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청소년 퀴어 로맨스 단편집 -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 [도서/문학]

글 입력 2023.03.2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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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온전하였던 ‘나’의 기준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 용납할 수 없었던 일들이 쉽게 용인되는 것, 나의 세계를 뒤엎고 새로운 것들을 빼곡하게 채워넣는 것들, 앞서 언급한 것들은 오직 사랑할 때 이루어지는 특이한 일들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자아는 외부 세계와 뚜렷한 경계선을 가지고 있다.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데서부터 자아의 확장은 시작되는데, 거기에서부터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제거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자아를 구축해 나간다.

 

하지만 사랑에 빠졌을 때는 이러한 자아 형성의 단계가 완전히 무시된다. ‘나’의 분별력은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대상과 나의 자아는 다른 것이라고 일깨워 줌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나’와 ‘너’를 하나처럼 인식한다. 사랑하게 될 때 자아와 대상의 경계는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랑한다는 것은 아주 기이하고 신비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청소년 퀴어 로맨스 단편집,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전혀 다른 타인이 함께 생활하게 되고, 가족을 구성하고, 대를 잇는다. 이성애적 사랑을 이루는 부모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가족의 형태이다.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접해 왔던 가족의 모습이 이성애에서부터 기반한 것이기에, 동성애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겨를이 없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라는 책이 더욱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 같기도 하다.


스웨덴 작은 도시 백셰에 방문했을 때 일이다. 한참 퀴어 페스티벌을 진행하고 있던 때여서 나도 거리로 나가 퍼레이드를 함께 즐겼다. 가족 단위의 구성원들이 함께 나와 퍼레이드를 즐기고 있었고, 개중에는 이성애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들도 많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이 씁쓸했던 것 같다.

 

실제로 <천사는 좋은 날씨와 함께 온다>에서는 퀴어문화축제에 갔다가 게이라고 놀림받는 학생의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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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스웨덴 백셰의 퀴어 페스티벌에서>

 

 

퀴어 소재의 작품을 소개하는 공간인 무지개책갈피와 돌배개가 함께 기획한 청소년 퀴어 로맨스 단편집이다. 박서련, 김현, 이종산, 김보라, 이울, 정유한, 전삼혜, 최진영 총 8인의 작가들의 단편을 읽어 볼 수 있다.

 

이전에 청소년 퀴어 소설은 딱 한 편 읽어 본 적이 있다. <곰의 부탁>이다. <곰의 부탁>을 읽을 때는 청소년 퀴어라는 소재 자체를 착안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관찰자 시점으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퀴어 서사 자체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던 느낌이 있다.

 

이번 책을 통해 청소년들이 사랑하며 겪는 웃음, 슬픔, 실망, 감탄 등 다채로운 감정들이 한데 묶여 어우러진다양한 청소년 퀴어 서사를 접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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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실린 「고-백-루-프」(박서련)의 첫 대목, 아주 귀여운 부분이다!>

 

 

 

아주 일상적인 사랑에 대해


 

매일매일 반복되는 지현이의 고백을 이야기한 타임루프 설정의 「고-백-루-프」(박서련), 축구부 소년 수호와 소설을 쓰는 철희의 이야기가 담긴 「천사는 좋은 날씨와 함께 온다」(김현), 짝사랑 중인 '수이'의 연애 상담을 들어 주는 재명의 이야기가 실린 「사랑보다 대단한 너」(이종산), 수영과 유영의 편지로 이루어진 「하울링」(김보라), 무지개색 배지로 상징되는 비밀 동아리에 가입한 두 소녀의 이야기 「스틸 앤드 슛」(이울), 헝가리로 여행을 갔다 친구 라슬로를 좋아하게 되는 건휘의 이야기 「나쁜 짓」(정유한), 바이섹슈얼의 문제가 담긴 「솔로 플레이는 이제 그만」(전삼혜), 헤어진 연인들의 재회 이야기가 담긴 「나의 미래」(최진영)까지 여덟 가지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나에게 작은 떨림과 거기에서부터 오는 커다란 울림을 함께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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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와 손을 잡고 비 갠 골목을 산책하다가 문득 물었어. 우리는 어째서 사랑을 할까? 나의 어리석은 질문에 미래는 곰곰이 생각하다 되물었더. 비는 왜 내릴까? 나도 되물었어. 바람은 왜 불지?"] - 「나의 미래」(최진영) 중에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사랑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어쩌면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청소년들이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

 

이 책 한편에도 독자가 용기를 내어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주게 하는 동력이 심어져 있기를 바란다. 책을 읽는 청소년 독자들이 소망하는 평범한 사랑이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신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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