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의 수많은 갈림길 속 두고 온 모든 ‘나’에게 [영화]

다음 갈림길에서는 조금 더 '다정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글 입력 2023.02.2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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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순간은 선택의 연속이다. 하루의 기분을 결정하는 일상의 아주 작은 선택에서부터, 인생 전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큰 결심까지. 우리는 매번 선택을 통해 우리 앞의 ‘지금’을 만들어 간다. 더 나은 ‘지금’을 위해 혹은 그나마의 ‘지금’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늘 나름의 최선을 선택하지만, 매번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심지어 어떤 선택은 평생의 뼈 아픈 후회로 남아 삶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최근 20여년 만에 돌아와 300만 관객을 돌파한 만화 <슬램덩크>의 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도 이렇게 뼈저린 후회를 딛고 다시 북산의 농구부로 돌아온 ‘정대만’이라는 인물이 있다. 영화 안에서는 자세히 묘사되지 않지만, 만화 속에는 정대만이 부상으로 농구를 포기하고 방황하며 지냈던 시간을 후회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 중 많은 팬들의 머릿속에 남은 장면은 ‘능남고’와의 경기 중 체력 부족으로 쓰러진 정대만이, 후배가 준 음료수 캔 뚜껑 조차 스스로 따지 못할 정도로 고갈된 체력에 그동안 헛되이 보낸 시간을 눈물로 후회하는 장면이다. 우리는 잘못된 선택으로 뼈저린 후회를 계속하는 이 인물에게서 우리 스스로를 보고, 그럼에도 다시 꿈을 꾸기로 한 자신의 결심을 간절한 노력으로 이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감동을 느낀다.

 

이렇게 정대만이라는 캐릭터가 많은 공감과 사랑을 받은 것은 그가 지닌 후회가 그 정도만 다를뿐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어쩌면 선택의 괴로움은 어떤 것을 선택했다는 사실보다, 선택하지 않고 남겨둔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에서 오는 것일지 모른다. 그것이 그저 한 조각의 가능성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해도, 우리는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선택지에 대해 수많은 가정을 하고 그 결과를 상상하며 후회하고 괴로워한다.

 

이러한 수많은 다른 선택의 결과, 즉 어쩌면 ‘지금의 나’일 수도 있었던 수많은 ‘나’를 직접 보게 된다면 어떨까? 수없이 해왔던 상상이 뚜렷해질 때 우리는 더 깊은 후회를 할까, 오히려 현재에 만족하며 안심하게 될까? 영화 <애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이렇게 우리가 선택의 갈림길 속에 두고 온 수많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멀티버스 세계관으로 풀어낸다.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 속 두고 온 모든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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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이민자 가정을 꾸리며 남편과 함께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의 하루는 너무나 바쁘다. 영화의 첫 장면, 부지런히 에블린의 일상을 따라가는 카메라에는 가족들에게 수많은 말을 쏟아내며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정작 가족들이 하는 말은 듣지 못하는 에블린의 모습이 담긴다. 정말로 몸이 하나인 게 모자라 보이는 에블린이 이렇게 바쁜 일상을 살아내는 사이, 에블린의 남편 ‘웨이먼드’는 이혼 서류를 준비했고, 딸 ‘조이’는 가족들과 점점 멀어진다.

 

그러던 중 세무조사를 위해 당국을 찾은 에블린은 ‘알파버스’에서 왔다는 다른 세계의 웨이먼드를 만나고, 수많은 멀티버스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에블린들을 불러와 ‘조부 투바키’라는 존재로부터 세계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듣는다. 그리고 에블린은 세계를 파괴하려는 조부 투바키와 싸우는 과정에서 어쩌면 지금의 자신이 될 수 있었던 수많은 에블린들과 만나게 된다. 


 

"인생의 사소한 결정들이 엄청난 차이로 이어져.

결정의 갈림길마다 우주가 분열되고. (...)

이게 당신 우주야. 무한한 거품 속을 떠다니는 기포 하나.

주변의 기포들마다 조금씩 다른데 거리가 먼 우주일수록 차이점이 커져.

난 여기서 왔어. 알파버스."

 

 

에블린이 만난 멀티버스 속 각기 다른 모습의 에블린들은 결국 에블린이 수많은 삶의 갈림길에서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선택지들의 결과이기도 했다. 에블린이 중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웨이먼드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무술과 요리, 노래와 연기 등을 배워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다른 세계로 점프할 때마다 에블린은 과거의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며 빛나는 삶을 살고 있는 그 모습들은, 지금의 에블린과는 너무 달랐다. 그렇기에 에블린은 멀티버스 점프를 통해 또 다른 에블린이 가진 능력을 빌려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의 자신과 자신이 속한 세계에 허무함을 느끼기도 한다. 마치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길 끝에 있었을 빛나는 우리의 모습을 그리며, 이를 동력으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현재의 소중한 순간과 사람들을 놓쳐 버리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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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물을 채운 점토 그릇 같은 거야. 점프할 때마다 균열이 생겨서 물이 새. (…)

 잘 들어. 특수 기술을 얻으려고 타우주를 이용하는 것뿐이야.

그 우주를 탐내다간 혼돈에 빠진다고. 그릇이 깨지면서 죽을 수도 있어.

더 크게 잘못되거나."

 


만약에 다른 우주로 돌아가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에블린에게, 웨이먼드는 결국 에블린이 존재하는 지금의 세계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이렇게 전한다. 무엇보다 판타지 장르가 가진 한계 없는 상상력을 가득 담고 있는 이 영화에서, 이토록 단호하게 어쩌면 ‘나’였을지도 모를 수많은 다른 ‘나’가 아닌 ‘지금의 나’로 ‘지금의 삶’을 꾸려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어떤 후회와 아쉬움을 무수한 선택의 갈림길 곳곳에 남겨두고 왔든, 결국 지금의 ‘나’는 내가 했던 수많은 선택의 결과이며, 그 결과로 존재하게 된 ‘지금’에 발 붙이고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삶은 어쩌면 우리가 되지 못했던 수많은 ‘나’와 그들의 세계를, 지금의 ‘나’와 내가 속한 세계로 통합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단순히 바꿀 수 없는 과거를 까맣게 잊고 현재에 체념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남긴 후회를 제대로 마주하고 스스로가 선택하지 않았던 수많은 자신들과 제대로 화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다음에 마주할 선택의 갈림길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스스로와 세계의 모습에 아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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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화는 이를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다정함’을 이야기한다. 에블린에게 그의 세계는 항상 불만스러울 정도로 답답하고 에블린의 세계를 파괴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었다. 어쩌면 에블린의 가족들 역시 에블린에게는 어느새 그런 사람들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세계를 위협하는 조부 투바키가 딸 조이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에블린은 드디어 조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자신을 공격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다른 세계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을 보면서 마지막에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다정함을 발휘하게 된다.

 

결국 에블린이 그랬듯 그들 역시 다른 모습이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에블린도, 그들도, 서로에게조금 더 다정해지는 선택을 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서로의 세계에 존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웨이먼드는 ‘다정함’ 역시 생존을 위한 전략이자 세계를 위협하는 존재들과 싸우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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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늘 세상을 밝게만 보는 건 순진해서가 아니야.

전략적으로도 필요하기 때문이지. 난 그런 방법으로 살아남았어."

/

"모르겠어요. 내가 아는 거라곤 다정해야 한다는 거에요.

제발...다정함을 보여줘. 특히나 뭐가 뭔지 혼란스러울 땐."

 


에블린의 눈에는 유약하고 한심하게까지 보였던 웨이먼드는, 에블린의 곁에서 ‘다정함’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사물들에까지 눈을 붙여주고 소중히 대하는, 어쩌면 사소하고 의미 없어 보이는 행동일지라도, 다정함을 담은 웨이먼드의 작은 행동들은 그의 주변을 조금씩 따뜻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처럼 영화는 에블린과 웨이먼드가 다정함으로 타인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삶에 타인에 대한 이해와 다정함을 아주 조금만이라도 더하는 것이 가져올 변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관계의 이름이나 환경에 기댄 것이 아닌, 결국 서로의 선택이 만들어낸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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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네말대로 그 뭔가가 있을지 모르지. 우릴 하찮은 쓰레기로 느끼게 해줄

새로운 뭔가가. 네가 그 모든 소음을 뚫고 날 찾아다닌 이유를 설명해줄 무언가가.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난 너랑 여기 있고 싶어. 난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너와 여기 있고 싶어."

 

"그래서 뭐? 나머지 문제들은 다 무시할 거야?

뭐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잖아. 왜 그런 곳으로 가지 않는 거야?

엄마 딸의 모습이...안 이런 곳. 이곳은 그래봐야...

상식이 통하는 것도 한 줌의 시간뿐인 곳이야."

 

"그럼 소중히 할 거야. 그 한 줌의 시간을."

 

 

먼 길을 돌아 다시 서로의 곁에 선 에블린, 웨이먼드, 그리고 조이는 단지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가 했던 잘못된 선택을 만회하고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마주보기 시작했기에, 또 서로에게 더 다정해지기를 선택했기에, 계속 서로의 곁에서 함께하기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방대한 서사와 수많은 세계를 모두 거쳐 결국 ‘다정함’이라는 가치에 도착한다. 그리고 영화가 말하는 ‘다정함’은 스스로와 타인 모두에게 건네는 다정함이다. 삶의 과정에서 마주해야 했던 수많은 갈림길에 두고 온 ‘나’를 인정하고, 그 갈림길마다 곁을 지켜준 소중한 사람들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면서 에블린은 드디어 ‘사랑스러운 점들은 언제나 있다(there is always something to love)’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언제가 되어서야 우리를 둘러싼 유일하고 소중한 모든 존재들이 가진 사랑스러움을 발견하는, 그 다정함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우리도 영화에서처럼 때론 아쉬움이 남는 자신의 모습에서, 어쩌다 한 번 스치는 인연에서부터 묵묵히 곁을 지키는 소중한 사람들에게까지, 그 나름의 소중함과 사랑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기를, 그래서 그 모습을 비춰보며 더 다정해지는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스스로의 선택이 쌓여 지금의 자신이 되고, 같은 세계 안에 살고 있는 우리의 선택이 모여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습을 이룬다. 영화 속 가득 찬 모든 다정한 말들이 우리를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던 것처럼, ‘한 줌의 시간’ 안에서도 조금 더 다정해지는 선택을 통해 우리와 우리의 세계는 점점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또 그런 세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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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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