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시, 서울로 - 영화 '리턴 투 서울'

'나'를 찾아가는 여정
글 입력 2023.05.03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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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 추 감독, 한국계 박지민 배우 주연의 영화 <리턴 투 서울>

 

출연 박지민, 오광록, 김선영


<리턴 투 서울>은 우연히 자신이 태어난 서울로 리턴한 25세 ‘프레디’, 어쩌다 한국 부모를 찾으면서 시작된 어쩌면 운명적인 여정을 담은 2023년 우리가 열광할 완전히 낯선 영화. 캄보디아계 프랑스인으로 프랑스 영화계를 이끌 차세대 주자로 떠오른 데이비 추 감독의 신작이며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아티스트 박지민의 첫 배우 데뷔작이다. 

 


신선하고 매력적인 영화. 다 보고 난 뒤에도 알 수 없는 여운이 남는 영화.

 

무엇보다 신인 배우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채롭고 생생한 주인공 ‘프레디’를 연기했던 박지민 배우의 표정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프레디의 시선과 호흡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깊은 눈동자와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때론 담담하게, 때론 격렬하게 모든 것을 토해내는 프레디에게 관객들은 종종 숨을 죽여 집중했다. 매력적인 페이스와 연기력을 가진, 앞으로가 정말 기대되는 배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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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동자와 개구진 미소를 가진, 매사에 당당하고 자유분방한 소녀 프레디. 누구보다 한국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사실 프레디는 한국어는 단 한 마디도 말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프랑스인이다. 기억나지도 않는 어린 시절 프랑스로 입양되었던 그녀에게 모국이란 프랑스이며, 모국어란 프랑스어이다. 25살의 그녀를 서울로 이끈 건 다분히 충동적이고 우연한 어떤 사건들의 결과였다.


프랑스인 양부모와의 통화에서 이번의 한국행은 다분히 우연한 사고였다고 프레디는 투덜댄다. 항상 가고 싶었던 도쿄행 비행기가 마침 기상문제로 결항이 되었고, 마침 서울이 관광하기 좋다며 한국행 비행기를 권하던 직원의 추천을 오케이 했을 뿐이라며. 과연 그것이 그녀가 자신이 떠나온 나라를 다시 밟게 된 유일한 이유였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다분히 우연하고 충동적으로 밟은 서울에서 프레디는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그것은 처음으로 내가 시작된 곳을 찾는 여정이었으며,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는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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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친구 테나의 권유로 프레디는 충동적으로 입양 센터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자신의 한국 이름이 ‘연희’라는 것과, 자신의 친부모에게 자신이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다. 3번의 시도 끝에 부모 쪽에서 원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권할 수 없다는 사실도. 친절하지만 어쩐지 사무적인 거리감이 느껴지는 센터 직원의 “연락을 원하십니까?”라는 물음에 프레디는 고개를 끄덕인다.


막연한 불안함과 답답함은 친부모를 만나기만 하면 해결될 것만 같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채 마주한 친부모와 한국은 프레디를 더욱 낯설고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연락이 닿은 친아버지의 고향으로 내려간 군산에서 프레디는 처음으로 가족들을 만난다. 도시에서 살고 싶어하던 어머니와 헤어지고, 쭉 이 작은 바닷가 도시에서 살아왔다는 아버지. 연신 프레디의 팔을 쓰다듬으며 안타까워하는 할머니도, 그땐 그럴 수 밖에 없었다며 자신을 이해해달라는 듯 한탄하는 아버지도, 낯선 가족들도. 준비되지 않았던 프레디에겐 모두 이상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프레디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친엄마와의 연락은 닿지 않았고 매일 밤 한풀이하듯 자신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국어로 문자를 보내는 친아버지의 관심은 답답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최악의 첫인상을 남긴 채 프레디는 도망치듯 첫 한국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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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간다.

 

방황하고 괴로워하면서도 프레디는 끝내 서울을 완전히 외면하고 떠나지 못한다. 돌아오고 또 돌아오며 자꾸만 그 주위를 맴돈다. 몇 년째 친엄마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프레디에게 센터로부터 친엄마가 프레디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짤막한 연락이 닿은 날, 프레디는 밤거리를 방황하며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을 찾는다.

 

그녀는 자신의 생일 때마다 생각한다. ‘생일날이면 늘 같은 질문을 해요. 우리 엄마가 한 번쯤은 내 생각을 했을까?’


 

나는 널 내 삶에서 언제든지 지워버릴 수 있어.

 

- 프레디

 

 

아주 오래된, 지극히 깊은 상처가 아파올 때마다 프레디는 마음껏 밤거리를 누비며 유흥에 몸을 맡긴다. 마음대로 춤을 추고 변덕을 부린다. 그 어떤 만남도, 사랑도 프레디는 언제든 쉽게 흘려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도 너무 강렬해 감히 지울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가령 자신의 근본적인 정체성 같은 것들, 자신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들. 그 물음의 시작이자 끝이 될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친엄마 같은 것들. 종종 깊이를 알 수 없는 좌절과 공허함은 프레디의 삶을 송두리째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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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끊임없이 프레디를 끌어당기고 밀어내길 반복한다. 자신을 입양 보낸 친부모의 나라 한국에서, 자신을 보고 싶지 않다는 친엄마의 연락은 프레디에게 마치 두 번 버림 받은 것 같은 감상이 들게 한다. 서울은 프레디에게 너무 ‘해로웠다’. 낯선 문화, 낯선 사람, 어디 한 곳 뿌리내리지 못하고 서울을 부유하며 방황하던 프레디. 프레디에게 한국이란 그런 곳이었다. 언제나 자신을 밀어내는 것만 같은 곳.


그러나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강한 인력이 프레디를 끊임없이 끌어당긴다. 요즘 작곡하는 취미가 생겼다며 아버지가 프레디에게 들려 준 짤막하고 서투른 멜로디에서, 프레디는 평생 자신의 안에서 자신만 들을 수 있었던 멜로디를 발견한다. 그것은 옆에 앉아 있던 프랑스인 남자친구는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만이 공감하고 공명할 수 있는 어떤 깊은 울림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어떤 끈과 같은 단단함이었다. 감히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하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던 프레디가 많이 기억에 남는다.


오랜 기다림 끝에 친엄마를 만나게 된 자리에서 프레디는 센터의 직원에게 한 가지를 묻는다. ‘법적인 이유로 센터에선 친부모에게 최대 3번까지만 연락할 수 있다고 했는데, 어째서 6번이나 연락을 시도해줬던 거냐’고. 센터 직원은 그저 친절하게 ‘담당자분께서 프레디 씨의 사정을 알고 노력해주신 것으로 보여요’라고 답한다.


25살, 프레디는 어리고 아무것도 몰랐던 나이에 충동적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았었다. 그리고 입양아가 원해도 부모 측에서 원하지 않는다면 서로 만날 수조차 없다는 사실에 부당해하며 화를 냈었다. 그리고 지금, 몇 년의 기다림 끝에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친엄마를 마주하게 된 프레디는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크고 작은 누군가의 친절과 어떤 계기들은 서울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프레디의 여정에 어떤 이정표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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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무언가 꽉 닫히지 않은 채 끝났던 장면도 커다란 여운이 남았다. 영화나 소설을 볼 때마다 관객들은 정말 즐거운 이야기였어,라며 마지막 장을 덮지만 사실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지극히 기쁘고 슬프고 아픈 일도 결국엔 지나가고 우린 계속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영원한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교훈이나 깨달음도 어쩌면 삶 속엔 없는 건 아닐까. 낯선 도시의 낯선 여관, 낡은 피아노 앞에 앉아 더 이상 누군가가 아닌 자신만의 멜로디를 서툴게 연주하기 시작한 프레디의 삶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일지도 모른다.


감독은 실제 한국 입양아 친구와 한국 가족을 만난 경험을 바탕으로 <리턴 투 서울>의 각본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만큼 현실적이고 생생한 일상의 색이 영화 속 곳곳에 묻어있다. 오광록, 김선영 등 연기파 배우들의 감초 연기에 종종 웃음이 나기도 했다.


<리턴 투 서울>은 2022년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을 시작으로 2022 LA비평가협회 뉴제네레이션상, 보스턴비평가협회 작품상, 아테네국제영화제 작품상, 아시아태평양스크린어워즈 신인 연기상과 감독상 등을 수상했으며 일찌감치 2023년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예비 후보와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 국제영화상 후보에 이름을 올려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잔잔하고 강렬한 여운을 주는 매력적인 영화 <리턴 투 서울>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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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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