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부딪히며 성장하는 우리 모두들 - 옥상 위 카우보이

글 입력 2022.10.13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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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공간 혜화에서 진행된 연극 <옥상 위 카우보이>는 껄끄러운 상황을 직면하면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아이들과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시작부터 강렬했다. 단상에는 욕설이 잔뜩 쓰여있고, 두 학생 윤아와 주리가 신경전을 벌이다, 초반부터 치고받고 죽기 일보 직전으로 싸우기 때문이다. 윤아의 엄마와 주리의 아빠 사이의 불륜과 임신이 싸움의 발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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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위 카우보이>에서 공간을 흥미롭게 설정하고 있다. 극 중 비상구가 세 군데에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출입문 덕분에 각기 다른 층위에 놓인 인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볼 수 있다.

 

비상구를 가장 많이 넘나드는 인물은 주리의 아빠다. 주리의 아빠는 언제나 회피하기 바쁘다. 아내 현주의 전화도 받지 않고, 여자친구 숙희가 조산 중에도 병원을 가지 않는다. 부재중 전화를 남겨놓고, 주리를 봐도 모른 척 피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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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주리 아빠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들은 맞선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서로의 관계를 정면에서 부딪힌다. 적대관계에서 충돌하던 이들은 묘하게 서로를 닮아간다. 개인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라면'과 '밥(죽)'을 통해 드러난다는 점이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였다.


주리는 엄마가 정성껏 차려주는 밥이 지겨워서 라면을 종종 먹는다. 엄마는 주리를 위해 일삼은 희생을 들먹이며, 은연중에 주리에게 해 놓은 밥을 먹을 것을 강요한다. 결국 밥이 지겹다고 말하는 주리의 말에 엄마는 상처를 입고, 주리는 죄책감을 느낀다.

 

주리에게 있어 엄마의 사랑은 어딘가 갑갑한 족쇄 같다. 반면 윤아는 라면 대신 밥을 간절하게 원한다. 임신까지 해버린 엄마는 윤아에게 밥을 만들어줄 시간도 힘도 없다. 스스로도 밥을 준비하기 귀찮아서 라면이나 샌드위치로 끼니를 떼우곤 한다.

 

주리는 자극적인 라면이 그저 먹고 싶을 뿐이고, 라면이 지겨운 윤아는 밥을 먹고 싶어한다. 주리에겐 엄마의 돌봄이 과하고, 윤하에겐 엄마의 돌봄이 필요하다. 서로 잡아먹지못해 안달이던 주리와 윤하는 서로 다르지만, 그 다른 부분을 서로 채워주는 듯하다.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윤아의 엄마 숙희는 묻는 말에 대답할 때가 더 많은 여성이다. 반면에 주리의 엄마 현주는 묻지도 않은 말을 하는 여성이다. 주리와 윤하만큼이나 서로 다른 성격을 갖고 있는 캐릭터다.

 

숙희는 죄책감을 갖지 않고 당당하게 현주를 대한다. 어차피 자신을 미워할 거면서 위선을 떨지 말라고 전복죽을 엎어버린다. 현주는 숙희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전복죽을 손으로 주워 담고, 묵묵히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귀찮아서 평소처럼 라면을 끓여먹으려던 숙희는 윤아가 끓여주는 죽을 말없이 먹는다. 평소 라면은 건강하지 않다고 여기던 현주는 티비를 보면서 생라면에 수프까지 털어서 과자 대신 먹는다. 불편했던 만남 이후에 묘하게 상대의 식습관을 닮아가는 모습에서, 서로 이해하면서 성장함을 보여준다.

 

*

 

싸움은 곧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며, 맞서기에 성장할 수 있다. 처음에 아이들은 무작정 문제가 발생하는 공간을 피하고자 옥상에 갔지만, 실질적 해결책을 얻지는 못한다. 결국 옥상에서 서로를 만난 주리와 윤아는 다소 거친 방식으로 문제를 직면하게 시작한다. 하지만 어느새, 두 사람에게 옥상은 우정을 통해 서로를 보완하는 공간이 된다.

 

집을 떠나 옥상 위를 찾는 아이들은 멀리서 보면 거침없는 무법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옥상 위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보듬어주며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성장함을 확인할 수 있다. 소를 지키며 기르는 카우보이라는 직업의 본질처럼 말이다.

 

 

[박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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