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 '부채를 꼭 쥔 손' 추유선 작가

글 입력 2022.12.1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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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2 _.jpg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가 있다. 여성 이주노동자는 특히 잘 지워지고 밀려나는 존재다. 그들은 자극적이고 비극적인 이야기가 될 때야 ‘외국인 신부’로서 우리 눈앞에 모습을 잠깐 드러냈다가 이내 금방 사라지곤 한다.


추유선 작가의 개인전 <부채를 꼭 쥔 손>에서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을 소비하는 대신 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작가는 2022년 우리나라 여성 이주노동자의 삶과 100여 년 전 이 땅을 떠나 하와이로 향했던 여성들의 삶이 시간 차가 있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삶의 다양한 모습을 회화와 영상, 설치 작업으로 포착했다. 거기에는 흔히 예상하는 슬픔과 고난 못지않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와 열정도 담겨 있다.


지난 9일, 추유선 작가를 만나 전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에게 이 전시를 준비하는 일은 다른 나라에서 온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그 목소리가 1900년대 초 우리나라 여성들의 이야기로 연결되었고, 다시 오늘날 주변 작가들의 삶과도 이어졌다. 인터뷰에서 그는 작업이란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낯선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 결국 자기 자신을 알게 되는 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며, 우리는 어릴 적 말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부터 먼저 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다른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말하는 법을 잊어버릴 것이다.

 

 

 

서로 연결되는 이야기들


 

첫번째 아이 1.jpg

첫 번째 아이 / 캔버스 천위에 유화, 연필, 목탄 / 79✕87cm✕2 / 2022

 

 
"삶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개인전 축하드립니다. 이번 개인전을 열게 된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5년 만에 개인전이라 부담도 컸고 긴장도 많이 했어요. 제가 이주민 당사자가 아닌데 이렇게 전시를 한다는 게 그분들에게 누를 끼치는 건 아닐까, 그분들을 도구화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다양한 자료를 계속 확인하고, 전시에 도움을 주신 여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 발 한 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작가님이 이주민 당사자가 아니기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길을 찾아가셨는지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요.


제가 당사자는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통된 지점이 분명 있을 것 같았어요. 삶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전시에 글을 써주신 이라영 선생님의 말처럼 크게 보면 모든 사람은 여행자라고 생각하거든요. 계속 부딪히며 나아가는 거죠. 그런 면에서 이 주제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을 거라고 믿으며 전시 준비를 했습니다.

 

 

꼭 이번 개인전이 아니더라도 이주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작업을 계속 하고 계신데요,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금천문화재단의 ‘빈집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부터예요. 해당 지역의 빈집을 예술가들이 예술 공간으로 만드는 문화 사업인데,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지역 활동가분들에게 금천구가 어떤 특징이 있는 동네인지 설명을 들었어요. 중국인과 재중동포분들이 많이 살고, 예전에 미싱 공장이 있던 시절 직원 기숙사로 사용되던 벌집 구조의 쪽방들을 지금은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이 채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한집에 살면서도 한국인과 재중동포, 중국인 간에는 교류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어요. 그때부터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특히 재중동포분들에게 한국은 어떤 곳인지 알아보고 싶어졌죠. 

 

 

이번 전시는 그중에서도 특히 이주여성에게 초점이 맞춰진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주노동자, 그중에서도 여성을 들여다보는 게 작가님께는 어떤 과정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전시를 준비하며 한국에서 힘들게 아이를 키웠던 중국 여성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게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어요. 물론 지금은 상황이 많이 좋아지셨지만, 처음에는 아이가 있기 때문에 혼자일 때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는 이야기, 일 때문에 아이를 혼자 둬야 했을 때의 심경 같은 걸 들려주셨어요. 신기하게도 그분의 이야기가 10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 하와이로 이주했던 ‘사진신부’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어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제 주변 작가들의 삶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지점을 발견하는 게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인정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작가의 작업도 일종의 노동이라고 생각하고, 제 주변에도 아이를 낳고 작업을 힘들게 이어 나가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 대단하다 느낄 때가 많아요. 

 

 

 

‘국민’이란 무엇인가


 

빨래, 진정한 공간.jpg

빨래 / 영상(빔프로젝터) / 00:10:34:10 / 2022

진정한 장소 / 프린트물 위에 목탄, 콘테 / 29✕21cm✕50장 / 2022

  

 
"저는 오염된 게 더럽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당사자가 아니라서 어려웠던 점 외에 전시를 준비하면서 또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2022년에 우리나라에서 사는 여성 이주노동자 이야기와 100여 년 전 하와이로 간 사진신부 이야기를 같이 놓고 보겠다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조사하다 보니 자본주의가 어떻게 사람을 도구화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지면서 다룰 내용이 너무 방대해졌어요. 제가 주제를 잘못 잡았나 생각도 들었고요. (웃음) 관람객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 커다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압축하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작품도 눈에 많이 띄었는데요, 평소 어떤 방식의 작업을 주로 하시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보통은 영상, 설치 작업을 주로 해요. 그런데 설치 작업의 경우 전시가 끝나고 나면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 데다가, 작품을 폐기하는 데 돈도 많이 들어서 최근에는 설치 작업을 줄이려 해요. 앞으로는 영상과 페인팅을 중심으로 작업할 예정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었던 영상 작품 ‘빨래’도 독특했어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사진신부들이 하와이에서 주로 했던 일은 사탕수수밭 일이었지만 임금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독신 노동자의 빨래를 해주거나 식사를 준비해주기도 했대요.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식들의 대학 공부까지 시켰던 거죠. 단순히 자기 자식을 교육시키는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이 공동체에서 한 명이라도 변호사나 검사가 나와 공동체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로를 도왔다고 하더라고요. ‘빨래’에는 그런 정신을 담아보고 싶었어요. 


영상에는 바다에서 빨래하는 모습이 담겼어요. 사실 바닷물에 빨래를 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소금물이니까. 소금물이 옷에 계속 흡수되는 건 노동하는 사람의 땀이 옷을 적시는 걸 연상시켜요. 그걸 오염이라 볼 수도 있지만, 저는 오염된 게 더럽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거기에는 힘든 노동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지켜내려 했던 의지가 깃들어 있기에 아름답기도 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영상에 나오는 국민체조 음악도 기억에 남아요. 


국민체조에 대한 생각은 전시를 준비할 당시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 한 분을 어렵게 인터뷰하게 되면서 떠올리게 되었어요. 그분은 한국 사람과 결혼해서 한국에 오셨고, 지금은 귀화까지 하셨어요.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을 국민으로 바라보지 않고 외국인으로만 여긴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한국인’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로만 인식되기에 일자리를 구할 때도 이주노동자가 많은 공장에는 쉽게 가지만, 거기서 좀 더 나아가 일반적으로 이주노동자가 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하려 들면 막힐 때가 많다고 해요. 


예를 들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카페에 취직을 하려 했는데, 면접 자리에서 사장님이 외국인이기 때문에 당신은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대요. 자신은 귀화해서 한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 귀화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구차하게 느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비슷한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니 자신은 한국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국민’이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국민이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 기사 영상에서 봤던 장면이 떠올랐어요. 독일에서 난민을 태운 버스가 난민 수용소가 있는 마을로 진입하던 중 그 마을 입구에서 난민 수용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과 마주쳐요. '우리가 국민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나중에는 난민들이 탄 버스 안까지 들어가 “우리가 국민이다”라고 외쳐요. 경찰이 버스에 들어가 시위대를 내보내고, 난민들도 수용소에 들어가기 위해 버스에서 내리는데 그중 한 소년이 길에서 하염없이 우는 모습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남아 있어요. 


‘빨래’에 나오는 국민체조 음악은 거기서 떠올렸어요. 옛날 방식의 국민체조라는 걸 가지고 와서 국민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이야기해보고 싶었죠.

 

 

 

작업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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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옷을 접어서 개어 / 캔버스 천위에 유화, 연필, 목탄 / 116.7✕91cm✕2점 / 2022

 

 
"남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읽으려고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님이 특히 마음이 가는 작품이 있었다면 소개해주세요.


다 애착이 있지만, ‘붉은 옷을 접어서 개어’를 꼽고 싶어요. 예전부터 역사 속 누군가의 루트를 추적해가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 작품을 만들며 본격적으로 할 수 있었거든요. 하와이에서 맥시코나 미국 본토로 다시 이주한 사람들도 있는데, 그분들의 루트를 추적해보는 작업도 해보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잊었던 게 무엇인지 발견해내고 싶습니다. 


1900년대 초 사진신부들의 이야기와 2020년대 초 한국에 사는 여성 이주노동자의 이야기가 이렇게 비슷하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100년이 지났는데도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특히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을 더 탐색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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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꿈 / 디지털 프린트 / 29✕21cm✕4000장 / 2022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또는 이런 주제의 전시를 감상할 때 적절한 태도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저는 관람자가 작품에 더 능동적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해요. 예를 들어 이번 전시의 ‘색과 꿈’은 4천 장의 프린트로 바닥에 쌓여 있는데, 이런 건 보려고 노력해야만 보이는 거잖아요. 다행히 전시장에서 보니 생각보다 많은 분이 관심을 갖고 봐주시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남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읽으려고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것들을 전시에 잘 담아서 한 명이라도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작업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그럼 작가님은 어떤 마음으로 작업을 계속하시나요? 계속하는 이유도 듣고 싶습니다.


사실 올해가 혼란스러웠어요. 연초에 개인전을 하겠다고 확정하고 지원금도 받았는데 오랜만에 하는 개인전인 데다가 제가 정한 주제가 너무 방대해서 두려웠어요. 그러다가 내가 어디까지, 언제까지 이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 거예요. 작업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무언가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살아간다는 게 가까운 이들에게 계속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작업을 위해 모르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작 나와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는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갈등이 있었죠.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하고 싶은 작업이 계속 떠오르더라고요. 또 제가 하고 싶은 걸 안 하면 우울해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니 나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게 작업을 계속하는 큰 동력인 것 같아요. (웃음)

 

 

지금까지 작가님의 작품세계를 설명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매번 관심사가 달라져서 한 가지로 꼽기는 힘들지만, 저는 제 작업이 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어떤 사람이고, 도대체 뭘 위해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고, 그러면서 분노는 엄청 많고… (웃음) 작업을 하며 나라는 존재를 점점 더 알아가고 있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제 새해가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요, 작가님의 새해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올해 많이 흔들렸으니, 내년에는 좀 더 굳건하게 작업을 이어 나가고 싶습니다. 물론 아예 안 흔들릴 수는 없겠지만요. (웃음) 그리고 즐겁게 작업하고 싶어요. 대단한 걸 만들겠다고 혼자 고립되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면 좋겠습니다. 작업이 저를 짓누르지 않고 즐거움으로 다가오기를 바라요.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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