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 위선

글 입력 2022.11.2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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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다 위선이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수만 있다면, 없이 살아도 상관없어.’


순 다 개뻥이다. 제대로 해본 것이 없으니 죽어도 아쉬울 건 없지. 딱 그뿐. 본전이라도 뽑자는 온정주의적 마인드. 최소한의 생활은 해야 하니까, 해야 하니까 한다. 연출부 막내. 제작부 막내, 미술부 막내. 현장에서 막내라고 호명되는 일들은 다 한다. 궂은일 아니냐고?


잃을 게 없어서 오히려 편하다. 잘 보일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잘 보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위치에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까, 일만 잘하면 된다. 어차피 말이 되는 일은 없다. 그냥 받아들일 뿐, 적당히 귀 막으면 된다.

 

오늘은 제작부의 막내로 현장에 나왔다. '제작부'의 일은 현장 전까지의 일을 도맡아서 하는, 즉. 장소를 섭외하고 스케줄 조율하고 스태프들 식사 미리 생각하는 등의 일들이라 촬영 당일날에는 잠시 뒤에 빠져 있어도 된다. 리허설을 몇 번 했는데도, 감독님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해서 씨름을 한다. 촬영이 길어질수록 배우들의 표정이 초조하다.

 

연기? 무엇이 저렇게 절실한가? 신인 배우는 항상 저자세이다. 간혹가다 빽을 등에 업고 객기를 부리는 양반도 있지만 사람들은 다 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음속에만 담아둔다.


체화. 몸에 배어서 자기 것이 된다. 가끔 어떤 배우를 보면, 연기하는 인물이 그인지 그가 이야기 속 인물인지 넋을 빠지고 볼 때가 있다. 그런 배우는 흔치 않다. 그런 배우는 작품 간의 텀이 꽤 긴 편이다. 공백 기간에는 무엇을 하는지. 혹자는 재야에 묻혀 사는 도인이라, 함께 작품을 하려면 거취를 수소문해야한다고 한다. 체화. 꽤 감정적인 단어이다. 무엇이든 일을 알고리즘으로 처리하는 나와는 거리가 멀다.

 

그때, "진아씨!" 라는 외침에 반자동적으로 몸부터 나간다. '그거 어디 있어요...?' 라는 자동완성형 질문이 뒤따라 들린다. 체화. 나와 과연 거리가 멀다.


욕하면서 현장을 뛰어다니다가도 밤샘 촬영을 끝내고 모텔 침대에 온몸이 저릿한 채로 뻗으면 좋다. 온 기운이 우주로 뻗치면서 불나방처럼 타서 없어진다. 후루룩. 중독이다.


모든 게 위선이다.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남들도 좋아했으면 하는 마음. 본능이지만 오만이고 자만이다. 영화는 왜 시작해서 현장에 몸을 맡기고 보이는 것만 좇게 되었을까. 현장 사진, 현장 이야기. 당장 보이는 것들에 취해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한 지는 꽤 되었다. SNS에서는 ‘너 대단하다’라는 말을 자위삼아 외면하고 있는 나 자신을 지워버린다.


감정 없이 의무만 남은 관계. ‘나처럼 하는 인간도 드물어’라며 끊임없이 합리화하고, 남을 헐뜯는 제스처, ‘할 때까지는 해보겠어’라며 포기조차 용기 부족이라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대박을 향하여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의무만 남은 관계.


며칠간 외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의 기운이 끝나가고 여명이 틀 무렵. 눈을 감고 부유하는 이미지를 쓸어본다. 이미지에 속지 말자. 철저히 눈꺼풀 안의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한다. 뭐가 보이는가. 창밖에서 뚫고 들어오는 도심속 불빛이 눈꺼풀 안으로 흩어진다. 칠흑같은 어둠이 아니다. 너무나 밝다.


망상에 젖어 들고, 잠에 젖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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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상상 속의 인물을 화자로 하여 써내려간 짧은 이야기입니다.

*2부, 권태롭다. 로 이어집니다.

 

 

[민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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