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2023년 첫 번째 발산; 가죽공예

글 입력 2023.03.0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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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목표는 ‘다 해보자’다. 집중이 아닌 발산.

 

 

발산

감정 따위를 밖으로 드러내어 해소함. 또는 분위기 따위를 한껏 드러냄.

냄새, 빛, 열 따위가 사방으로 퍼져 나감.

 

 

나의 열, 에너지를 퍼뜨려 본연의 나를 찾기 위한 발산 첫 번째, 가죽 공예 입문이다.

 

 

 

도전


 

가죽 공예 입문 3개월을 꽉 채웠다. 생각보다 힘들고 생각보다 뿌듯하다. 몇 년 전 5주짜리 소품 제작 커리큘럼으로 입문했다고 하기엔 그때 만들었던 지갑이나 명찰 케이스는 볼품없고 쓸 데가 없어 진작에 버려서 이번이 첫 시작과도 마찬가지다. 호기롭게 가방, 신발 제작 커리큘럼을 도전했고 잘한 선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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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년 12월, 취업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수업이라 수강할지 말지 정말 많이 망설였다. 신입 사원으로 5일 출근하고 주말 하루를 해 뜨고 해 질 때까지 가죽 공예원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게 조금 버거울 것 같았다. 그래도 새롭게 시작하는 어른으로서의 삶을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우선 신청 버튼을 눌러버렸다.

 

질러보자. 다 해보자.

 

 

 

배움


 

그렇게 가죽 가방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가죽 재단을 위한 재단지 제작하는 방법부터, 피가다, 닷지를 만드는 수치 계산 방법, 가죽칼 사용법, 이름도 어려운 보강재나 덧붙이는 천과 재료들까지 배울 게 투성이다. 손으로 하는 걸 뭐든 좋아하는 나지만, 이론적인 부분은 강사 선생님 없이는 못 배웠을 것이다. 좋은 가죽공예원이 집과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참 감사하고 기분이 좋다.

 

어려운 용어들 사이에서 섬세하게 0.5mm 차이를 하나하나 재가면서 오차 없는 재단을 위해 노력한다. 재단지를 수직, 수평이 되게끔 자를 이용해서 깔끔하게 자른다. 가방의 틀을 만들기 위해 여백을 더해 피가다 사이즈와 닷지 사이즈를 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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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크기로 위아래 옆을 재도 크기가 같을 때 희열을 느낀다. 이게 뭐라고 세상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완벽한 재단지를 만들고 안감이나 보강재를 접착한 가죽에 덧대 크기에 맞게 자른다. 무사 칼처럼 날카롭게 연마해 한번에 쓰윽 예쁘게 잘려 나가는 가죽을 보면 '운동을 제대로 못 한 지 오래됐지만 내 두꺼운 팔은 여전하구나!' 내심 뿌듯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구멍 뚫기를 해야 한다. 첫 번째 가방을 만들어보니까 바느질보다 바느질을 위한 구멍을 얼마나 깔끔하게 같은 간격으로 내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정한 간격으로 일자 자국을 낸 뒤 사선 그리프를 챙겨 일자선에 따라 쾅, 망치로 찍어 내린다. 아직도 일자로 뚫는 건 어렵다.

 

바느질도 사실 중요하다. 마치 재봉틀을 이용한 것처럼 보이는 바느질이 전체적인 가방의 완성도를 높인다. 사선을 만들기 위해 한 땀 넣고 나면 방향대로 실을 잡아 당겨주고 다시 한 땀 내려간다. 예전에 1달 동안 손바느질 수업을 들었을 때도 바느질이 너무 귀찮아서 재단까지 내가 하고 그다음 역할들은 엄마에게 넘겨주곤 했었다.

 

다 재봉틀로 5초면 될 일을 왜 굳이 이렇게 5분씩이나 걸리게 하는 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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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죽공예 배우는 동안 솔직히 더 큰 크기인 가방을 만들려니 도중에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후회 섞인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래도 한땀 한땀 놓으면서 평일에 일어났던 안 좋은, 좋은 일 모두 떠오르지도 않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끝나지 않는 바느질을 하고 있으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그리고 만들고 나니 너무 정갈하니 아름다워 만족했다. 완벽한 사선의 박음질이 기분을 좋게 한다.

 

이외 여러 과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한다. 왜 이탈리아 장인들이 그렇게 비싼 값을 부르는지 실감했다. 이제 장인이 만든 가방이라면 기꺼이 그 값을 지불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동의 대가, 그것도 손끝 아파져 가면서 뻐근한 눈 비벼가며 만든 소중한 산출물이니까 말이다.

 

 

 

취미


 

3월 중순까지 열심히 이번 커리큘럼을 마무리하면서 이번 취미도 계속 ing 할 것이다. 재료와 준비물이 다른 취미보다 가격,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라 장비들을 살지 말지 고민이긴 하다.

 

기본적인 것만 사면 또 결국 욕심에 이것저것 다 살 게 분명하다. 레진 공예 취미처럼 1년 동안 잠시 하고 집안 구석으로 버려진다면 돈 낭비니까 최대한 공예원 다닐 때 원하는 소품들 만들어보고 집에서도 계속 생각나면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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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온종일, 그리고 주중 짬 내서 강사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 하면서 가죽 공예와 아주 친해졌다. 혼자 시계 스트랩도 뚝딱 만들었다. 하찮지만 마침 필요했던 가죽끈이었기에 엉성하게나마 만들어 차고 다니니까 볼 때마다 뿌듯하고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공예를 좋아하는 엄마에게도 배우라고 적극 추천하고 있으니 엄마가 더 많이 오랫동안 배워서 장비들도 사게 되면 아빠한테 공방 하나 차려달라고 말하고 싶은 내 큰 그림이 과연 이루어질지 웃으면서 기대해본다.

 

 

 

단순함의 미학


 

가죽공예를 통한 가장 큰 깨달음은 ‘단순함의 미학’이라고 멋지게 말하고 싶다. 참 단순한 일에도 기분이 많이 좋아진다. 그냥 종이접기를 잘해 반듯한 모양이 나와서 기분이 좋다. 구멍을 잘 뚫어 기분이 좋다. 바느질을 예쁘게 해 기분이 좋다. 접착이 잘 돼 기분이 좋다. 열혈 사포질이 잘 되어 매끈한 엣지를 만지면 기분이 좋다. 참 단순하고 조그만 일들이 그동안의 걱정들을 잊게 하고 기분을 좋게 만든다.

 

초등학생이 종이 자르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 속상해서 우는 모습을 보면 귀엽다. 별거 아니고 조금만 크면 누구보다 잘할 일일 텐데 그에 속상해하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그처럼 단순한 것에 심각해지는 나를 포함한 수강생분들을 보면 이것도 참 지나고 보면 웃고 넘어갈 거라는 생각에 더욱 단순함의 미학을 느낀다.

 

‘내가 이런 점들을 재밌어 해서 손으로 무언가 만지고 조작거리는 것을 좋아했지.’ 

 

많이 느끼면서 올해 첫 번째 발산 목표였던 가죽 공예 입문이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다. 본업도 허겁지겁하고 바쁘지만, 여러 가지 도전해보면서 올해 삶을 만족하면서 나아가고 있다. 

 

2번째 발산은 수영으로 더디지만, 이 또한 진행 중이다. 귀금속 공예도 알아보고 있는데 다음엔 또 어디로 내 에너지를 발산할지 많이 기대된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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