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가 나와 만나기 까지 - 1

나를 위해 조금은 변하기로 했다.
글 입력 2023.03.1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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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멀리서 봐도 넌 줄 알겠다.


 

내가 일하는 가게는 오랜 단골들을 위주로 장사를 해서 아는 사람만 알아서 다른 손님은 잘 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같은 평범한 날이었다. 평소처럼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엄청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내 이름을 콕 찍으면서 오랜만이라며 살갑게 인사해주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것만 봐도 나인 줄 알겠다며 즐거워했다.

 

지금 말하는 것이지만 누군지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만약 이 글을 보았다면 연락해주길 바란다) 갑자기 말을 걸었던 터라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게 미안하지만 사실 정말 기뻤다.

 

멀리서도 나를 알아봐 주다니!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

 

 

 

같은 반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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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의 나는 좋게 말하면 과묵했고 나쁘게 말하면 답답했다. 낯을 가려 누군가에게 내 의견을 말하기가 부끄러웠고, 당황하면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지고 더 나아가면 눈물이 나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는 더 그랬다.

 

시키면 우물우물 대답은 했지만 아주 작은 소리였고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거나 손을 들고 의견을 말할 일은 그저 피하고만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남들 앞에서 틀린 대답을 해서 창피당하고 싶지도, 당황해서 울고 싶지도 않았던 아이는 말을 줄이기 시작했다.

 

가족이나 아주 친한 친구들과 있는 게 아니면 말을 잘 하지 않았다. 대답해도 고개만 끄덕, 뜻이 전해질 정도 약간의 행동으로 의견을 표현했다. 아주 샌님 같은 아이였다. 적당히 공부 잘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조용한 아이. 달리기가 느려 운동장에서 같이 놀면 재미없는, 그래서 같이 놀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아이.

 

이름이라도 특이하면 좀 더 오래 기억할까 싶었지만, 이름도 흔해서 같은 학교에 같은 이름인 아이도 둘 셋은 되었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존재감이 흐릿했다. 당시에는 흐릿한 존재감에 대해 별생각 없었다.

 

하지만 점점 자랄수록 흐릿한 존재감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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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있었어?


 

중학교에 입학하고 다들 사춘기를 겪으며 성숙해지면서 조금 달라졌다. 예전처럼 한 반이 다 같이 사이좋게 라는 느낌보다는 무리의 집합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유행에도 민감해서 순식간에 좋아하는 것이 달라졌고 좋아하는 게 비슷한 친구들끼리 붙었다 떨어지며 무리를 지었다.

 

유행을 잘 몰랐던 나는 무리에 끼기 힘들었다. 하나에 익숙해지면 이미 유행이 지나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친했던 친구들은 다들 무리가 있었다. 무리에 끼기 위해 억지로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좋아하는 척하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다시 말수는 줄어들었고 의사 표현도 흐릿해졌다. 다수결에 따라갔고 내 의견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더 생각했다. 흐릿하게 의견을 표현해도 묵살당할 때도 있었고 나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대충 결정할 때도 있었다. 때로는 내가 거절을 잘 못하는 걸 알고 무리한 부탁을 해오기도 했다.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답답함과 불만이 조금씩 쌓여갔다. 이런 상황이 된 것에 화가 났고 가장 많이 화가 났던 건 이렇게까지 상황을 악화시킨 내가 너무 답답하고 싫었다.

 

그래서 달라지기로 했다.

 

 

 

저 여기 있어요!


  

혼자서 속으로만 생각하던 걸 밖으로 끄집어내야 사람들이 알아준다는 걸 깨달았다. 작은 행동으로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어리광이었다. 적어도 내 의사는 전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멀리서 봐도 '아 쟤, 걔다.' 생각하게 되는 인상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 생각을 빨리 정리하고 말이나 행동으로 할 수 있어야 했고 그 이전에 그러려면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아야 했다.

 

어떤 성격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남들이 인식할 수 있는 나를 위해서 먼저 나를 내가 먼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에게 답답하지 않게,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서.

 

 

[빈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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