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의 흑백은 당신의 컬러보다 아름답다 [영화]

글 입력 2023.04.3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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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영화가 아닌 컬러 영화가 영화계의 흐름을 주도하게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오직 흑백의 영상만을 접하던 과거의 사람들이 처음으로 다양한 색채를 지닌 영상을 바라보며 과연 어떠한 감상을 받았을지는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렵지만, 현재의 우리는 사실 '컬러 영화'라는 단어조차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형형색색의 빛깔을 자랑하는 화려한 영화들에 심히 익숙해져 있다.


한편으로 컬러 영화의 대중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흑백 영화를 고리타분한 과거의 무언가로 인식하게끔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흑백 영화의 명맥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으나, 사람들은 대개 '흑백 영화'라고 하면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와 같은 과거의 걸작들을 가장 우선적으로 떠올리기 마련이다.


근래의 흑백 영화가 과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의 흑백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다수의 사람들이 흑백 영화를 그저 과거의 전유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가히 안타까운 일이라고밖에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특별히 흑백이 지닌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영화들을 몇 편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사실 흑백을 떠나서 그냥 재미있는 영화들이긴 한데⋯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솔직한 게 나쁜 건 아니잖아, ⋯나쁜 거 맞나? <비치온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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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낮, 가영은 전 남자친구 정훈의 집에 다짜고짜 들이닥친다. 함께 잠자리를 가지자는 가영의 제안에 황당해하며 거절의 의사를 표하는 정훈. 하지만 차가웠던 정훈의 태도는 가영의 끈질긴 요구에 점차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미 헤어진 연인이라고 해도 이따금 보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것이 정서적인 그리움 때문이든, 육체적인 그리움 때문이든, 혹은 두 가지 모두 때문이든 말이다.

 

괜스레 감성에 젖은 새벽에 뜬금없이 '자니?'라는 두 글자의 메시지를 보내는 찌질한 방법도 있겠고, 술에 거나하게 취한 채로 전화를 걸어 상대방의 최근 통화 목록에 '부재중 전화 1건'을 남겨두는 꼴사나운 방법도 있겠으나, <비치온더비치>의 주인공 '가영'은 조금 더 직관적이고 확실한 방법을 택했다. 바로 전 애인이 살고 있는 집에 직접 들이닥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시종일관 솔직한 면모를 자랑하는 '가영'과 그런 그녀를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정훈'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면, 영화를 통해 두 사람의 관계가 과연 어느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함께 확인해보도록 하자.

 

<비치온더비치>는 흑백 화면과 롱테이크 촬영 기법을 통해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방식을 택한 작품이다. 영화의 대부분이 다른 인물의 등장도 없이 '가영'과 '정훈' 두 사람의 대화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본다면, 9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관객들이 극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도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치온더비치>는 흑백 화면이 제시하는 단조로운 느낌과 두 주인공의 건조하고 애틋한 감정선을 적절히 조화시킴으로써 극의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가히 영리한 영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아름다웠던 봄날의 꿈, <춘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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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간 건달 익준, 공장에서 일하는 정범, 어설픈 금수저 종빈, 그리고 세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예리. 병든 아버지를 돌보는 예리가 운영하는 '고향주막'은 세 남자에게 유일한 안식처이자 오아시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 그들만의 여신이라고 생각했던 예리의 '고향주막'에 새로운 남자가 나타나는데⋯
 

 

우선 <춘몽>의 주연 배우 목록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한예리, 양익준, 박정범, 윤종빈⋯ 익숙한 이름들이긴 한데 한편으로 어딘가 색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남자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이 배우뿐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널리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무산일기>의 박정범 감독, <용서받지 못한 자>의 윤종빈 감독까지. <춘몽>의 세 남자 주인공들은 모두 감독으로서 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있는 것은 물론, 자신의 연출작에 직접 출연하며 출중한 연기력까지 선보인 바 있는 재능꾼들이다.

 

그래서인지 <춘몽>에 등장하는 '익준', '정범', '종빈'이라는 캐릭터는 각각 그들이 과거에 연출했던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연상케 하기도 하는데, 이에 유념하며 영화를 관람해보는 것도 <춘몽>의 재미있는 감상 포인트 중 하나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춘몽>은 그 제목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이 관객들을 마치 꿈과 같은 시간 속으로 끌어당기는 영화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등장인물과 친절하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연출 방식은 자칫 극의 분위기를 소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었으나, <춘몽>은 흑백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아예 극 전체를 모호한 분위기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특유의 산만함을 영화가 지닌 개성으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흑백 화면만이 선사할 수 있는 고유의 황홀함을 가장 직관적으로 제시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이토록 애틋한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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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작스레 암 선고를 받게 된 미스터 모. 자신의 인생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예전부터 간직해왔던 영화 제작의 꿈을 직접 이루기로 결심한다. 그는 영화 감독 아들 스데반과 아들의 여자친구 예원에게 자신이 쓴 영화 시나리오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를 보여주는데⋯
 

 

삶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주인공이 그동안 막연히 간직해왔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을 시작하는 이야기. 어떻게 보면 흔하디 흔한 것은 물론이고 이미 닳고 닳은 서사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쉬이 지나치기 어려운 매력을 품고 있는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이 안고 있는 저마다의 사연, '미스터 모'의 주도 아래 이루어지는 어설픈 영화 제작 과정이 만들어내는 코미디, 그리고 극의 몰입도를 더하는 특유의 정적인 연출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까지. 이러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스크린 속 크리스마스의 감성을 만끽하다 보면, 어느새 영화 속에 완전이 젖어 들어가 있는 여러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미스터 모'는 여러모로 찰리 채플린을 동경하는 인물이다. 찰리 채플린의 과거 무성 영화를 연상케 하는 '미스터 모'의 연출작이자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극중극인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가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순간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이 영화가 흑백이라서 정말 행복하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혹시나 여러분 중 아직까지 흑백 영화의 매력을 경험해보지 못한 분이 계신다면,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가 여러분의 훌륭한 흑백 영화 입문작이 되어줄 터이니 부디 이 아름다움을 하루 빨리 모두와 공유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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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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