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이 '인터넷 밈'을 만났을 때

인터넷 밈 전쟁의 시대
글 입력 2023.02.1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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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니메이션 〈보이즈 클럽〉에는 개구리 페페가 있다. 이 캐릭터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밈meme으로서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 캐릭터 창시자인 맷 퓨리는 제 손으로 페페의 장례식을 치른다. 다큐멘터리 〈밈 전쟁 : 개구리 페페 구하기〉는 어떻게 '4chan'라는 인셀 사이트 사용자들 의하여 혐오의 상징이 되었고,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대안 우파의 혐오 정치에 앞장서게 되었으며, 나치, 인종차별주의자와 여성 혐오자의 대표가 되어 혐오 상징물 데이터베이스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단지 애니매이션의 주인공이었을 뿐인 페페는 어쩌다 혐오의 상징이 되었는가? 그리고 이 흐름을 단지 리처드 도킨스의 '밈'의 정의로만 설명할 수 있는가?


 

 

밈과 인터넷 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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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은 1976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등장한다. ‘문화 전달의 복제 단위’라는 정의를 가진 밈은 문화를 전달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다. 이는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는 수준에서 시작하여, 현재 2022년도에는 '인터넷 밈'이라는 단어로 주로 사용되며 이전 세대의 문화를 전달하고 모방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문화 형성에 참여하며 복제되는 창의성이라는 개념이 더해졌다.

 

이러한 '인터넷 밈'은 단지 사진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튜브 및 1인 SNS의 발달로 사진에 국한되어 있던 인터넷 밈은 텍스트, 사진, 영상, 음성 등 형태에 구애받지 않게 되었고, 인터넷상의 이용자들의 창의성과 개성에 맞게 손쉽게 왜곡, 변형, 복사되어 손쉽게 배포된다. 


인터넷 유행어를 사용하는 정치인은 새롭기도 하고 친숙하기도 하다. 인터넷의 폐쇄적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유래로 인하여 같은 은어를 사용하는 존재들에게 느끼는 친숙함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 사용이 익숙지 않은 세대에게는 어떨까? 세대 간 단절을 유발한다는 부정적인 우려가 존재하지만 사실 인터넷 밈의 문제점은 세대 간 단절에 있지 않다. ‘세대 내 단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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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페페는 '4chan'이라는 인셀들의 사이트의 유저들이 스스로를 빗댄 '슬픈 페페'를 사용하며 유행하기 시작했다. 페페가 인셀들의 폐쇄적인 사이트를 넘어 대중화되기 시작하자, 이들은 자신들만의 '은어'를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대중화되지 못하도록, 그러니 직접 밈의 창작자인 자신들 말고 다른 이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사이트 이용자들은 페페로 온갖 혐오를 표현했다. 나치 문양이 그려진 옷을 입고 있는 페페, 테러리스트의 모습을 하며 총을 겨누는 페페, 인종차별을 하는 페페의 그림들을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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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페페는 맷 퓨리가 만든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아니었다. 혐오가 기반이 되었을 때 인터넷 밈의 부정적인 측면이 드러났다. 검열 없이 퍼져나가는 혐오들은 창작자인 맷 퓨리조차 막을 수 없었다. 이미 그의 페페와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페페의 짤 사이에 간극을 메꿀 수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단지 '유행'에서 멈추지 않는다.


 

 

프레임과 인터넷 밈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왜 항상 진보는 실패하는가를 프레임 이론에 따라 설명하는 책이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 두뇌는 그 단어와 결부된 프레임이 작동"하며 우리의 두뇌는 논리적으로 사실과 인과관계를 파악하는듯 하지만 사실을 우리가 지닌 프레임에 맞는 사실만을 받아들인다. 레이코프는 진보가 실패하는 이유는 보수의 언어, 즉 보수의 프레임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진보가 이기려면, 보수의 프레임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만의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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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는 부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코끼리다.


보수당의 정치인 A가 있고 진보당의 정치인 B가 있다. A는 B를 '거짓말쟁이'라고 말한다. B는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뇌는 부정을 이해할 수 없기에  B는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아님을 설명함으로써 스스로와 '거짓말'이라는 부정적인 프레임을 계속해서 덧씌운다.


 "B는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남을까? B와 거짓말쟁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뿐이다. "B는 진실만을 말한다"라고 했다면 어떨까? 그러나 이미 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남을 헐뜯기 위한 프레임은 큰 어려움 없이 작동한다. 그렇다면 이 프레임이 인터넷 밈을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2020년 제59대 미국 대통령 선거와, 2022년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를 떠올리면 손쉽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혐오의 대명사가 된 개구리 페페와 자신이 합성된 인터넷 밈을 긍정적으로 언급했고,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를 여성, 성소수자, 이민자 등의 사회적 약자를 공격해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2022년 대선 후보들도 인터넷 밈과 결합되었는데, 명치에 손을 얹고 소화불량의 불편함과 소화의 상쾌함을 표정으로 드러내는 한 소화제 광고의 캡쳐와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의 합성 사진과 탈모제 광고를 따라하는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의 사진들이 인터넷 상에 널리 퍼졌다. 이는 젊은 세대들에게 친숙함과 유쾌함을 주기 위한 당시 대통령후보 캠프의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자는 여성혐오적인 표현인 ‘오또케’를 대선 정책에 사용하거나 여성부 폐지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일부 혐오주의자들을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결집시켰다.


이 인터넷 밈은 이제 다시 정치 프레임이 되었고 각종 정치부 기사에서 유행어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정치권에서 프레임을 인터넷 밈으로 대체하자, 인터넷 밈의 영향력은 전방위적인 사회로 뻗어나가고 있다. 혐오를 반대하기 위한 인터넷 밈과 혐오를 위한 인터넷 밈이 격렬하게 다투고 있다. 이미 인터넷은 '프레임 전쟁'을 넘어선 '밈 전쟁'이다. 프레임 전쟁이 재미없고 진지하고 지루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늙은 정치의 싸움이었다면 인터넷 밈 전쟁은 그보다 새롭고 유쾌하다. 재미있고 친숙한 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약이 없는 만큼 증오와 혐오의 가치를 덮어쓰는 것도 쉽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퍼져나가는 인터넷 밈을 절대로 막을 수 없다.

 

 


인터넷 밈은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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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밈'은 재미있는 것이다. 애초에 살아남는 인터넷 밈은 어떠한 가치를 담기 전에 재미가 없다면 사장된다. 이따금 '재미'는 모든 가치의 위에 왕처럼 군림한다. 자신의 즐거움이 남을 휘두르거나 혐오하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해학과 풍자는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특권 계층을 비판하기 위해 본질을 비비 꼬아 유머로 재탄생시키는 효과적인 표현 방식이다. 그러나 그 칼날이 위가 아닌 아래를 향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인터넷 밈은 유행을 넘어서 여론의 흐름을 관장하기도 하며, 정치 프레임까지 관여한다. 게다가 재미까지 있다.


인터넷 밈은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공간이 존재하는 한 증식한다. 자의적으로 사장되는 한이 있어도, 타의적으로 막기란 불가능하다. 억압은 오히려 확산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인터넷 밈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우리는 소비자이자 창작자가 된다. 소비와 재생산, 변형은 너무나 손쉽게 이루어진다.


인터넷 밈 자체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일 수는 없다. 유희 거리를 찾는 일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대에 재미 안에 숨은 의도를 찾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혹은 이러한 인터넷 밈이 확산되면 어떤 가치가 긍정될 것이며, 어떤 계층이 억압 받을 것이며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를, 한 번쯤을 고민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인터넷 밈 안에서 '재미'만을 찾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인터넷 밈'은 사회 문화 전반뿐 아니라 정치의 영역까지 침투했다.


맷 퓨리는 페페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그러나 혐오 정서가 덧씌워진 페페의 죽음을 슬퍼하던 사람들은 페페를 살리고자 했고, 이 흐름은 지구 반대편의 홍콩 민주화 시위대에게까지 향했다.


역설적이게도 혐오주의의 대표였던 페페는 홍콩에서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시위대의 사람들은 페페의 인형을 들거나 그림이나 사진을 들며 자유를 외쳤다.


페페는 수단이다. 인터넷 밈은 무가치의 수단이다. 그 안엔 무엇이든 들어가 목적이 될 수 있다. 의도가 없었다는 변명이 더 이상 통하도록 둘 순 없다. 그러니 더 이상 무지가 무죄가 되긴 힘들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인터넷 밈을 소비하는 개인들이 한 번씩만이라도 인터넷 밈을 메타적으로 반추하는 시간이 필요해진 시기가 왔다. 진실이 가려진 수많은 정보들 사이에서 어떤 가치들은 유머라는 아주 좋은 목적으로 교묘히 숨어 들어온다. 모두가 모든 것을 골라낼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번은, 한 번씩은, 한 번이라도.


이 인터넷 밈이 유행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잘잘못을 따질 수 없을 만큼 현대사회는 복잡해졌다. 그러나 어느 사회에서건 나는 적어도, 나만은 통제할 수 있다. 어렵지 않다.


 
내가 이 밈을 보고 즐기는 행위로 피해받는 이가 있을까?
 


이 짧은 질문이면 된다.

 

 

[양자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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