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빨강과 파랑에 담긴 세상 모든 것 - 유진서머콕 작가

글 입력 2022.11.3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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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랑하는 존재와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온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충분하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이별은 갑자기 삶을 찢고 들어오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이 이별을 받아들여야 할까. 5년 전 유진서머콕 작가는 유학 생활 중 갑작스레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같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그때 했던 생각과 감정, 그리고 바람을 담아 『안녕 본본』을 만들었다.


만남 끝에는 헤어짐이, 헤어짐 끝에는 다시 만남이 매달려 있는 법. 『안녕 본본』에서부터 시작된 빨강과 파랑의 강렬한 대비는 이제 유진서머콕 작가 그림의 가장 뚜렷한 개성이 되었다. 반려견과의 헤어짐을 그린 작품이 다른 수많은 작업의 시작점이 된 셈이다. 빨강과 파랑 두 가지 색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이라고 단순한 느낌을 상상했다가 실제 그림을 보면 놀란다. 두 가지 색만 있다는 것을 잊을 만큼 도시의 풍경이 섬세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출근하며 지나쳤을 법한 흔한 풍경은 그의 손을 거쳐 빨강과 파랑 옷을 입고 낯선 모습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두 가지 색으로 이 넓은 세상 구석구석을 빈 종이에 가득 담는 유진서머콕 작가를 만났다.

 

 

 

사랑하는 존재를 보내는 작별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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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들고 슬픈 와중에도

본본이 떠나면서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작가님 예명의 뜻이 궁금했어요. ‘유진서머콕’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탄생한 건가요?


제가 ‘여름’, ‘Summer’라는 단어를 무척 좋아해서, 예명을 만든다면 이 단어가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 본명인 유진을 쓰고 싶은 마음도 있었거든요. 본명과 예명 중 뭘 쓸지 결정을 못 해서 결국 ‘유진’과 ‘Summer’를 같이 쓰게 된 거죠. 거기에 어쩌다 보니 ‘콕(cox)’까지 붙어서 지금의 유진서머콕이 되었어요. (웃음) 대단한 의미는 없습니다. 결론을 내리지 못해서 만들어진 이름이에요.

 

 

최근에는 『안녕 본본』이 책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작업은 예전부터 하셨던 것 같은데, 출판되기까지의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안녕 본본』은 원래 졸업 전시 작품으로, 당시 제 반려견 본본을 떠나보내고 만든 이야기예요. '본본'이라는 제목으로 2018년에 이미 완성이 된 상태였죠. 완성이 되어 있으니까 출판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알아보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연이 닿는 곳이 없었어요. 그럼 펀딩을 받아서 내가 혼자 출판해야겠다 생각하던 중 작년에 나갔던 행사에서 노란상상 출판사를 만났고, 좋은 기회로 출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정식 출간을 준비하며 앞부분에 나오는 본본과 가족 이야기 일부가 20페이지 정도 추가되었어요. 또 좀 더 읽기 편하도록 페이지 구성과 대사도 조금씩 수정되었습니다. 원래 더 일찍 나올 예정이었는데, 추가 작업을 하느라 가을에 나오게 되었어요. 의도한 건 아닌데 이야기 분위기가 지금 계절과 잘 어울려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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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본본』 중 일부

 

 

파랗고 빨간 색감의 정교한 그림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데요, 『안녕 본본』을 작업하면서부터 이러한 색감을 쓰기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관련해서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처음 그림을 그리며 인쇄를 어떻게 할지 고민을 했어요. 당시 리소그래피 인쇄를 마음먹고 여러 가지 색을 써보다가 빨간색과 파란색을 정하게 되었죠. 리소그래피는 사용하는 잉크색이 한정되어 있어서 제가 어떤 색깔을 쓸지 정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시험 삼아 중간에 일반 인쇄를 해봤더니 색감 때문인지 그 자체로도 제가 원하던 리소그래피 느낌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계속 그 색감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제가 워낙 파란색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덕분에 지금은 원 없이 파란색을 쓰고 있어요. (웃음)

 

 

반려견과의 이별을 다룬 책이라고 했을 때 반려견을 떠나보내는 사람의 입장을 먼저 떠올렸는데, 떠나는 반려견 입장에서 그려진 책이라 신선했어요. 떠나보내는 입장이 아니라 떠나는 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만든 이유가 있을까요?


의식하고 만든 건 아니었어요. 혼자 영국에서 공부할 때, 저희 가족과 함께하던 반려견 본본이 떠났다는 소식을 전화로 듣고 이 책을 만들게 되었어요. 너무 힘들고 슬픈 와중에도 본본이 떠나면서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떠나는 걸 직접 못 봤으니 사랑한단 말도 해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본본이 제 마음을 이해하기를 바랐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본본의 입장에서 '본본은 이럴 것이다' 상상하며 이야기를 만들게 된 것 같아요. 책 끝에서 ‘죽음’이 하는 대사에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 많이 녹아 있어요. 

 

 

 

빨강과 파랑으로 담은 일상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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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도 일상에서 자주 보는 것들을 그려 볼까 마음먹고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 아파트 같은 네모난 건물들이었어요.” 

 

 

살면서 좋아하는 것들과 헤어지는 걸 피할 수 없다면, 작가님은 어떤 이별이 좋은 이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안녕 본본』을 만들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웃음) 저는 혼자 마음에 담아두는 것보다 가족이나 친구와 이야기하는 게 도움이 됐어요. 자신의 감정을 글로 남기는 등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면서 슬픔을 덜어내는 자기만의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비슷한 경험을 한 분들에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언젠가는 괜찮아진다는 것뿐이에요. 저는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자려고 누우면 갑자기 눈물이 나오곤 했거든요. 이게 정말 괜찮아질까 싶었는데 주변에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없어서 괜찮아진다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지금은 말할 수 있어요. 괜찮아진다고. 마음 아파하시는 분들이 그 시기를 먼저 지나온 저를 보며 위로받으시면 좋겠습니다.

 

 

꼭 『안녕 본본』의 그림이 아니더라도 작가님의 작업물을 보면 아련한 옛 기억이 떠올라요. 실제로 작가님의 기억과 경험에서 시작된 그림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어릴 때 외국 작가의 그림책을 보면 너무 멋진 풍경이 많아서 저도 그런 걸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들이 특별히 멋진 걸 그렸다기보다 일상에서 작가가 흔히 보는 주변 풍경을 그린 거더라고요. 그게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이국적인 모습이니까 저에게는 엄청 좋아 보였던 거고요. 


그럼 나도 일상에서 자주 보는 것들을 그려 볼까 마음먹고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 아파트 같은 네모난 건물들이었어요. 저도 실제로 어렸을 때부터 계속 도시에서 살아왔고요. 제게 익숙한 풍경을 그려 보기로 했죠. 그 다음부터는 매일 지나다니던 거리도 새롭게 보려 하고, 사진을 찍어 두었다가 나중에 보고 그리기도 해요. 『안녕 본본』에도 제가 어릴 때 살았던 동네 풍경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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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풍경이 빨강 파랑 색감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자연 풍경을 그리려면 제 편견일 수도 있지만 빨강 파랑으로는 더 어려울 것 같아서요. 


맞아요. 저도 자연물 그릴 때 고민을 많이 해요. 빨간색과 파란색만으로는 충분히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요. 그럴 때는 톤을 사용해 한계를 보완해요. 명암 차이를 주는 거죠. 그 차이를 적절하게 주는 게 어려워요.

 

 

앞으로도 지금의 색감을 쭉 유지할 생각인가요?


일단은 하는 데까지 해보고 싶어요. 물론 한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어요. 좀 더 시간이 흐르고 제 작업 범위도 더 넓어지면 바뀌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저는 다양한 색을 쓰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작업이 막힐 때 대처하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예전부터 그림 그리는 걸 정말 좋아해서 시키지 않아도 하루에 하나씩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나서 마감을 맞추려니 힘이 들더라고요. 진짜 하기 싫고 작업이 잘 되지 않을 때의 저를 보면 사실 피곤한 상태여서 그럴 때가 많아요. 그래서 마감이 코앞에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단 한숨 자요. 그래서 덜 피곤한 상태로 작업을 다시 시작하면 훨씬 낫습니다. 


어떤 때는 아예 첫 단추를 잘못 꿰어서 작업이 안 풀리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는 다 엎고 새로 시작하는 게 당장은 시간 낭비일 것 같지만 계속 그렇게 안 풀리는 상태로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듯해요. 때로는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게 답일 수도 있어요.

 

 

 

그림으로 만들어 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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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에 진행했던 유진서머콕 작가의 개인전

 


“거기서 제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을 많이 그릴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작가님은 어렸을 때부터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셨나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로 마음먹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작가님의 이야기를 간략히 듣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꾸준히 그려왔고, 그림으로 먹고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중학생 때부터 미술학원에 다녔으니 비교적 하고 싶은 걸 빨리 찾은 편이에요. 대학교 때는 무비 시퀀스 만드는 데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한번 해보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웃음) 저랑 잘 안 맞는다는 걸 깨닫고 다시 그림으로 돌아왔죠. 당시만 해도 국내 미대는 디자인 중심이지 일러스트레이터 과정은 많지 않아서 고민하다가 영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거기서 제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을 많이 그릴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안녕 본본』을 제외하고 지금까지의 작업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지난 여름 준비했던 개인 전시 ‘한여름의 크리스마스’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전시 제목에 맞게 여러 사람의 크리스마스 소원을 그려서 전시장 한쪽 벽에 전시하면 좋겠더라고요. 그렇게 설명드리고 SNS 팔로워와 지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소원을 받았는데요, 생각보다 많은 분이 소원을 말씀해주셔서 무려 100개를 그리게 되었죠. (웃음) 벽 한 면을 그걸로 꽉 채웠어요. 힘들긴 했지만 작업 과정이 재밌었고, 완성된 그림을 본 사람들의 반응도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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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본본』 외에도 그래픽 노블을 만들 계획이 있나요? 있다면, 작가님이 다음번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종류인지 궁금합니다.


그래픽노블에 관심이 많아서 계속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당장 지금은 다른 작가님과 ‘까막북’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는 ‘터무니없는 이야기’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어요. 아주 엉뚱한 문장을 먼저 생각해두고, 거기서부터 열두 편의 짧은 만화를 그립니다. 올해가 끝나기 전에  펀딩 받는 것까지 끝내는 게 목표입니다. 또 가족과 함께 떠난 핀란드 여행기를 몇 년 전에 그리다가 바빠서 잠깐 손을 놓은 상태인데, 그걸 완성해서 책으로 내보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다가오는 12월은 많은 것들을 떠나보내는 시기인데요, 2022년의 작가님을 떠나보내며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출판, 전시, 행사까지 올 한 해가 너무 바빴기에 빨리 떠나보내고 싶어요. (웃음) 올 한 해는 일이 바빠서 여기저기 다니지 못한 게 아쉬워요. 내년에는 좀 더 많이 놀러 다니고 싶습니다, 끝까지 잘 마무리하고, 2023년 새로운 저와 만나기를 바라요.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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