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사체에 의한, 피사체를 위한 사진 - 알버트 왓슨 전시회 [미술/전시]

WATSON, THE MAESTRO - 알버트 왓슨 사진전
글 입력 2023.03.0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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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의 사진작가로 불리는 알버트 왓슨의 개인전에 다녀왔다. 작년 일찍이 얼리버드 예매로 표를 구했는데 3월이 되어 겨우 시간을 낸 것이다. 평소 사진에 대한 깊은 조예 없이도 눈에 익은 다양한 상업사진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으니 한 번쯤 둘러볼 것을 추천하겠다.


알버트 왓슨 하면 떠오르는 상업사진은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스티브 잡스가 있다. 그가 사망한 뒤 애플은 왓슨에게 스티브 잡스의 사진 파일을 전송받아 본사 웹사이트 바탕에 올리며 사망 소식을 전했다. 알버트 왓슨은 패션 잡지 보그의 표지를 100회 이상 촬영한 것 외에도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앤디 워홀, 마이크 타이슨 등의 유명인들과 컬래버레이션을 이어가며 패션사진계의 정점을 찍게 된다. 그러나 내게 처음으로 알버트 왓슨의 존재를 각인시킨 것은 유명인의 화보가 아닌 영화의 포스터를 통해서였다.


대표적으로 영화 '게이샤의 추억'과 '킬 빌'의 포스터가 있다. 이는 영화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되었다. 영화에서 게이샤를 연기한 장쯔이의 창백한 얼굴과 붉은 입술은 게이샤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으나 얼굴 위로 부드럽게 흩날리는 머리카락에 그녀의 추억과 한이 실려 전해졌다.

 

 

"인물을 촬영할 때 지리학적 관점으로 얼굴을 들여다보세요. 얼굴은 언덕과 계곡의 풍경을 담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조명을 어떻게 활용할지 그리고 메이크업과 헤어는 어떻게 할지에 도움을 줄 겁니다. 머리를 묶을 것인지 풀 것인지, 약간의 바람을 활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 머리카락은 지리학의 일부입니다."

 

- 알버트 왓슨

 


이번 전시를 통해서 느낀 점은 알버트 왓슨의 사진에는 피사체에 대한 엄청난 애정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 사진을 찍을 때 선명한 화질과 사실적인 모습을 기대한다. 그러나 왓슨은 효과적이고 기술적인 사진 보다 피사체에 대한 조사와 완벽한 준비를, 본 것 그대로의 질감과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1. 피사체에 의한, 피사체를 위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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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프리드 히치콕은 잡지 내지에 본인의 크리스마스 특별식인 거위요리 레시피를 공유하는 콘셉트로 사진을 촬영했다. 요리된 거위를 접시에 담고 찍고자 했던 사진은 알버트 왓슨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인해 바뀌게 된다. 히치콕이 털이 뽑힌 채 크리스마스 장식 리본을 단 거위의 목을 쥐고 있는 콘셉트 사진이었다.


이 같은 사진을 제안한 것은 히치콕 감독의 특징을 담고자 했던 왓슨의 생각 덕분이다. 주어진 콘셉트 안에서 피사체를 살리는 것이 아닌 피사체를 위한 콘셉트를 만들어낸 것이다. 서스펜스의 대가 히치콕 감독이라면 평범하게 요리된 거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곧 요리될 거위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두르고 때를 기다리고 있는 요리사라면 그의 영화처럼 긴장감과 궁금증을 선사해 줄 것 같다.


알버트 왓슨은 사진 촬영에 앞서 철저한 준비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피사체는 인물이 아닌 장소가 될 수도 있었다. 지리, 지형, 일몰, 일출 시각을 알아보는 건 기본이고 감정적인 투자와 리서치 등 피사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모로코의 톱 모델 와리스 다리와 작업한 사진은 붉은 악마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진행되었다. 악마와 같은 금색 뿔과 붉은 혀의 연출은 뉴욕 타임스스퀘어 기념품 가게에서 구입한 금색 종이와 색소 과자였다. 모델이 내는 분위기로도 충분히 좋은 사진을 촬영할 수도 있었지만 알버트 왓슨은 그녀의 매력을 뒷받침해 줄 요소를 찾아낸 것이다. 철저한 준비는 사진의 미덕이라고 말하는 왓슨의 피사체에 대한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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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왓슨의 철학과 반대되는 사진이 스티브 잡스의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는 길고 지루한 사진 촬영을 끔찍이도 싫어해 한 시간 내로 촬영을 끝내 달라 요청했다. 그러자 알버트 왓슨은 임원과 아침회의 중이라고 생각하며 카메라를 응시할 것을 제안한다. 평소 알고 있는 그의 스마트한 이미지를 참고했으며 카메라 렌즈를 자신감 있게 바라보는 스티브 잡스에게서 그의 천재성을 느낀 것이다.

 

CEO의 면모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스티브 잡스의 사진은 후에 그가 사망한 뒤에도 가장 그를 대표할 수 있는 사진이 되었다.

 

 


2.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을 구분 짓는 것


 

패션사진계의 정점을 찍었지만 알버트 왓슨은 상업사진만을 찍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사진 예술을 추구하며 자연과 인물, 정물 등 장르와 주제를 가리지 않고 다수의 개인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앞서 말했듯이 알버트 왓슨은 기술적 촬영보다 끊임없는 창의력을 바탕으로 피사체를 포착하고자 했다. 이는 디지털 프린팅이 주는 인공적인 느낌을 멀리하고 아날로그 수작업을 선택하여 빛과 양, 온도를 조정해 인물을 표현하며 누구보다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실제로 전시장에 걸려있는 그의 작품들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느껴지는 질감이 평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진의 느낌과는 다르다. 실제 피사체가 지니고 있는 질감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사진에 담아낸 기법이었다. 선명한 기술 덕에 렌즈 너머의 실제를 마주하는 느낌이 아닌 카메라 앞에 서 있는 피사체의 분위기, 감정, 온도 등이 전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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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왓슨의 전시에서 그의 고향 스코틀랜드 스카이섬을 촬영한 비하인드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왓슨은 엽서에 실리는 풍경 이미지가 아닌 중세 고딕 분위기 혹은 빅토리아 시대의 풍경화를 담고 싶어 했다. 영상에서 내내 강조한 것은 선명한 사진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빛과 음영 탓에 초점이 나갈지언정 그게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흐르는 물줄기의 아름다움에 대해 책 한 권을 써낼 수 있다고 단언하는 모습에서 피사체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그의 독특한 촬영기법이 바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원하는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비와 안개를 6주 동안 찾아다니며 바람이 물의 흐름을 바꾸기를 기다리는 데에만 3일을 보냈다. 마치 카메라를 통해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었다.


알버트 왓슨은 상업사진의 전설로 회자되지만 끊임없이 예술을 탐미하고 있었다. 상업 작업과 개인 작업을 구분 짓는 질문에 알버트 왓슨은 구분 짓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다만 사진을 얼마나 중요하게 보이게 만드느냐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신발 사진이 전시장에 걸리면 상업 사진, 미술관에 걸리면 작품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3. 좋은 사진을 고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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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짧은 시간에 많은 이미지를 보게 돼요. 그 안에서 정말 기억에 남는 두세 개가 있다면 그게 좋은 사진이에요."

 

- 알버트 왓슨

 


전시에 입장하기 앞서 알버트 왓슨이 설명한 '좋은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내내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둘러보며 내게도 두세 개의 사진이 기억에 남게 되었다. 약 한 시간 동안 관람을 끝내며 그의 작품들을 복기하려 하자 문득 떠오르는 낯선 사진 몇 장에 대해서 생각한다.


가장 처음 떠오른 것은 마이크 타이슨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타이슨이 운동하고 난 뒤 땀방울이 맺힌 뒷목을 촬영하여 그의 남성성을 강조했다. 타이슨의 검고 단단한 목덜미가 주는 중압감이 엄청났다. 액자 크기 역시 한쪽 벽면을 모두 차지할 만큼의 거대한 사이즈였다. 알버트 왓슨이 강조한 것은 그의 남성성이었으나 끈질긴 노력 끝에 바라던 꿈을 손에 거머쥔 한 남성이 보였다.

 

역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 소리와 몸을 타고 뜨겁게 올라오는 열기 따위가 느껴졌다. 마이크 타이슨은 이 사진을 촬영하고 난 몇 달 뒤 20세의 나이로 최연소 WBC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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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잔상처럼 남은 사진은 가수 마릴린 맨슨의 사진이다. 그의 독특한 개성과 이미지는 곧 밴드의 정체성으로 이어진다. 메탈 음악을 주로 작업하며 엽기적인 그의 퍼포먼스와 음악은 강한 호불호가 따른다.

 

사진 역시 그의 괴랄한 감성을 잘 담아냈다. 나 역시 평소 락밴드를 즐겨 듣고 좋아하기에 반항적이고 괴랄한 것에 자연스럽게 끌렸다. 영화 ‘벨벳 골드마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마이크 타이슨의 사진과 마찬가지로 정적인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역동적인 힘이 느껴진다. 알버트 왓슨의 사진에 담긴 마릴린 맨슨은 도무지 길들일 수 없는 매력을 사정없이 뽐내고 있었다.


혹자는 사진전의 매력을 알지 못해 외면하지만 알버트 왓슨의 전시만큼은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바이다. 작가가 카메라 렌즈로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피사체가 함께 참여하고 살아 움직이는 작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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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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