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솔직함을 팝니다 [사람]

글 입력 2023.01.0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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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내가 가장 자주 쓰는 인스타 계정을 지웠다(21.08.) 탈퇴 버튼을 누르는 행위 자체는 쉬웠지만 그 동력은 무수하고도 복잡했다. 그중 두 가지만 제 옷을 찾았기에 최종적으로 발화될 수 있는데, 먼저는 응축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나에게 인스타, 특히 스토리는 순간의 감정을 너무 쉽게 표출할 수 있는 매체였고 그러한 매체는 우발적이고 단발적이며 휘발성이 강해 흔히 말하는 ‘기록’의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과거 ‘한국문학의 이해’라는 강의에서 극적 갈래를 배우던 때였다. 우리나라의 민속극은 풍자적 성격이 두드러지는데, ‘그러한 전복적 특징을 가지는 갈래를 통해 실제 사회가 전복적인 분위기를 가질 수 있었을까?’라는, 즉 ‘작품 안의 전복성이 실제 현실에도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질문을 교수님께서 던지셨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전복성의 영향을 긍정하며, 풍자적 작품이 사회 내에 불합리함을 느끼고 공유하게 하는 분위기를 형성했을 거라 추측했다. 이에 교수님께서는 그 반대의 의견도 있다며, 어떤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해 주셨다. 풍자적 정서를 향유하는 작품들은 양반들에 대한 불만이 쌓이지 않도록 제때제때 터뜨려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응집을 방해해, 사회의 계급 질서를 공고히 하는 데 순기능을 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은 내가 인스타에 느끼는 감정과 밀접하게 통하는 면이 있다. 나는 인스타를 통해 제어 받지 않고 순간적으로 정동을 휘갈김으로써 더 이상 감정 응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점점 사고가 단순화됨을 실시간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감정을 되새김질할 여유와 필요가 사라졌고 ‘표현’이 아닌 ‘표출’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갔다. 어느 순간 한 편의 글을 작성하는 게 어색했고 이러다간 심혈을 기울여 글을 쓰는 방법을 잊을 것만 같았다.

 

한 번에 뚝-딱인 인스타와 달리 ‘글’이라는 완성된 요리를 내기 위해선 재료 확보, 적절한 언어 선택, 퇴고 등 일련의 과정들이 잠재적으로 수반된다. 나는 순간적인 감정에 걸맞은 일시적인 매체를 통한 ‘표출’보다, 한때인 감정을 끈덕지게 물고 늘어짐으로써 기록되는 ‘표현’을 원했기에 기꺼이 인스타를 지워야 했다.

   

*

 

첫 번째 이유를 쓰다보니 길어졌지만, 실은 두 번째 이유가 이 글을 쓰고자 했던 본 목적이다. 바로 솔직함의 과생산이다. 이번 연도엔 그 빈도가 많이 줄었지만, 나는 인스타 스토리에 종종 솔직한 상념을 올리는 편이다. 사람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노출되고 싶어 하며 노출된 느낌을 공유함으로써 연대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고,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 행동에 제동이 걸리며 묘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감정을 자주 무시했고 가끔 의식했다. 그러다 전혀 상관없는 책에서 시작해 빠르게 흐르는 생각의 수로에서 그 단초를 우연히 낚아챘는데, 그건 바로 ‘솔직함의 판매’였다.

 

우리는 누군가의 솔직함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솔직함은 종종 남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단순한 메커니즘은 처음에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쉽게 파악될 수 있다. 솔직함이 관심을 유발한다는 이 메커니즘을 파악해 버리면 이젠 어쩔 수가 없어지는데, 원하든 원치 않든 나의 솔직함이 불러일으킬 타인의 반응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영리한 사람은 일종의 거래 관계가 성립되었음을 눈치챈다. 그들은 본격적으로 ‘관심’을 얻기 위해 ‘솔직함’을 팔기 시작한다. 다만 이것은 무형의 관심을 무형의 솔직함으로 사는 무체의 거래이기에 아주 무의식적이고 잠재적으로 이뤄진다.

 

이 거래에선 전적으로 판매자가 ‘을’일 수밖에 없다. 그들의 솔직함은 기필코 노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팔아야만 되는 사람들이다. 더하여, ‘판매’의 특성상 소비자를 고려해야 하기에 판매자들은 소비자의 선호에 맞는 적절한 ‘솔직함’인지 수시로 체크해야 된다. 소비자가 과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솔직함의 빈도와 농도를 타의적인 자의로 조절한다.

 

이를 반복하다 보면 판매자는 때때로 엄습하는 ‘자괴감’의 그림자를 피할 수 없게 되는데, 그 자괴감은 소비자를 의식하여 ‘가공한’ 솔직함이 더 이상 솔직하지 못하다는 데서 야기된다. 그들의 솔직함이 ‘거짓’은 아닐지언정, 적어도 ‘부자연스러운’ 솔직함이 되어 버렸기에 과거의 순수성을 박탈당한다.

 

솔직함을 지나치게 팔아서. 솔직함을 강매하기 위해 너무 과잉 생산했기 때문에. 스스로가 가소로워지는 역겨운 공기를 피하려고 들숨을 참아보지만, 그러나 나는 이미 냄새를 맡아 버렸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솔직함을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애초에 솔직함이란 뭘까. 인간은 과연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을까. 본디 명확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게 솔직함이라면, 마구 과용해도 괜찮은 걸까.

   

솔직한 게 뭔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솔직함을 다시는 드러내지 않으려는 마음 따윈 나에게 없는 듯하다. 나는 부박하고 구차한, 때론 부자연스러운 솔직함, 거짓된 솔직함이더라도 드러냄으로써 존재가 구체화되고 다듬어짐을 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나는 솔직함을 쓰거나 말하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사람인 듯하다. (정말 불행하다) 단지 지금은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다. 내가 드러내고자 하는 솔직함이란 게 무엇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것을 어떻게 다듬고 다룰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시간. 솔직하게 난 점점 솔직해지지 못해가고 있기에. 한편, 우린 꼭 솔직해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함께.

 

솔직 장사를 길게 하기 위해, 혹은 깨끗이 접어버리기 위해 (가능할까), 각양각색의 베일에 싸인 솔직을 성실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박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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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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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름13
    • 표현이 아니라 표출에 익숙해져 버렸다는 말이 유독 와닿아요. 솔직함을 대가로 관심을 얻고 있었다는 말도 마찬가지로...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지는 글, 잘 읽고 갑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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