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평범한 미래에서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기 [도서]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를 읽고
글 입력 2023.03.0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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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이르러

가장 좋은 미래, 그러니까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면

 

 

점심을 먹을 때 티비뉴스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점심을 다같이 먹는 식당 티비 한쪽 벽면에 티비가 있는데 맨날 티비를 등지고만 앉다가 어느날 뉴스를 보면서 밥을 먹었더니 지루하지도 않고 좋았다. 그 뒤로 매번 티비가 보이는 방향을 골라앉아 밥을 먹는다.


티비를 보면 세상의 온갖 혼란스러운 사건사고들이 나를 통과해간다. 이번주 정치권에서 벌어진 사건사고-다양한 정책과 책임소재와 각종 인사에 관한 대담 같은 것들, 북한이 올해만 해도 벌써 몇 번째 쏘고있다는 미사일에 대한 정보와 바다 건너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는 지진이 나서 몇 명이 죽고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소식. 혼란스러운 세상을 바라보다보면 나는 앞으로 어떤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미래를 자주 상상한다. 비록 뉴스와는 다른 개인적인 미래이지만 1-2년 뒤의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5년 뒤의 내가 결혼은 했을지 같은 것을 고민한다. 10년 뒤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며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함께일지 생각해본다. 그런데 사실 잘 그려지지 않는다. 자꾸만 생각해봐도 갈피는 잡히지 않고 막막한 감정이 앞선다. 미래는 어떤 식으로 올까?


진부한 답이겠지만 오늘 하루가 쌓여서 온다. 오늘은 과거의 나에게는 미래의 어느 순간이었고 이렇게 하루하루를 또 보내다보면 지금 생각하는 미래도 오늘의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미래의 구성요소는 오늘 하루하루여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가 미래의 나를 이루고 결정할 것이다. 미래는 곧 오늘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더 막막하다. 내가 오늘의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미래가 오늘의 연장선이듯 오늘 하루는 과거의 연장선이여서 과거의 어떤 순간들이 자꾸만 발목을 잡기도 한다. 어제로부터 이어져 온 나는 오늘 여기에 있는데 내가 원하는 미래는 저 멀리에만 있는 것처럼 보이고 내 미래가 저 과거로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 같은 기분조차 든다.


과거가 오늘로, 오늘이 또 미래로 이어져나간다는 선형적인 사고관이 우리 삶에 주는 교훈은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미래를 바꾸고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고 충실하게 쌓아온 하루하루가 더 나은 내일로 이어져나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온 과거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그런 우리에게 김연수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의 표제작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

 


과거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다. p.22

 


얼핏 듣기에는 조금 이상해보인다. 현재가 미래에 영향을 끼친다면 몰라도,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가 현재를 결정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 조금 더 고민해보고 생각해보기 전에 같은 소설 내에 등장하는 단락 하나를 먼저 보고가자. 그럼 나머지 문장을 다시 상상하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다 볼 수 있지만, 그것을 보는 눈만은 볼 수가 없죠. 보이지 않는 그 눈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을지를 결정하지요. 그러니까 다 본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눈의 한계를 보고 있는 셈이에요. 책을 편집하다보면 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의 모든 문장은 저자의 생각이 뻗어나갈 수 있는 한계의 한쪽에서만 나오죠. 그래서 모든 책은 저자 자신이에요. 그러니 책 속의 문장이 바뀌려면 저자가 달라져야만 해요 ... 아주 사소할지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겠다고 결심하기만 하면 눈앞의 풍경이 바뀔 거에요. (강조는 인용자) p.27

 

 

우리가 생각하기에 따라 우리의 세상은 바뀐다. 그리고 우리가 바꿔야 할 인식, 눈앞의 풍경을 바꾸기 위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겠다고 결심해야 하는 결정적인 한 부분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현재를 결정한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소설 속 표현을 빌리면 ‘미래를 기억한다는 것’ 다시 한 번 책 속의 문장을 보자.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미래를 기억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p.29

 

 

인식의 패턴이 완전히 바뀌어, 이미 일어난 일들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원인이 되어 현재의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p. 28

 


인과관계에 따라 세상이 흘러간다는 일반적인 생각에서 미래로부터 오늘이 결정된다는 생각으로 옮겨오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나 이야기를 해줄수 있다고 하면 어떤 말을 해주면 좋을까 하고.


그땐 진지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바보 같은 순간들이 많다. 네가 그렇게 애쓰고 골치아파하던 그 일은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니 애쓰지 말라는 말도 해주고 싶고, 시간이 지나 너는 이런 모습으로 잘 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여전히 많은 고민과 불안과 막막함을 가지고 살아가기도 하지만 꼬박꼬박 밥을 챙겨먹고 아침은 가끔 거른다고,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고 영양제를 챙겨먹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고. 지금 하는 그 고민들, 그건 네 인생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자꾸 생각하고 우울해할 필요 없다고.


미래의 나도 오늘의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럼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나에게는 과거의 내가 아등바등 애썼던 일들이 큰 일이 아닌 것처럼 미래의 나에게도 오늘 나의 고민들이 그런 모습일 것이다. 그러니 나를 괴롭히는 과거의 일들로부터 한계를 짓고 고민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지나온 미래에 평온하고 안온하게,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살아가는 나 자신으로부터 생각하기를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를 설득한다. 소설 속 이야기에서 동반자살을 결심한 어떤 인물은 예전에 자신의 어머니가 썼다던(하지만 검열로 판금을 당해서 한 번도 읽거나 내용을 들어보지 못한) 소설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누군가를 찾아가 그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머니가 쓴 소설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기차 안에서 그가 읽던 소설에는 동반자살을 했다가 미래에서 과거로 진행되는 인생을 한번 더 살아가게 된 한 연인이 등장했다. 그들은 시간을 계속 거슬러올라가면 자신들이 처음 만나는 순간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둘은 그 순간이 몇 년 몇월 며칠이며, 그때 자신들의 마음이 얼마나 설레고 기뻤는지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두 번째 삶에서는 거꾸로 그 만남을 향해 살아가면서 두 사람은 그 만남으로 인해 일어난 일들을 먼저 경험한다. 둘은 미래, 그러니까 원래대로라면 과거를 적극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둘은 가장 좋은 게 가장 나중에 온다고 상상하는 일이 현재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에게는 희망이 생긴다. 한번 더 살 수 있기를. 다시 둘이 만났을 때부터 시작해서 원래대로 시간이 흐르기를. 그리하여 시간의 끝에,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르렀을 때 이번에는 가장 좋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를. 

 

 그렇게 시간은 거꾸로 흘러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마지막 순간에 이르고 그들은 그 순간을 한 번 더 경험한다. 그리고 놀란다. 이토록 놀랍고 설레며 기쁜 마음으로 우리는 만났던 것인가?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둘은 오랜 잠에서 번쩍 눈을 뜬 것처럼 서로를 바라본다. 처음 서로를 마주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시간은 다시 원래대로 흐르고, 이제 세 번째 삶이 시작된다. (강조는 인용자) p.23

 


미래를 기억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책에서 ‘상상’이라는 말과 함께 ‘기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재미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얼핏 듣기에 조금 이상하지만, 그러한 미래가 반드시 다가올 것이라 100퍼센트 확신에 가까운 것으로 믿고 그 미래를 기반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조금 다른 삶을 살수도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아이디어다.

 

미래에는 고통과 슬픔이 없는 세상으로 발전한다든가, 억만장자가 된다든가, 초월적인 어떤 일이 일어나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말도 아니다. 그냥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여전히 그곳에 존재한다는 것. 일상적인 모습의 가장 좋은 미래가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으로부터의 확신이 오늘의 우리를 바꿔놓을 수 있다.


우리를 계속 살게 하는 것은 그렇게 작은 순간인지도 모른다. 여기 다르지만 비슷한 소설이 하나 더 있다. 같은 작가의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이다. 짧게 인용한다.

 

 

그러다가 나는 후쿠다 준이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어서, ‘날개를 주세요’라고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유복하게 살기도 했고, 고향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자살하려 했다가도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어느 시점부터인가 줄곧 나를, 한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나를 기억하게 된 일에 대해서 생각했어. 나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동안에도 나를 기억한 사람에 대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p.181

 


‘후쿠다 준’은 인생이 파탄나고 죽으려고 했던 순간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고향의 카페에서 어린시절 좋아하던 음악을 우연히 듣는 것만으로 다시 살 마음을 품게 된다. 음악과 함께 적혀있는 한국어의 뜻이 궁금해 그걸 알게 될 때까지 살아보자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음악을 적어 놓고 간 방명록의 외국인(한국인) 인디가수 이니셜을 보고 K-Culture 진흥원에 들어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수소문하기도 한다. 얼굴도 모르는 한 사람을 기억하는 시간이 우리를 살게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일.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었던 어느날의 순간, 그 누군가. 심지어는 대단한 행동도 아니고 카페에 신청곡을 적어놓는 아주 일상적이고 의미없는 작은 행동조차 하나의 삶을 바꿔놓을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본다. 항상 이토록 평범하고 작은 것들이 우리를 살게 만든다.


그래서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 한 사람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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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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