런 마음을 품게 된다.


어쩌다 보니 우연히.

어쩌면, 하는 기대감.

그리고 ‘운명’이라 말할 만큼의 어떤 확신.


하지만 확신이라는 것도 나만의 느낌이기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며 절망과 슬픔을 안겨주기도 한다. 프레디가 친어머니에게 받은 이메일 주소가 사실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 느꼈을 감정과 같이.


그때 프레디의 눈에 띈 건 작은 피아노였다. 한국도 프랑스도 아닌 제3의 나라에서 잔잔히 연주를 하는 프레디를 보여주며 영화는 또 한 번의 새 출발을 알린다. 어느 한 곳에 속할 필요 없이 그저 단단한 자기 자신으로서 나아가는 여행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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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에 비친 서울의 모습은 처음엔 관광객의 시선처럼 이국적이고 낯설다. 마치 다른 나라 같은 인상을 주는, 꽤나 날카로운 색감으로 그려지다가 프레디의 여정에 따라 점차 편안한 색채로 변화한다.


늘 봐온 서울이지만 다르게 보이고, 프랑스어와 한국어가 뒤섞여 들려온다. 클로즈업이 잦은 촬영 기법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프레디의 개성 있는 성격과 행동도 신선했다.


<리턴 투 서울>은 모국으로 돌아온 입양인과 친부모의 극적인 만남을 강조하며 감동의 메시지를 주려 하는 기존의 틀에 갇히는 대신 인물이 가진 현실적이고 복잡한 감정을 묘사하는 것을 택한다. 


배우 경험이 전무한 한국계 프랑스인 아티스트 박지민의 본능을 통한 탁월한 연기는 예상하기 어려운 전개에도 관객이 프레디의 여정을 계속 뒤따르며 집중하도록 하는 매력이 있었다.


알듯 말듯한, 낯설고도 묘한 영화. 그러면서도 확실한 끌림을 주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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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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