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팝아트의 다양한 매력속으로 -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그들의 작품은 매순간 살아있었다.
글 입력 2023.04.10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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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와 브리티시 팝아트 전시가 유독 기대되었던 이유는 '팝아트'라는 키워드 때문이었다. 고상하고 범접하기 힘든, 그래서 제대로 향유할만한 지식과 안목을 갖춘 이들만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던 고전 예술과 달리 누구나 흔히 일상에서 접하곤 하는 대중문화, 매스 미디어와 맞닿아 있고, 그렇기에 말그대로 부담 없이 작품을 '즐길 수 있다'는게 팝아트가 지닌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1960년대 격변하던 영국의 사회상을 반영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시기 영국을 '스윙잉 런던'으로 통칭하는데, 암울하고 척박하던 2차 세계 대전 시기를 지나고 번영과 낙관주의 속에서 대량 생산된 소비 문화가 팽배하던, 말그대로 물결처럼 흔들리며 변화하는 시기 영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팝아트 스타일을 접할 수 있었다. 


전시 명에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이름만 들어가 있었지만, 전시는 호크니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기 보다는 팝아트 전성기를 함께 만들어간 리처드 해밀턴, 피터 블레이크 등 수많은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이토록 하나의 전시회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그러나 한 가지 통일된 주제 하의 작품들을 접해볼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이번 전시가 내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전시장 속으로 들어가 인상 깊었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새로운 예술 팝아트를 이끈 인디펜던트 그룹


 

전시의 초반부는 1950년대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보수적이고 전통적이었던 예술과 문화에 대한 접근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어간 ‘인디펜던트 그룹’에 속한 예술가들의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지금의 팝아트와 대중 문화가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디펜던트 그룹의 작품들은 당시 센세이셔널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인디 펜던트 그룹은 대중매체, 광고, 소비재의 문화적 중요성을 인식한 최초의 예술가이면서 예술과 기술의 관계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룹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에두아르도 파올리치의 <튜링>이라는 작품에서 그러한 두 영역 간의 긴밀한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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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는 수학책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수식 기호들과 함께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가득한데, 이는 제 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의 암호를 해독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인 앨런 튜링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파올리치가 복잡하고 섬세한 디자인을 사용해 공을 들여 70세트 한정판으로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처음 이 작품을 가까이서 보았을 때는 의미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발짝 멀어져서 보니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어렴풋이 어떠한 형상들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는 공군기를 연상케 하는 비행채의 모습, 위에서 내려다 본 듯한 건물들의 모습, 심지어는 인간의 형상까지 있었다. 


튜링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영국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다 1954년 자살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파올리치는 튜링을 기리는 이 작품에서 그가 살아온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자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인간으로서 개인적인 고난과 역경, 그가 이루어 낸 기술 발전의 산물들이 한 데 어우러져 이 작품은 과학과 문화의 교차점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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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나에게 팝아트에 대한 신선한 인상을 심어준 파올리치의 <많은 그림, 많은 재미>라는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1971년 매거진의 표지 디자인으로 의뢰된 것이라고 하는데, 인디펜던트 그룹의 활약으로 더 이상의 미술관에 고상하게 걸린 것만이 예술이 아닌 대량 생산되는 잡지에서도 예술을 찾아볼 수 있는 그 당시 자유로워진 예술계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이 재미있었던 것은 붓을 담은 스프 캔, 스펨, 성조기 등 앤디 워홀, 에드 루샤, 재스퍼 존스,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의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아이코닉한 아이템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는 점이었다. 작품 속에서 성조기를 그리고 있는 코끼리와 그의 등 뒤에서 건너보고 있는 강아지의 표정이 매우 밝고 즐거워 보이는데 이는 예술 실험을 통해 새로운 장르의 포문을 열며 성행하고 있는 팝아트를 ‘놀이’처럼 즐기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담긴 듯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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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해밀턴의 ‘어제의 가정을 그토록 다르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라는 제목의 이 작품에서는 안락의자, 커피 테이블, 진공청소기 등의 제품들로 어딘지 난잡하게 꾸며진 거실에 반 나체로 등장한 두 인물이 존재한다. 남성은 POP이라고 쓰인 커다란 사탕을 들고 보디빌더와 같은 포즈를, 여성은 소파에 길게 누워 인공적일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보면 볼수록 위화감을 풍기는 이들의 조합은 전후 침체된 경제로 여전히 중산층 대부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던 과도기에 어울리지 않은 최첨단 사치품으로 가득한데, 리차드 해밀턴은 각각의 아이템들의 소스를 매거진에서 가져와 콜라주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가정의 풍경 속 가구들은 균형감 없이 중구난방으로 떠돌며 우스운 상황을 연출한다. 


전쟁 이후 과도기를 거치며 대량 생산된 소비 문화로 활기를 띈 당시 영국 상황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이처럼 과도하게 조장된 소비의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다루었기에 이 작품이 유독 인상 깊었다. 어제의 가정을 이토록 다르게 만든 소비 문화가 과연 희망차기만 했을지, 변화한 가정의 불균형적인 모습이 그러한 의문을 던지는 듯하다.

 

 

 

유쾌한 방식으로 사회의 그림자를 담아내다


 

이번 전시의 몇몇 작품을 접하면서 나도 모르게 팝아트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과 마주할 수 있었다. 팝아트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예술이니만큼 그저 단순하고 쉬운 주제들을 주로 다룰 것이라고 은연 중에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담아내면서도 그것을 재치 있고 유쾌하게 팝아트만의 매력으로 풀어낸 작품들이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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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해밀턴은 매일 밤 카메라 셔터를 손에 들고 TV를 보다가 작품 속 장면과 마주쳤다. 주 방위군에 의해 베트남 전쟁에 항의하던 학생 시위대가 잔인하게 발포 당해 누워 있는 이 장면은 비극적이다 못해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수치심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해밀턴은 이 주제가 자신에게 저절로 ‘주어졌다’고 표현했다. 


그의 말처럼 사명처럼 주어진 주제를 그는 예술 작품으로 만들었고, 팝아트가 지닌 특성을 이용해 큰 판 인쇄물 형태로 대량 생산하였다. 우리는 이렇게 배포된 그의 작품을 마주하며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과 마주하게 될 것이고, 더 이상은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역사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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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하면 사회적 사건이 언론을 통해 얼마나 과장되고 부각되는지를 다룬 <가혹한 런던>이라는 작품 또한 눈길을 끈다. 이 작품은 1967년 마약 혐의로 체포된 레드랜즈 체포 사건 당시의 보도 자료들을 콜라주하여 구성되었다. 해당 언론 보도들은 밴드 멤버들이 법정에 출석했을 때의 복장과 그들의 차량, 그들이 먹은 음식들까지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그들의 팬들이 우는 사진까지 게재하며 ‘당신의 우상이 투옥되는 것을 보는 고통’이라는 캡션을 달았다. 


활기차고 자유로운 문화의 중심지라는 당대 보도 속 런던은 이처럼 마냥 반짝이는 면들만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게다가 범죄 사건에 대한 정보를 공정하게 전달해야 할 언론들은 사건의 일면을 있는 그대로 다루기 보다 과장을 더하고, 자극적인 가십거리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리처드 헤밀턴은 해당 작품에서 당대 사회의 어두운 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언론 보도의 양상들을 별다른 연출이나 편집 없이 나열하는 콜라주 방법으로 드러내고 있다. 범죄 사건 보도라고 생각되지 않을 법한 사진들과 자극적인 텍스트들의 향연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언론과 사회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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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셀프의 <전기 의자>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인데, 작품의 위쪽으로 배열된 시인 크리스토퍼의 시가 붉은 색감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 아래로 전기 충격 의자에 앉은 이의 다소 폭력적인 사진이 배치되어 있다. 이는 사형 집행의 순간을 포착한 것이라고 하는데, 국가가 승인한 폭력의 위험성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다.


사형수의 모습에 대해 사실 크게 생각해본 적이 그동안 없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은 생각지도 못했던 주제에 대한 몰입을 한번에 이끌어 내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듯 수 많은 팝아트 작품들은 사회적 이슈와 사건을 특유의 스타일로 해석하여 이목을 집중시키고, 대량 배포되어 사회를 바꾸는 시발점이 되곤 한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남다른 시점


 

이번 전시의 타이틀에도 이름을 올리고 그만큼 팝아트의 선두자로 거론될 만한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들은 그의 명성만큼 다양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작품들을 몇 가지 포인트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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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물의 다양한 양상을 포착하다

 

호크니의 물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는데, 그가 물을 소재로 그린 수영장 시리즈에서 독특한 표현법으로 완성된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반사해내는 수영장에 매료되어 시시각각 변화하는 물의 성질을 화면에 담고자 하였다. 물은 단연코 평면으로 표현하기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대상이었을 것이다.


형체가 분명하지 않아 어디에 담기느냐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고, 깊이감에 따라 다른 색감이 형성되기도 하며 빛을 받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변덕스러운 물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호크니는 수많은 시각적 요소들을 묶어 작품 속에서 다양한 선을 이용해 표현하고 다양한 시점을 반영 하였다. 


수영장 속 인물의 모습을 포착한 위 작품은 사실 하나의 시점에서 촬영된 것이 아니라 여러 초 단위의 시간대에서 촬영된 각각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이어 붙여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하였고, 폴라로이드 속 물은 제각기 다른 성질을 띄고 있지만, 그것이 한 데 모여 호크니가 표현하고자 했던 하나된 ‘물’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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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2. 여러 시점을 반영하다

 

호크니가 물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이용했던 방법은 이후 그의 작품들 속에서도 나타났는데, 그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여러 시점에서 대상의 모습을 촬영하고 그것을 이어 붙여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계속 이어갔다. 위 세 작품 모두 그런 다양한 시점을 반영하고 있는데, 어쩐지 그 이미지가 낯설지 않다. 


사실 우리의 눈은 계속해서 움직이며 변화하는 대상을 포착하고 있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눈 앞의 대상의 모습은 1초 전 대상의 모습과 분명 다르며, 대상이 변화하지 않았더라도 나의 눈이 움직이며 시점이 변하기 때문에 그것은 같은 것을 보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표현한 작품들 속 대상의 모습은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들과 상이하지 않다. 


 

아이패드.jpg

 

 

Point 3. 장르의 한계에 도전하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이토록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끊임 없는 도전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호크니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여러 매체를 이용해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만들어 내곤 했다. 사실 여태까지 아이패드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아이패드 속 작품들은 매우 신선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왔다. 


캔버스에 표현되는 것과 확연히 다른 전자기기 속 작품은 어딘가 투박해 보이기도, 다양한 색감이 표현되어 더욱 화려해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하나의 작품이지만 어떤 기기에서 어떤 밝기로 보여지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디지털 드로잉의 범위까지 뻗어간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이 무엇보다 잘 느껴진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에서 가히 가장 인상깊은 작품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컬처리스트 명함 (1).jpg

 

 

[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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