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수필인 듯 소설인 듯, 책 '이국에서'

글 입력 2022.11.2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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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에서_표지_띠지_웹용.jpg

 

 

주인공 황선호는 정계 사람이었다. 하지만 함께 일하던 시장이 비리를 저지르게 되며 그 일을 수습하기 위해 대신 그 혐의를 뒤집어쓰고 보보민주공화국이라는 이국으로 숨어들게 된다. 보보민주공화국은 실은 떠나고 싶지 않았던 그가 그래도 떠나야 한다면, 이곳으로 가겠다고 직접 선택한 나라이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터전에서 무척 생소하기만 한 보보민국공화국을 선택한 이유를 궁금해한다. 그 역시, 자신이 왜 이 나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확실한 이유를 가지고 있진 않다. 그저 이 도시의 하늘은 투명하고 태양빛은 순수하다, 이 단 한 문장이 무겁던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을 뿐이었다.

 

한 나라의 이름이자, 수도의 이름이기도 한 보보에서 황선호는 진정 죽은 사람이 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러나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그는 거리를 걸으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도시의 풍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문득 자신을 이곳으로 부른 문장이 떠올렸다.

 

그저 이 도시의 하늘은 투명하고 태양빛은 순수하다. 이는 어머니의 편지 속에 적혀 있던 문장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외국을 여행하던 한 사람에게서 꾸준히 편지를 받고 있었다.

 

황선호는 편지의 발신인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알진 못했지만,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문장을 시작으로 그는 어머니의 편지를 더듬어 보기 시작했다. 그때 그 편지에는 어떤 내용들이 적혀 있었던가?

 

그런 동안, 보보의 정부에서는 체류 허가증을 획득하지 못한 외부인들은 보보에서 살 수 없도록 하는 방침을 공표했다. 방침을 공표한 날을 기점으로 이전에 발급받는 비자는 모두 무용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순간에 보보에서 쫓겨나게 된 황선호는 과거의 동료에게 도움을 구했지만, 아무런 응답도 받을 수 없었다.

 

방법은 그 자신이 찾는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

 

분명 소설인데, 수필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소설 <이국에서>를 읽으며 가장 강렬하게 받았던 인상이다. 사유가 가득 담긴 문장들이 많았다.

 

그래서 좋았다.


 

삶이 불안정할 때 삶의 불안정함을 토로하는 글은 길고 글쓰기는 잦다. 삶이 안정할 때 삶의 안정함을 토로하는 글은 짧고 글쓰기는 드문드문하다.

 

p. 56

 


외부인이 된다는 것, 아마 주인공 황선호에게는 생소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남이 원하는 삶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그 같은 기회를 준 당사자는 보보가 아닌 친구들이었다. 보보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맥주를 판매하는 펍의 주인 필과 보보에서 쫓겨나게 생긴 자신에게 머물 곳을 내어준 쟝, 무엇보다도 필과 쟝의 연결 고리이자 자신을 이곳으로 부른 '그'까지.

 

그들 중 누구는 보보인이고 누구는 황선호와 같은 외부인이지만, 서로를 경계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연대하기를 선택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 그래서 강해 보였던 사람들에게서는 버림을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 그래서 약해 보였던 사람들에게서 연대를 느낀다. 진정한 보호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책은 그 답으로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이름이나 직위 또는 배경이 아닌, 그저 나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곳.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나라이다. 더불어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 그곳은 국가보다 작은 집단 혹은 공동체일 수도 있다. 단 몇 명만이라도 나를 나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책 <이국에서> 속 황선호는 자주 황선호라는 이름 석 자로 불렀다. 주인공이지만, 일부러 낯설게 느껴지도록 이름을 통해 지칭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이름 대신 친구라는 호칭으로 불릴 일이 더 많을 것이다. 마침내 그의 나라를 찾았으니까.

 

황선호에게 이국은 어디였을까? 불현듯 궁금해진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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