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는 맛이 무섭다,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영화]

익숙해서 더 재미있는 중세 판타지
글 입력 2023.04.0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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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자면 김치찌개 맛집에서 만족스러운 김치찌개를 먹었을 때의 만족감이라고 해야 할까.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딱 기대만큼의 재미를 보장하는 작품이다.


1970년대에 등장해 세계적으로 수많은 팬을 보유한 동명의 TRPG 시리즈를 원작으로 두고 있는 만큼, 원작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겐 특유의 세계관이나 용어, 규칙 등이 진입장벽으로 다가갈 것이라는 우려가 개봉 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문화가 있는 날에 맞춰 야심 차게 개봉한 이 작품은 그러한 우려 따위는 기우였다는 듯이 아주 반갑게 관객을 맞이했다. 남녀노소 누가 보더라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그야말로 팝콘무비의 정석이었다.

 

중세 판타지에 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CG, 익숙하지만 개성 확실한 캐릭터들, 흔한 듯 약간 비튼 유쾌한 스토리, 적재적소에 배치된 웃음과 감동, 그리고 액션까지.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은 다른 요소가 충분히 상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이 작품은 최근 몇 년간 극장가를 점령한 프랜차이즈 영화들을 따라잡다 지친 우리에게 단비 같다. 무언가를 '복습'할 필요도 없고, 좋아하는 영웅이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긴장한 채 상영관에 들어갈 필요도 없다. 비싸진 푯값에 꼼꼼한 재판관이 될 필요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재미있게 잘 봤다" 며 상영관을 빠져나와 맛있는 밥을 먹고, 웃음이 나던 장면을 조금 얘기하다가, 집으로 돌아가 괜찮은 하루를 보냈다고 일기에 적어두면 충분하다.

 

특히 좋았던 부분 몇 가지를 아래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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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좋아 머리가 크게 고생하지 않을 것 같은 전사 홀가(왼쪽)와 주인공이지만 능력이라곤 열심히 작전을 짜는 것뿐인 에드긴(오른쪽).

 

<반지의 제왕>으로 대표되는 다른 중세 판타지 작품들을 생각해보았을 때,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속 인물들은 어디 한 구석 나사가 빠져있는데, 이것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둘 뿐 아니다. 주인공 일행을 돕는 아직 실력이 부족한 마법사 사이먼이나, 게임 속 NPC처럼 '오로지 직진'의 면모를 보여주는 성기사 젠크를 보며 웃지 않기 어렵다. 또 이들이 무찔러야 할 악의 마법사 소피나는 어떤가? 마치 상사가 싫은 오늘날의 직장인을 떠올리게 만든다.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처럼, 우습고 엉망이지만 그래서 사랑스러운 인물들의 탄생이다. 장편 판타지물 특유의 무게감을 덜어낸 효과다.

 

무게감을 덜어내자 판타지 특유의 성역할 고정관념 역시 깨져, 인물들이 더욱 다양한 역할과 이야기를 제약 없이 맡을 수 있게 되었다. 홀가와 그의 전남편 말라민의 관계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야기를 성별을 반전시켜 보여준 단적인 예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것을 볼 때, 터져 나오는 재미는 두 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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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의 변화뿐 아니다. 주인공 일행을 위험에 빠트릴 것 같은 드래곤이 알고 보면 살이 쪄도 한참 쪄 바닥을 뒹굴며 돌아다닌다던가, 시련을 통해서가 아닌 마법의 힘으로 간단히 포탈을 열어 사라진 유물을 얻는 등 이야기의 흐름 역시 현대인의 웃음 코드에 맞게 변화를 주었다. 덜어진 무게의 또 다른 효과다.

 

극중 에드긴이 손에 넣은 부활의 석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이 작품의 신新 중세 판타지물로서의 가치를 부여한다. 동료와 아내 사이의 저울질은 결국 정상 가족의 신화, 혹은 애착 대상에 대한 집착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판타지물에 언제나 등장하는 악의 무리에 핍박받은 종족에 대한 처우 역시 현대적이다. 단순히 '강한 왕국이 그들을 보살펴주었다'고 끝나지 않는다. 무려 공식 보호조약을 체결하곤, 마치 각 나라의 대통령들이 회담을 갖듯 각 지도자가 나와 악수한다.

 

이는 억압받던 민족에 대한 보상 및 사과를 뭉뚱그리기만 하던 다른 작품과는 다르다. 마치 현실의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듯,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던 그들과 달리 현실을 인식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 우리 역사의 어느 지점과 닮아있고, 잘못에 대해 당연히 속죄해야 한다는 태도는 예술과 사회가 분리될 수 없다는 제작진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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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맛이 무서운 법이다. 알아서 손이 안 가는 것 같아도, 막상 즐거운 식사를 하게 된다.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도 그렇다. 던전이니 드래곤이니, 게임이든 영화든 너무 많이 접해와서 손이 안 가는 제목이다. 하지만 이 망설임을 뚫고 보면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한 그릇 더 먹고 싶네,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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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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