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전히 '선택받은' 너희들에게 [음악]

투니버스 전성기 시절 음악들을 추억하며
글 입력 2023.02.2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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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슬램덩크’가 유행이란다. 새로운 극장판 영화 개봉에 힘입어 OTT 서비스에서 제공되는 과거 애니메이션 시리즈까지 함께 재조명되는 중이다.

 

얼마 전 백화점에 방문했다 우연히 팝업스토어에 길게 늘어선 줄을 목격했다. 붐비는 지하철 앞에 앉은 어린 남매가 삼촌에게 슬램덩크 이야기를 하는 것을 엿듣기도 했다. 주변 지인들 중에서도 영화관에서 극장판을 보고 왔다거나, OTT 플랫폼에서 시리즈를 보고 있다 하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을 보면 이 열풍이 한껏 실감이 나는 듯한다.

 

이번 유행의 특별한 점 중 하나는 과거 소비하던 세대들이 추억을 회상할 뿐 아니라, 그녀의 자녀 세대 나아가 명성만을 알던 10대 20대들까지, 전 세대는 아니지만 꽤나 넓은 세대를 아우르고 있다는 점이다. 세대 차이나 세대 간의 갈등이 한국 사회의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되는 형국에서, 콘텐츠의 힘이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다.

 

동시에 이런 ‘레트로’의 유행의 배경 역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런 복고가 하루아침에 떠올랐다기보다는,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보는 편이 더 옳기 때문이다. 포켓몬 빵, Y2k, 곰표 맥주 등등 콘텐츠, 마케팅, 패션 등의 업계 전역으로 레트로의 열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씁쓸한 점은 이런 레트로의 열풍이 보통 고물가와 경기 불황 등 팍팍한 삶과 함께 전개된다는 점이다. 금리 상승과 물가 폭등, 난방비 폭탄까지 생활 곳곳에서 서민들의 한숨이 터져 나온다는데. 아직 취준생이기에 모든 면에서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자취방 공과금을 내며, 용돈이 바닥나는 모습을 보며 조금은 현실을 실감 중에 있다.

 

얼마 전 문득 내 나이를 떠올리며 새삼 놀란 적이 있다. 아직 교복을 벗은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십 년 전이라고 해봤자 고작 초등학생쯤이나 될 줄 알았는데 중학교 3학년이었단다.

 

내년이면 10년 전이 고등학생이 된다는 게 상당히 충격이었다. 더 이상 마냥 어린 나이는 아니라는 자각이 기습적으로 몰려왔다. 이제는 내게도 ‘옛날’, ‘어린 시절, ‘청소년기’ 등 회상할 만한 과거가 꽤 많아진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옛날 이야기를 하는 어른들이 그리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들이 말하는 과거는 지금보다 훨씬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인데,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다는 점도 조금 의아했다.

 

이제는 그 어른들의 심정을 이해할 것도 같다. 어렸을 때라고 힘든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닐 텐데. 과거는 쉽게 미화되기 마련인지 내게 남은 그 시절들은 죄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어쩌면 괴롭고 짜증스러웠던 시간들까지도 온통.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지난 한 해가 살면서 가장 괴로웠던 것 같다. 불안정하기로 치면 지금도 다를 바 없는 신세이지만, 처음으로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채 보냈던 지난 한 해가 살면서 가장 불안했다. 지난 가을에는 식사시간마다 동생과 ‘디지몬 어드벤처’를 봤다. 연말부터 연초까지는 7년만에 컴백한 카라의 일대기를 따라 플레이리스트 가득 그들의 노래를 채워 넣었다.

 

나의 과거의 한 페이지를 채웠던 음악들과 콘텐츠들을 향유하며 그리움에 잠기곤 했다. 즐겁기도 하면서 괜히 아련해졌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분명 현실의 고민과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현실이 불만족스러운 사람들이 과거에 미련이 많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에게만큼은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각박한 현실도 과거에 대한 집착도 부끄러울 필요는 또 뭐가 있나 싶다.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현재의 내가 있고, 때때로 위로와 용기를 주는 과거의 추억인데.

 

조금 은밀한 취향이자 취미가 있다. 지저분한 플레이리스트에 숨어 있는 애니메이션 주제가들이다. 사실 부끄러울 필요도 없는데 남들이 유치하다고 생각할까 괜한 눈치를 본다. 이러니 저리니 해도 때로는 그 무엇보다 내게 힘이 되는 음악들이다. 동요와 가요 사이, 세련된지는 모르겠지만 희망과 응원이 담긴 곡의 가사들을 소개해 보려 한다.

 

 

1. New Future

– 이용신 (‘달빛천사’ OST)

 

Let’s sing a song

숨쉬는 동안에 느낄 수 있게

내게 내일이란 희망을 준 널 위해서

Day by day

힘겨운 날들도 흘린 눈물도

다 시간 속에 묻어둘 수 있을 거야

Let’s sing a song

멈추지 않을래 나의 꿈들에

너와 함께하는 시간들을 담아볼게

More and more

조금만 더 너에게 용길 내볼래

이제 수줍었던 마음 열고

Many thanks for you

 

 

2. 우리의 꿈

– 코요태 (‘원피스’ OST)

 

쉼 없이 흘러가는 시간

이대로 보낼 수는 없잖아

함께 도전하는 거야

너와 나 두 손을 잡고

우리들 모두의 꿈을 모아서

거센 바람 높은 파도가

우리 앞길 막아서도

결코 두렵지 않아

끝없이 펼쳐진

수많은 시련들

밝은 내일 위한 거야

 

 

3. Butter-Fly

– 전영호 (‘디지몬 어드벤처’ OST)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나를 허락해준 세상이란

손쉽게 다가오는

편하고 감미로운 공간이 아냐

그래도 날아오를 거야

작은 날개짓에 꿈을 담아

조금만 기다려봐 oh my love

 

 

4. 그래그래

– 정여진 (‘미소의 세상’ OST)

 

힘들었던 모든 상념들도

나를 조이던 주변에 널린 고민들도

모두 떨쳐버렸으면, 모두 잊어버렸으면

잠시 접어 놨던 꿈도 기지갤 켜면서

다시 내게로 오길

그래 그래 세상은 나에게 열려 있어

좌절보단 도전함을 반겨주는 세상이

그래 그래 세상을 남의 품에 안고서

내일의 난 모든 것이 달라져 있을 거야

 

 

5. Grow up

– 임지숙 (‘학교괴담’ OST)

 

원치 않았던 일을 만나도

불평하거나 피하지 않아요

세상의 벽은 높아 보여도

가볍게 뛰어넘어 갈게요!

언젠가 내가 오늘을 뒤돌아 본다면

조금은 자란 내 모습을 알 수 있을 테죠

말해줄래요? 아직 많은 세상 일들이

지금 내겐 어렵겠지만

내일은 다르다고

 

 

6. Hello Mr. My Yesterday

– 애쉬그레이 (‘명탐정 코난’ OST)

 

Hello Mr. My Yesterday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의 나에게로

부디 내 얘길 전해줘

꿈을 놓아버린

그대여 시간이 흘러서

나였던 그대는

진정 웃을 수 있을까

이 세상에 태어난 그 순간부터

줄곧 이 길을 달렸어

너와 함께한 1분 1초 모든 흔적이

내 삶의 증거야

 

 

7. 모험의 시작

– Faith 외 (‘포켓몬스터’ OST)

 

언제 언제까지나 최고가 되는

언제 언제까지나 그날을 위해

자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을 

내 꿈을 위한 여행 피카츄

걱정 따윈 없어 없어

내 친구랑 함께니까

처음 시작은 어색할지도 몰라

몰라 내 친구 피카츄

날 지켜 줄 거라고 믿고 있어

 

 

8. 활주

– 버즈 (‘나루토’ OST)

 

내게 허락된 건 힘겹기만 한 

거친 미래라 해도

나를 깨운 꿈에 모든 걸 걸고

달려갈 거야

나뭇잎 끝에 흩어지는 바람에

나의 꿈이 흔들려

하지만 아직 내게 깃든 운명을

탓할 필요는 없지

모두가 날 알아줄 그날이

언젠가 찾아올 테니

누군가 앞서 달린 이 길을 가네 yeah

 

 

9. 내일을 찾아

– 방대식, 정재윤(Tula) (‘파워디지몬’ OST)

 

내가 숨쉬는 이곳 여기

현실이 아니더라도

세상 모든 일엔 무엇이든 의미가 있어

지금 내 곁에 있는 모두가

진실이 아니더라도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어

언제까지나 빛을 잃지 않도록

내 곁에서 영원히 날 지켜줘

날 지켜줘

지치지 않도록

 

 

10. 질풍가도

– 유정석 (‘쾌걸 근육맨 2세’ OST)

 

그래 이런 내 모습

게을러 보이고 우습게도 보일 거야

하지만 내게 주어진 무거운 운명에

나는 다시 태어나 싸울 거야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거친 파도에 굴하지 않게

드넓은 대지에 다시 새길 희망을 

안고 달려갈 거야 너에게

 

 

90년대 후반에 태어난 나는 흔히 말하는 ‘투니버스 리즈 시절’과 함께 성장했다. 기억 나는 첫 순간부터 애니메이션 만화가 존재할 정도로. 하지만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과 멀어졌다. TV보다 스마트폰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만화영화 대신 웹툰과 가까워지기도 했다.

 

스무 살 때인가 한가해진 방학을 틈타 정말 오랜만에 ‘달빛천사’를 다시 보기로 했다. 내 유년 시절 최고의 친구들이었던 만화들 중 단연코 최애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보지 않아 나는 결국 포기를 선언했다. 

 

머리가 너무 커버렸던 탓일까. 어린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주인공의 행동이 참을 수 없게 거슬렸다. 더 이상 스스로가 순수하지 않다는 자각과 함께 많이 아는 것이 과연 항상 좋기만 한 것인가 하는 씁쓸함이 맴돌았다.

 

비록 어린 시절의 환상은 부서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 OST들은 좋아한다. 언젠가 어느 성우분이 나오셔서 만화 주제가의 숨겨진 비밀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본 적이 있다. 어린이들을 타깃으로 한다고 하기에는 좌절, 방황, 도전, 운명, 상념 등 어렵고 철학적인 단어가 많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도 곧잘 따라 부르고 좋아했던 노래들이었지만, 20대가 되어서야 가사를 이해하고 진심 어린 감동을 느낀다. 한때 어린이였던 우리 청춘들이 차가운 현실에 부딪히며 좌절을 느낄 때, 순수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위로와 용기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한다.

 

순수했던 어린이는 자라서 흔들리는 청춘이 되었다. 그리고 도전과 좌절 사이에서 방황하다 비로소 어른이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선택받은 아이들이었고, 청춘인 우리들에게 여전히 세상을 열려 있다.

 

투니버스 친구들. 그대들이 모두 용기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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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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