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72kg-사랑=0 [영화]

글 입력 2023.03.27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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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게 해준 브렌든 프레이저의 영화, 더 웨일.

 

272kg의 그는 한 마리의 거대한 고래처럼 유유하게 삶을 떠다니고 있다.

 

 

 

찰리에게 남은 것


 

찰리는 사랑하는 동성 연인과 함께 하기 위해 가정을 버리고 떠났다. 그렇게 떠난 찰리지만, 9년 이후 그의 모습에서 사랑과 행복은 찾을 수 없다.

 

찰리는 연인의 죽음 이후의 상실감을 폭식으로 표출한 듯하다. 272kg 거구의 몸집이 된 찰리에게는 한 발자국 걸어가는 것도, 한 번 숨 쉬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되었다.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찰리는 딸 엘리에게 연락을 한다. 엘리가 어렸을 적 <모비 딕>을 읽고 쓴 에세이를 가슴 속에 가득 품고 그에게 남은 것은 엘리 뿐인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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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는 엘리가 쓴 모비딕 에세이를 모두 외우고 있다. 생애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에도 그 에세이를 듣기를 원했고, 너무나도 잘 쓴 에세이라며 칭찬과 애정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찰리의 행동은 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자 죄책감의 표현이다. 엘리를 만날 수 없었던 시간동안 그가 꾸준히 마음에 새길 수 있는 것은 엘리의 모비딕 에세이밖에 없었다. 딸에게 하고 싶었던 사과는 에세이 한 자, 한 자를 아로새기는 것으로로 대신했고 딸에게 전하고 싶던 사랑의 메시지는 에세이에 대한 칭찬으로 대신한다.

 

“그 에세이는 정말 잘 쓴 에세이야.”

 

 

 

찰리가 닮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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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반복적으로 엘리가 쓴 모비딕 에세이를 언급한다. <모비딕>은 ‘모비딕’이라는 향유 고래에게 다리를 잃은 이후부터 고래에 대한 복수를 위한 집념으로 살아가는 에이해브 선장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에이해브는 평생을 고래를 죽이는 데 바친다. 안타까운 일이다.”

 

겉으로 보기에 찰리는 <모비딕>에 등장하는 거구의 향유 고래와 닮은 것 같지만 에이해브 선장과 닮아있다. 찰리는 모비딕을 향한 복수에만 집착하는 에이해브 선장처럼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상실감에만 빠져있다. 사랑의 실패는 찰리를 끝없는 폭식과 은둔 생활, 자기 비하로 이끌었고, 찰리도 에이해브 선장처럼 감정에 대한 집착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찰리는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는 에이해브 선장과 달랐다. 그는 매몰되어 있는 감정에서 조금은 멀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의 중심에는 찰리의 딸, 엘리가 있다.

 

 

 

찰리에게 필요했던 것


 

9년만에 만난 엘리는 자신을 버리고 간 아빠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 있다. 찰리에게 가시 돋힌 말만 하고,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엘리지만, 어김없이 찰리의 집을 찾아온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아빠를 용서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아빠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이 공존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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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는 엘리가 집에 찾아올 때마다 그녀가 얼마나 멋있는 사람인지를 상기시켜준다. 그는 엘리에게 그동안 전하지 못한 채 마음 속에만 담아두었던 아낌없는 응원과 사랑의 말들을 전하며 점차 변화의 시작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엘리도 마음 깊숙이에 숨겨져 있던 아빠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찰리는 내내 병원 치료를 권하는 간호사 리즈의 말도 듣지 않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토마스의 이야기도 듣지 않는다. 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적인 의료기기를 동반한 치료도, 매일 찾아오는 종교의 믿음도 아닌 사랑이 필요했다.

 

그에게는 사랑을 주고 받는 과정이 필요했다. 사랑의 상실감이 찰리를 여기까지 이끌었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사랑이었다. 찰리는 여태껏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찰리는 엘리를 만난 후, 사랑이 자신을 치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딸에게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며 과거의 상실감과 죄책감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진다.

 

결국 찰리는 에세이를 읽는 엘리의 모습에서 딸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고, 상실감이라는 엄청난 무게에 짓눌려있던 삶에서 벗어나 엘리에게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찰리가 우리가 전하는 것



영화 속에서 사랑으로 자신을 극복해내는 인물은 찰리뿐만이 아니다. 교회의 기금을 훔쳐 달아난 선교사 토마스도 가족의 사랑을 통해 계속되는 고민과 방황에서 벗어나게 된다. 엘리 또한 아빠의 사랑을 깨닫고 세상을 둘러싼 불만과 공허한 의미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영화는 이렇게 우리 곁에 사람이 필요한 이유를 알려준다. 사람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우리의 마음 속을 괴롭히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해주고 용서와 사랑을 나누는 대상이기도 하다. 삶에 의미를 가지지 않았던 찰리에게, 살아있는 순간에서라도 의미를 찾고 싶은 열망을 전달해준 것 또한 사람이기에 그렇게 또 한 번 사람과 사랑을 믿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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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사랑과 구원에 관한 영화이며, 어두운 곳에서 빛을 찾는 이야기이다.”

 

- 제28회 크리틱스초이스 어워즈 브렌든 프레이저 남우주연상 수상소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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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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