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경험의 노스탤지어 - 마리아 스바르보바 전

글 입력 2023.01.1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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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으로 관람한 전시는 예술의전당 마리아 스바르보바 전 <어제의 미래>였다. 스바르보바 전 직전, 그러니까 작년 말에 본 전시가 또 동시대 활동 작가인 헬가 스텐첼의 사진전이었는데 아무래도 관람 초기에는 두 작가의 작품 경향을 비교하며 보게 되었다.

 

스텐첼은 주로 일상 속 사물들의 고유한 형태, 자기들끼리 겹쳐진 모양으로부터 상상력을 발휘하고 자신만의 유머를 더해 사진을 찍는다. 후보정 작업까지 거쳐 완성된 사진 작품에는 헬가 스텐첼 특유의 편안한 익살스러움이 들어있다.

 

스텐첼의 작품이 우연한 발견과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상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스바르보바의 사진은 세트장과 모델을 필요로 한다. 사진을 찍기 전부터 공간, 의상, 소품, 모델들의 행동은 사진작가인 동시에 아트 디렉터인 마리아 스바르보바에 의해 통제된다. 파스텔 색조 안에서 포인트가 되는 물빛 푸른색과 쨍한 주황색의 대비 역시 후보정 작업을 거친 것으로, 통제된 색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앞과 뒤가 설계된 작업의 결과물-스바르보바의 사진-에는 바늘 하나 들어갈 것 같지 않은 견고함과 경직된 분위기만이 존재하는가? 분명히 스바르보바의 인물들은 자세와 표정에서 마네킹 같은 경직성을 가진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스바르보바의 사진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고정된 프레임 안, 경직된 인물들 사이에는 사진의 전반적인 톤을 이루는 파스텔 색조처럼 몽환적인 분위기가 깔려 있고 이상한 향수마저 느껴진다. 그녀의 사진에서 풍겨오는 묘한 노스탤지어는 보는 이의 마음을 고요함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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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경험의 노스탤지어


 

마리아 스바르보바 사진의 특징으로 계획된 화면, 파스텔 톤, 푸른색과 주홍색의 대비, 냉담한 인체, 그리고 사물의 미니멀리즘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전반적인 미적 감각과 시각적 특징의 요소요소는 작가 고향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에서 기인했다.

 

스바르보바의 고향인 슬로바키아는 과거 체코와 함께 사회주의 공화국이었다. 스바르보바는 공산주의가 종식되었을 때인 1988년에 태어났지만 어릴 적 어른들에게 공산주의 체코슬로바키아 시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경험해 보지 않은 그 시대에 향수를 느꼈고 공산주의 체코슬로바키아 지역에 있는 건축양식을 흥미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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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 and Daughter, 2018

 

 

작품의 요소를 조금 더 자세히 파고들면 공산주의 시절 슬로바키아에 대한 스바르보바의 관심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의도적으로 조성한 환경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스바르보바는 공산주의 당시에 만들어진 의상과 소품을 사용하길 선호한다. 전시의 첫 번째 섹션인 [노스탤지어]에서 이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지만 후반 섹션이자 미국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로스트 인 더 밸리]에서도 공산주의 시절의 의상을 모델에게 입힌 것을 알 수 있다.

 

<정육점 시리즈>에서 우리는 고기가 넘쳐나는 정육점이 아닌, 소량의 육류 제품만이 진열된 정육점을 볼 수 있다. 이는 공산주의 시절 물자가 풍부하지 않았던 생활상과 당대의 가치관인 ‘최소한의 지속 가능한 삶’의 추구를 반영한다.

 

스바르보바는 과거의 가치관을 작품 속에서 미니멀리즘의 지향으로 다시 구현한다. 의도적인 반복과 패턴화 작업도 포함하는 [스위밍 풀] 시리즈와 달리 다른 시리즈 작업에서 그녀는 ‘가득 찬’ 화면이나 가득한 사물들을 피사체로 삼지 않는다. 의상과 소품 역시 미니멀하여 다른 시각적 요소를 방해하지 않는다. [스위밍 풀] 시리즈 등에 등장하는 수영복은 의상 면에서 미니멀의 극치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녀의 사진 속 공간은 여백의 공기를 가진다. [로스트 인 더 밸리]에서 미국의 사막 지역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도 미니멀리즘 지향과 의미가 상통한다. 자연물조차 적은 사막은 그녀의 미니멀리즘 미학에 적절한 피사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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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2019

 

 

 

퓨트로 레트로 (FUTURO RETRO)



경험하지 않은 옛 시대의 가치관이 작가의 미니멀리즘 지향으로 이어지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사진은 과거 그 자체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이번 전시에서도 스바르보바 작품의 특징 중  ‘신(新)과 구(舊)의 적절한 결합을 통한 놀라운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에 특히 집중했다. 본 전시의 타이틀인 ‘어제의 미래 (FUTURO RETRO)’ 또한 이 신구(新舊)의 상호작용에서 착안되었다고 한다. 

 

퓨트로 레트로 섹션에 있는 [더 게임 시리즈]에서 스바르보바가 과거의 향수 속에 품어두는 미래지향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두드러진다고 느꼈다. 마리아는 작품 속 모델에게 일반적인 스포츠 유니폼 대신 패션디자이너인 키소바와의 협업을 통해 만든 비일상적이고 미니멀한 유니폼을 착용하게 하여 미래적인 분위기를 강화했다. 

 

이처럼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과거 시대를 오마주하지만 미래적인 요소를 부가함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작품에서 우리는 ‘미래적인 레트로풍’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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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ykacka, 2016

 

 

 

자유와 규율의 수영장


 

[스위밍 풀 시리즈]는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대표 시리즈이다. 스바르보바는 4년 동안 슬로바키아에 있는 13개 수영장에서 120개 이상의 작품을 남겼다. 스바르보바는 수영장의 완벽하게 직선적인 라인, 고요하게 들어오는 자연광에서 영감을 받았다. 스바르보바는 패턴의 반복과 실루엣의 규칙성에서 즐거움을 찾는다고 한다. 수영장 타일의 반복과 샷시의 반복, 수영복을 입은 인체의 실루엣은 그녀에게 시각적으로 천착할 좋은 소재이자 공간이었을 것이다. 

 

[노스탤지어] 섹션 등 그녀의 다른 시리즈 작업에서 인물들이 무표정하고 정적이었던 것처럼 [스위밍 풀 시리즈]의 수면 역시 잔잔하기 그지없다. 일렁이는 수면을 담은 사진은 한 장 뿐이었고 사람이 첨벙 뛰어드는 순간 물방울이 튀어오르는 수면은 그녀의 사진 안에 드러나지 않았다. 

 

이는 마리아가 매료된 수영장의 ‘규율과 자유’와도 연관된다. 수영장은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과 일상 속에서 할 수 없는 활동(수영과 각종 수영장 스포츠)을 누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각종 규율이 존재하는 곳이다. 예를 들면 모두가 쓰는 수영장 물에 머리카락이 흐르지 않도록 수영모를 꼭 써야한다던가, 물에 젖은 타일 위에서 뛰어다니면 안 되는 것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공공의 안전과 쓰임을 위해 납득이 가는 규율이지만 마리아는 ‘수영장처럼 자유로운 곳에서도 사실은 엄격한 규율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했다. 

 

그녀가 특히 천착하는 수영장의 규율은 ‘ZÁKAZ SKÁKAŤ!’라는 문구이다. 스바르보바의 사진 속 잔잔한 수면 뒤 하얀 벽면에는 종종 이 문구가 보인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다이빙 금지’라는 뜻이다. ‘다이빙 금지’라는 문구로 대표되는 수영장 내부의 규율, 즉 ‘자유로운 곳을 사실상 지배하는 규율’은 [스위밍 풀 시리즈]의 하위 시리즈인 [걸 파워 시리즈]에서 더 복잡한 의미를 갖게 된다. [걸 파워 시리즈]는 희망, 여성의 화합, 연대의 힘을 상징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수영장 풍경에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금지사항들로 이루어진 문구들은 사회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통제하는 것들을 의미한다.’  

 

[걸 파워 시리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대칭적이고 기하학적인 요소들은 ‘스파르타키아다’라고 불리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유명한 스포츠에서 영감을 받고 표현되었다. 이 스포츠는 다인원이 경기장에서 싱크로나이즈 동작을 하는 종목으로, 마리아의 작품에서는 각각의 다른 대칭으로 모델의 수를 곱하여 독특한 전체로 보이게 작업 되었다. 한 명의 모델이 계속 반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내 시선을 잡아 끈 사진은 신화 속 여신들을 연상시키는 자세와 배치를 취하고 있는 모델들을 패턴처럼 반복하여 웅장한 느낌을 준 것들이었다. 여담이지만 이 사진들을 보며 아리아나 그란데의 ‘God Is A Woman’ 무대가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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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l Power II, 2018 

 

 

<어제의 미래>는 국내에서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가장 많은 작품을 다룬 개인전으로, 오는 2월 26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경험하지 않은 과거에 파스텔 색조라는 노스탤지어를 입히고, 그것을 통해 어제의 미래를 그려보는 스바르보바의 작품으로 연초를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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