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켜야 하는 것과 열어둬도 좋은 것 - 2022 서울오페라페스티벌 '사랑의 묘약'

글 입력 2022.11.1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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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사랑의 묘약>이 내세운 타이틀은 ‘가족 오페라’다. 다른 극과는 달리 가족이 함께 볼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가족 장르의 특징은 전 세대가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세대에도 불쾌감을 자아내지 않고, 폭력적이거나 불건전하지도 않으며,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작품. 우리는 그런 것을 두고 ‘가족이 함께 보기 좋다’고 한다.

 

<사랑과 묘약>은 그런 면에서 적절한 작품이다. 다양한 문젯거리(주인공을 둘러싼 루머, 사랑의 방해자, 사기꾼 약장수 등)가 등장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상황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만들어준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가족이 다 같이 즐겁게 관람하기에 꼭 알맞다.


그런 점 때문인지 <사랑의 묘약>은 서울오페라페스티벌에서 자주 선보이는 극이다. 2021년에는 어린이 오페라로, 2019년에는 올해와 마찬가지로 가족 오페라로 무대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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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2021년, 2019년

(출처: 서울오페라페스티벌 홈페이지)

 

 

어린이 오페라로 선보인 2021년에는 <사랑의 묘약> 극 자체를 모두 한국어로 번역했다. 극의 주 관람객인 어린이들이 아직 자막을 읽지 못하거나, 글을 읽는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은 것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가사를 알기 쉽게 옮기며 전반적인 표현이 현대화되고, 그에 맞춰 의상과 무대도 함께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었다.


2019년은 우리가 생각하는 오페라의 전형 같은 모습이다. <사랑의 묘약>의 배경인 19세기 이탈리아를 표현할 수 있는 무대로 구성되었다. 같은 ‘가족 오페라’를 표방하는데도 올해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올해는 흰 바탕에 드로잉이 올라간 의상, 하트 조명과 계단을 이용해 시대가 불특정한 무대를 꾸린 것이 특징이다. 예술 총감독은 그대로인데, 연출가가 달라진 것이 그 원인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올해 <사랑의 묘약>의 연출을 맡은 이회수 연출가와의 다양한 인터뷰를 읽어보았다.


고전 오페라부터 창작 오페라까지 다양한 작품을 맡아온 이회수 연출가는 ‘오페라를 널리 알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를 많이 해왔다. 실제로 이번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을 비롯하여 한강 노들섬 야외 공연 등, 오페라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활동에 다수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오페라의 대중화’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


널리 알리는 것은 좋지만 대중화는 싫다는 말은 언뜻 역설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인터뷰에서 이회수 연출가는 이렇게 밝혔다.

 

 

¹하루는 친한 동료 (오페라) 가수가 내게 ‘마니아가 적은 장르의 예술일수록, 예술이 가진 순수성을 보존해줘야 한다’는 말을 해줬다. 그 말이 정말 와닿았다. 없는 걸 찾느라 있는 걸 잃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많은 이들이 ‘오페라의 대중화’를 외치지만, 나는 오페라의 대중화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대중화될 수 있겠는가. 오페라를 대중화하기 위해 탄생한 장르가 뮤지컬 아닌가. 클래시컬한 순수 예술로 남아있는 오페라의 대중화를 위해 억지로 애쓰기보단, 마니아층을 조금이라도 늘려갈 수 있도록 우리가 협업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정통 오페라가 가지는 고유의 색을 지니는 ‘입문 오페라’가 틀림없이 필요하다. 소극장 오페라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오페라 장르로의 입문을 돕고, 이를 통해 재미를 느낀 관객들이 그다음 단계의 조금 더 규모 있는 오페라를 찾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대극장까지 오게 된다면 한 분의 마니아가 늘어나는 게 아니겠는가.



  

²저는 ‘오페라의 대중화’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오페라의 정체성을 훼손해 가면서까지 하는 시도에는 반대합니다. (과거에는 대중이 즐겼지만) 지금은 순수예술로 남은 오페라는 대중화될 수 없는 만큼 마니아층을 늘려가야 합니다. 저는 노들섬의 야외 오페라 〈마술피리〉 같은 작품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이 오페라에 입문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오페라에 더욱 흥미를 느끼길 바라는데요. 이들 중 누군가는 마니아가 되길 바랍니다.



정체성을 훼손해 가면서까지 대중화할 필요는 없다. 다만, 마니아를 늘리겠다. 이는 정체성을 지키는 테두리 안에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보면 <사랑의 묘약>을 통해 이회수 연출가가 지키고 싶은 정체성은 무엇이고, 열어둘 수 있는 다양성은 무엇인지를 읽을 수 있다.


그는 2020년 아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³“클래식과 오페라는 자세히 보아야 아름다운 장르입니다. 고전은 처음엔 딱딱해서 어렵게 느껴지지만 태초부터 지금까지의 인문이 그대로 담겨있어요. 오페라 역시 인생을 담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번 서울국제오페라페스티벌을 통해 선보인 <사랑의 묘약>은 해당 극이 가진 고전적인 음악과 아름다움은 지키되, 딱딱한 부분은 부드럽게 풀어 가족을 이룬 세대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재해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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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미래의 오페라 마니아가 될 수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도 하다.

 

이회수 연출가는 꾸준히 ⁴“한국 오페라가 전성기를 맞으려면 어린 시절부터 작품을 접하거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공연 하나하나의 흥행도 좋지만, 그보다는 먼 미래에 오페라를 즐길 수 있는 인구를 늘리는 큰 그림을 그리겠다는 뜻이다.


이런 시도들이 켜켜이 쌓인다면, 미래에는 오페라를 향유하는 ‘거대한 마니아 집단’이 형성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번 서울국제오페라페스티벌을 비롯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오페라의 저변이 확장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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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이은영・진보연, ⌜[Culture Interview] 이회수 연출가 “오페라의 ‘대중성’ 보다 필요한 건 ‘다양성’”⌟, 서울문화투데이, 2021.05.18

²장지영, ⌜‘열린 공간’의 오페라 공연이 주는 편안함⌟, 문화+서울, 2022년 9월호

³민병무, ⌜"왜 이렇게 에너지가 없어요" 이회수 연출가 한마디에 시들했던 '까마귀'도 펄쩍⌟, 아이뉴스24, 2020.01.30

⁴고승희, ⌜‘발연기·불친절한 장르’ 편견…오페라는 왜 뮤지컬만큼 인기가 없을까⌟, 헤럴드경제, 2021.04.07

 

 

[김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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