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순수한 사랑과 어두운 그림자 - 뮤지컬 '보이체크 인 더 다크'

글 입력 2023.03.1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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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절절한 사랑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커튼콜에서 배우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마지막 장면이 끝난 후 이미 두 눈가가 촉촉해져 눈앞을 뿌옇게 가렸기 때문이다.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막을 내리자 마음 속에서 일렁이던 슬픔이 뜨겁게 흘러넘쳤다.

 

뮤지컬 <보이체크 인 더 다크>를 보고 왔다. 해당 작품만큼 사회 현실과 사랑의 관계에 대해 적나라하게 비유한 작품을 본 적이 없었다.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현재에도 벌어지는 동시대의 비극을 생생하게 그렸다. 

 

 

<시놉시스>

 

전쟁 중에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라는 이유로 군인이 된 가난한 남자, 보이체크. 하지만 그는 사람을 죽일 용기가 없다는 이유로 늘 고된 훈련을 받으며 상관인 대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그런 그의 유일한 위안은 고된 훈련이 끝나고 들으러 가는 마리의 노래뿐. 하지만 마리 역시 자신을 멋대로 판단하고 취급하는 사람들로 인해 몹시 지쳐 있는 상태.


그런 마리에게 꽃 한 송이 선물할 돈도 없어 괴로워하던 보이체크는 대신 그녀가 자주 오는 강가에 꽃을 심기 시작하고, 오히려 그의 이런 모습이 마리를 사로잡는다. 각자의 삶에 지쳐가던 중 서로에게 위안을 느낀 두 사람은 마침내 서로의 손을 잡고 영원을 약속하지만, 그들의 아이 한젤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한다.


보이체크는 어떻게 해서든 한젤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마리 몰래 군에서 진행되는 불법 실험에 참여하게 되고, 그 사실을 몰랐던 마리는 보이체크에게 비밀로 하고 다시 노래를 하러 나간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애써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결국 한젤은 죽고 만다.


한젤의 죽음, 마리의 불신으로 완전히 한계에 몰린 보이체크는 결국 정신을 놓아버리고, 두 사람의 관계 역시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미안해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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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뮤지컬 <보이체크 인 더 다크>는 서로 사랑하지만 결국 행복해질 수 없는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가난한 군인인 보이체크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마리는 사랑에 빠지지만, 그들의 애절함과 순수함만으로는 진정한 사랑을 지킬 수 없었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한젤이 병에 걸려도 이들은 충분한 돈을 구할 수 없어 결국 아이마저 떠나보내고 만다. 

 

빛나는 5월에 사랑을 약속하며 두 손을 마주 잡았던 그들이지만, 곧 머지않아 약속은 홀연히 사라진다. 아무리 처절하게 살아도 생계를 꾸리기조차 어려운 삶 속에서 그들의 낭만적인 사랑이 순탄하게 이뤄지는 건 불가능했다. 최초로 약속한 그들의 순수한 사랑은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로 검게 물들었기 때문이다. 

 

극 속 보이체크는 마리에게 처음 약속한 것처럼 언제나 두 손을 놓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의 현실 속에서 감당해낼 수 있는 고통의 무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불안해져가는 마리와 한젤의 상황에서 보이체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스스로를 고통의 덫으로 가두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미안하다"라고 울부짖을 뿐이다.

 

 

 

"완전히 돌아버릴 때까지 계속 돌고 돌다가 완벽히 미쳐버려야만 해"


 

보이체크를 괴롭게 한 군의관이 부르는 넘버 '돌아'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극 속 군의관은 혼란스러운 사회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가 주문처럼 외웠던 이 노래가 <보이체크 인 더 다크>의 '다크'한 색깔을 가장 잘 드러내는 노래라고 느낀다. 

 

극의 배경은 고통스러운 시대를 그리고 있다. 인간의 도덕성이 말살될 정도로 미쳐버린 시대다. 검게 물들은 사회는 보이체크에게 "너도 완벽히 미쳐버려야만 한다"라고 목을 조여온다. 

 

숨 막히는 고통 속으로 내몰린 보이체크. 그는 사랑하는 자식을 살려내기 위해, 한 푼의 돈을 더 벌기 위해 기어코 미쳐버린다. 끊임없이 망가지던 그는 진정한 사람됨의 가치를 마침내 스스로 파괴한다. 설상가상으로 자식과 아내까지 잃게 된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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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의 스토리만 보면 그저 비극일 뿐이다. 하지만 뮤지컬 <보이체크 인 더 다크>의 진정한 매력은 비극이라는 장르 자체에 있지 않다. 그것은 바로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적나라한 현실과, 그 속에서 사랑을 지키지 못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의 쓰라린 고통에 있다. 상상도 공상도 아니다. 너무도 만연하게 지금의 시대에서도 만날 수 있는 누군가의 삶이기도 하다. 


작품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와도 다름이 없다. 척박한 사회에서 순수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그 본질을 지켜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선명히 깨닫게 한다. 

 

실제로 이 작품은 독일 작가 '게오르그 뷔히너'의 원작 희곡 <보이체크>를 재해석하여 2023년의 이야기로 귀환했다. 200년 전과 다름없이 지금도 여전히 권력과 돈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수많은 사람들은 또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기 마련이다. 보이체크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  

 

그리하여 작품은 관객에게 중요한 메세지를 던진다. "순수한 사랑만으로 중요한 것을 지킬 수 있는가. 정의와 도덕을 지키면서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가"라고 말이다. 

 

 

 

부디, 저 강물에 슬픔을 흘려보내기를


 

관객으로서 이 극을 사랑하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연기와 스토리, 넘버까지 삼박자를 모두 갖췄다는 것이다. 보이체크와 마리, 군인들까지 모든 배우들의 생생하고 다채로운 연기가 극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렸다. 동시에 마음을 적시는 넘버가 스토리의 진행을 더 돋보이게 해주었다.

  

작품의 넘버 중에서도 어지러운 시대의 압박감을 대폭 끌어올리는 곡들이 많았다. 군의관과 극 중 군인들이 함께 안무와 노래를 하는 장면은 특유의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진정한 군인', '돌아', '새빨갛게', '거짓 같은 진실' 등이 이들의 매력적인 넘버다. 

 

반면 보이체크와 마리의 애절한 감정을 표현할 때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잔잔한 넘버를 만날 수 있었다. 어려운 시대와는 대비되게 그들이 나눴던 최초의 사랑은 아무런 고통도 눈물도 없이 따뜻하고 빛나는 순간들로 가득했다. 보이체크가 부르는 '세레나데', 보이체크와 마리가 사랑을 약속하는 '우리의 봄' 등이 있다.  

 

단순히 '재미있다, 즐겁다'를 떠나서 이 작품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가엽고 슬픈 감정의 핵심을 찔렀다. 절절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결국 지켜내지 못한 누군가의 슬픔. 이것보다 더 처절하고 가슴 아픈 상황이 있을까. 앞서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극이 끝날 때 눈물바다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토록 눈부신 사랑이 처절하게 꺾이는 것이 선명한 대비효과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뮤지컬 <보이체크 인 더 다크>를 통해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고 병든 사회의 인간성을 회고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은 4월 30일까지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많은 관객들이 보이체크와 마리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시선을 얻기를 바라본다.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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