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 소중한 것들을 열렬히 사랑하면서

글 입력 2022.11.0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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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이 없는 삶이라도, 소중한 것들을 열렬히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우연히 과거에 아트인사이트에 기재된 그녀의 인터뷰를 먼저 접했다. 꾸밈없이 진솔한 목소리와 자아의 해상도가 선명하게 느껴지는 답변들 때문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푹 빠져 이끌리듯 단숨에 인터뷰를 읽어 내려간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더욱 궁금해져 프리랜서 에디터로 활동 중인 그녀의 글들을 몇 개 더 찾아 읽었다. 듣는 사람이자 말하는 사람. 반짝이는 단어들을 오래 품고 골몰하는 사람. 서늘한 시선을 가진 것 같으면서도 그 끝엔 사람에 대한 다정함이 있는 사람. 필자가 느낀 김해서 작가의 이미지는 그랬다.


뮤직&라이프스타일 매거진 [BGM]을 비롯 [it matters] [하이드어웨이 클럽] 등에서 인터뷰와 취재를 하며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는 동시에, 뮤지션 '스탠딩에그' 콘텐츠 팀의 일원이기도 한 김해서 작가는 시인을 꿈꾸며 시를 습작하는 지망생이기도 하다. 오래 전 인터뷰를 읽고 난 뒤의 내적 친밀감과 궁금함이 뒤섞인 마음으로 산문집을 펼쳤다.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_표1.jpg

 

 

책은 총 세 가지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첫 번째 파트 <시와 슬픔 사이>는 작가의 인생에서 시가 쓰이게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두 번째 파트 <슬픔과 나 사이>에서는 작가가 천착하는 감정인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지막 파트 <나와 당신 사이>에서는 주어를 자기 자신에서 타인으로 확장하여 ‘나’를 둘러싼 관계들을 담는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는, 역시 독자인 내가 있었다.

 

 

 

반짝이는 단어들을 수집하는 사람



 

나는 사람이기보다는 까마귀 같습니다. 휙 성의 없이 날아가면서도 빛나는 것을 캐치할 수 있죠. 그리고 빛나는 것에 대한 욕심이 심합니다. 어떻게든 주워서 집구석에 차곡차곡 모아둡니다. 예쁜 쓰레기 산을 만드는 것이죠. 제 목표는 그 예쁜 쓰레기가 '물건'이 아니라 문장이나 단어'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삶이 그것들로 숨이 막혔으면 좋겠어요. 발에 차이고, 먼지가 쌓이고, 재미없는 걸레질처럼 여겨질 만큼요. 그래야 내가 그것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시를 쓰는 사람의 산문을 좋아한다. ‘미문(美文)’,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운 단어들은 때로 나를 할퀴기도 하지만 햇빛을 받으면 반짝이기에, 그것들이 나를 훑고 지나갈 때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충만함을 느낀다. 적확한 문장들이 지닌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녀는 예쁘고 빛나는 잡동사니로 집을 지은 듯 보였다. 책을 읽다보면 평소에는 들여다보지 않던 단어들이 가슴에 남는다. 그리고 그 단어들은 미묘하게 모종의 연관성이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애원하다, 골몰하다, 골똘하다, 연루되다, 푸르다, 들썩이다, 술렁이다, 소각되다... 쓰는 사람이 가진 특유의 섬세하고 정교함이 느껴진다.

 

그런 것들이 발에 채이는 집에서 사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언어를 운용하는 방식에서 그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줄은 너무 밭아, 그냥 줄을 길게 늘여보는 거야


 

  
그냥 줄을 길게 늘여보는 거다. 마음 어딘가에 꼬여 있는 실타래의 긑을 잡아 당기다 보면 훌훌 풀어진다. 시든 산문이든, 난데없이 첫 문장 띄워 올리는 걸 잘하는 사람. ‘쓰는 감각’에 충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매일 그 시작을 응원한다는 명목으로 나에게 말을 건다. 훌훌 문장 안에서 내려앉고 날기를 반복하는 나비가 된다.
 

 

“나는 잘 살고 싶을 때 산문을 쓴다. 나를 한번 믿어보고 싶을 때.”


저자가 산문을 쓰는 이유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 같아서 공감하며 읽은 대목이다. 시를 쓰던 저자는 특정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산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지면 위에 자신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된다. ‘쓰는 감각’에 몰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자유롭다.


근래 몇 개월간 글을 쓰지 않다가 최근 다시 펜을 붙잡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가 인용한 존 버거의 책 속 구절처럼, 넋두리 비슷한 것들을 길게 늘어놓다보면 미끄러지는 펜촉을 타고 자아가 해방되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면 어쩐지, 더욱 잘 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여전히 ‘시 지망생’으로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면서도 세상에 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시를 흠모하여 시로 다져진 내 감각이 무엇으로든 세상에 쓰일 수 있음을, 그것으로도 이 한 몸을 지탱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들어가는 녀석에게.


무언가를 너무나도 사랑하게 되면, 그만큼 기대하게 되고 실망도 커지는 법이다. 등단에 계속해서 실패한 저자는 슬픔과 무력과 희망의 다리를 건너, 자신이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는 나를 갈망’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받으려 하지 않고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사랑. 답장을 바라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그저 좋아하기로 한다. 시집을 낸다고 할지라도, 그저 계속 ‘지망인’으로 남으며, 시와 그 다음 시 사이에서 기다리는 지망인을 꿈꾼다.


무릎을 탁 쳤다. 무언가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사랑했던 어느 날, 사랑과 실망이 동의어인가를 의심하곤 했었다. 그러나 그것을 오래 사랑하고 지속하는 힘은 그저 눈앞의 다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다음 뒤에 또 다음이 있기만을 바라는 것. 더 이상의 꿈을 꾸지 않는 포기와는 다른 의미다. 그저 지속되는 꿈속의 한 복판을 거니는 것이다.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를 읽으며,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는 것에는 어떠한 이유도 필요 없다는 다시금 깨달았다. 근래 개인적으로 파격적인 변화들을 겪으면서, ‘좋아하던 것들을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내 안에 증식하는 실용주의자의 질문에 작아지는 스스로에게 절망했었다. 그런 순간에 그녀의 산문집을 마주한 건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 무용한 것은 대개 아름다우며 우리는 단순히 그 ‘좋아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되짚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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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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