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림과 나 단둘이서 -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걸다 [도서]

글 입력 2023.02.24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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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지하철에서 책을 꺼내 들었다. 책을 꺼내고자 마음먹는 과정이 제일 어렵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가는 지하철, 환승해 시발역에서 열차가 출발할 때까지 별생각 없이 유튜브를 계속 새로 고친다.

 

문득 가방에 있는 책이 기억났다. 하루 종일 서류를 보니까 이젠 더 이상 활자를 보기도 싫었지만, 볼 것 없는 유튜브에 질려버려 책을 꺼냈다. 그 자체만으로도 나 자신이 굉장히 수고했고 자랑스러웠다.


 

 

소소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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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하며 친한 아주머니와 이야기하는 밝은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자마자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집안일을 하다가 친한 아줌마들과 함께 커피 마시며 수다 떨기 위해 나가는 모습이 딱 맞다. 그림 그대로 소소한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신다.

 

소극적인 나와 다르게 자녀들 친구 어머니든, 운동하다가 만난 비슷한 또래 어머니든 우리 엄마는 동네 친구를 잘 사귀시기에 집안일 하랴 운동하랴 친구들 만나랴 하루가 꽉 차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소소한 기쁨을 느낀 덕분에 에너지를 충전하고 자식들이 집에 올 때면 항상 밝은 모습으로 반겨줬던 것 같다.

 

그렇게 사이좋게 어울려 만나는 존재가 엄마의 일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소중하다는 걸 본가에 잘 못 가게 되면서부터 깨달았다. 자식 4명으로 복작대던 집에 이젠 아무도 없으니 혹시나 갱년기 우울증이 오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는데 연락해보면 저 그림처럼 하하 호호대는 웃음소리 가득한 공간에서 받으시니 걱정을 덜었다.

 

그렇게 잘 일상의 행복을 잘 누리시고 계셔 다행이다.

 

 

 

강렬한 입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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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있는 수많은 그림 중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그림이다. 아리따운 선홍빛 드레스를 입고 꽃단장을 한 여성이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입 맞춘다.

 

 

너는 네 모습 그대로 참 아름다워. 최고야

 


나도 나에게 저 여인처럼 무한한 애정과 아름다운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까?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찾은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지 궁금하며 나는 그러지 못한 축에 속하기에 언제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줄 수 있을지 사실 걱정 되기도 한다. 외부의 타격에 끄떡없이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간절한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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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그림은 보통 차갑게 다가오지만, 이 그림만은 차가움보다는 잔잔한 미지근함이 느껴졌다.

 

달빛이 슬그머니 비추는 방에서 고개를 숙이고 간절히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이다. 기도하는지, 책을 읽는지 무엇을 하는지 잘 보이지 않지만, 나는 이 주인공이 달빛 아래 절박한 기도를 하고 있을 거란 이유 모를 확신이 들었다.

 

 

이 그림에 눈길이 머물렀다면

당신은 지금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놓여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마음의 평정이 필요할 테니까요.

 


무엇을 위해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그림에서 나도 모르게 자신을 떠올린 것 같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혼자 책상 앞 의자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여인이 풍기는 적적함과 불안감이 확 와닿았다.

 

평안을 일상에 가져오고자 노력하지만 어디선가 끊임없이 솟구치는 불안정함, 불안, 걱정들이 아름다운 달빛을 쐴 여유조차 빼앗아 간 듯싶다.

 

그녀는 자신의 기운을 되찾고 활기찬 아침을 맞이했을까? 부디 그랬기를.

 

 

 

진실된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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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새벽인 것 같은 광활한 곳에서 아무것도 입지 않은 한 여인이 얼굴을 감싸고 한껏 몸을 움츠려 엎드려 있다. 표정도 보이지 않고, 멈춰있는 그림임에도 슬픔에 겨워 흐느껴 울고 있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허위 허식 없는 나체로 자신의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슬플 땐 이 그림 앞에서 한껏 울어 버리세요.

울음은 영혼을 회복하는 첫걸음이자 이별을 애도하는 방식입니다.

 

 

그녀와 함께 나도 울어버리고 싶다. 계속 찾아 헤매던 내 감정을 받아줄 누군가를 여기서 찾은 것 같다.

 

예전에, 공연을 보면서 감정을 해소할 수 있기에 공연예술을 사랑하게 됐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극장 모두가 주인공들에게 시선이 쏠려있고, 주인공들의 감정 표현에 따라 나도 그냥 우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보고 나오면 씻겨나갔으니까.

 

이제 공연을 사랑하는 마음도 많이 줄었고 새롭게 바뀐 일상에 적응하는 것조차 버거워 문화예술과 함께하는 삶이라는 목표를 잊어버린 2023년 2달을 보냈다. 책을 스르륵 넘기다 이 그림을 마주한 순간, 눈물이 차올랐다.

 

힘든 때일수록 뭐든 좋으니 예술을 더 가까이하라는 말이 진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별을 애도하는 선한 방식이다.

 

 

 

안정감의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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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하루를 열심히 살고 집에 들어오면 날 포근하게 맞이해줄 푸르름이 가득 찬 그림이 갖고 싶어졌다. 언젠가 독립하게 되어 혼자 살게 된다면, TV를 두는 공간에 대신 그림을 걸 것이다. 그것도 초록색의 자연이 담긴 쪽으로 정했다.

 

 

초록은 편안함과 균형의 상징이자 마음에 안정을 주는 색입니다.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집이라는 공간은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긴장을 풀고 눈 감을 수 있는 공간이다. 내 집엔 큰 크기의 그림이 대문짝만하게 걸려있을 것이다. 파블로프의 개가 종이 울리면 침을 흘리는 것처럼, 나도 그림을 보는 순간, 긴장의 끈을 확 풀고 안정을 찾고 싶다.

 

시끄러운 TV 소리 말고 아무것도 없는 거실에 그림과 의자에 앉은 나 단둘이 있고 싶다.

 

*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최근 가장 집중력이 높은 시간이었다. 40분 남짓, 하차 역에 도착할 때까지 책을 넘기다가 끌리는 그림을 발견하면 멈추고 해당 부분 글을 읽었다.

 

길지도 않고 나와 그림을 보는 생각이 조금씩 달라서 다른 그림에 대한 해석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55점 중 내 눈길을 사로잡은 몇 점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또 와닿는 감정이 다를까?

 

그림과 책과 나 셋이 함께한 기억을 바탕삼아 언젠가 그림과 나 단둘이서 진하게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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