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오늘부터 달리기

나, 마라톤 1주차
글 입력 2022.10.08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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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토록 아무것도 하기 싫을 수가. 정말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더욱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건 일 년에 몇 번씩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일종의 무기력을 빙자한 게으름이다.

 

삶에 재미라는 게 뭘까. 이 타이밍에 과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밤낮을 모르고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야 할까? 하루라는 긴 시간 동안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까(솔직히 말해 무슨 공부를 해야 하는지, 도대체 공부라는 걸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이제는 전혀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방황하는 긴 시간 동안 미래의 계획을 생각하기 위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는 다른 이들처럼 나 역시도 배낭 메고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도 찾아 나서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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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반절이 후회의 연속성이다. 잔뜩 뒤돌아 보며 살고 있다. 심지어는 그냥 길을 걸을 때조차도 앞을 보면서 걷는다기보다는 옆을 보면서 걷는다든지 혹은 보고 지나온 것들을 다시 보기 위해 뒤돌아 보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는 무엇을 후회하는가. 과거의 어느 시점을 돌이켜 보면 지금은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 예를 들어 교환학생에 관한 정보라든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라든가, 취미 생활의 중요성이라든가, 혹은 졸업 후 진로 계획의 중요성 같은 인생에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결국 인생을 바꿔 버릴 수 있는 여러 가지에 대한 후회가 가장 크다.

 

물론 아직까지도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지만 결국엔 지나가고 있는 지금 이 시간까지도 미래의 내가 후회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이 자체가 나를 괴롭히는 주범이다.

 

하루를 알차게 보냈는가? 이동진 평론가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인생은 되는 대로. “인생은 되는 대로”라는 부분은 누구보다 성실히 해 나가고 있지만 도저히 “하루하루를 성실하게”라는 부분은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답답하고 막막한 이 동굴을 도대체 어떻게 빠져나가야 한단 말인가.

 

여행을 훌쩍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외로 유학을 가는 경우도 있고, 청춘을 헛되이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 머나먼 타지로 일을 하러 가는 이들도 있다(꼭 워킹 홀리데이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사실 결정이라는 건 참 쉽다. 따로 계약서를 쓰고 이행해야 하는 부분도 아닐뿐더러,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결정을 내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그만큼 번복하는 일도 쉽다는 것이다. 제일 지키기 힘든 약속은 역시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다. 나는 어제도, 그제도, 엊그제도 나와의 약속을 저버렸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공부를 해야지.”, “오늘은 꼭 계획한 걸 다 해내야지.”, “해야 하는 걸 끝내기 전까지는 절대 잠들지 않아야지.”

 

어느 하나 제대로 지킨 것이 없다. 이런 사소한 약속들을 지키지 못할수록 나는 베란다 난간에 걸어 놓은 솜이불 마냥 천천히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린다. 푹신푹신한 솜 이불이야 20층 높이의 아파트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고 별일이야 있겠냐마는 중요한 건 나는 솜이불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상태가 계속 된다면 나는 곧 추락하리라는 사실을 나 자신도 안다.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무기력이라는 걸 뭐랄까. 그냥 전부 이런 식이다.

 

“모르겠다. 그냥 될 대로 되라지.”

 

*

 

가을이 왔다. 바람이 차가워졌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집 안에 있는 모든 창문을 꼭 닫는 버릇이 생겼다. 해는 또 어찌나 일찍 저무는지, 하루가 너무 짧아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니 눈 한 번 감았다 뜨기가 무서워진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겁은 더 많아져 간다. 나, 언제부터 이렇게 겁쟁이가 되어 버린 거야. 옛날엔 혼자서라도 해외로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이제는 동네를 벗어나는 것조차 힘이 부친다.

 

안되겠다! 이제라도 몸을 일으켜 움직여야지! 그렇게 생각하면 어느새 해는 다 저물어 버리고 만다. 저녁 8시에 엉거주춤 엉덩이를 쳐들고 일어나 괜히 식탁을 어슬렁 어슬렁거린다. 그러다 먹을 것이라도 발견하면 입에 넣어버리기 일쑤다.

 

정말 안되겠어. 나가서 운동이라도 해야지. 걷기라도 하는 거야. 오늘부터 30분씩이라도 걸어보려 한다. 가능하면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한 권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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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인 ‘다카기 나오코’의 마라톤 이야기를 담은 <마라톤 1년 차>을 집어 들고 자리로 와 슬슬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열 장쯤 읽었을까? 앗, 이야기 전개가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일본 책 방식에 따라 책을 오른쪽으로 넘기는 게 아니라 왼쪽으로 넘겨가며 읽어야 했다.

 

만화책이어서 그럴까. 책은 술술 읽혔다. 우연히 마라톤을 시작하게 된 다카기 나오코 작가의 마라톤 일지였다. 친구, 편집자와 함께 마라톤을 시작한 초보 마라토너 시절부터 국외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하와이 호놀룰루까지 떠나는 이야기까지 1권에 담겨 있었다. 일본 이곳저곳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며 여행을 다니고, 마라톤 연습이나 경기가 끝난 후에는 동료들과 함께 수고했어 맥주를 마시는 이야기에 어쩐지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마라톤…이거 재밌겠는걸?

 

<마라톤 2년 차>까지 순식간에 끝내 버리고 나니 달리고 싶은 열정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순간 아는 동생이 11월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고 얘기했던 게 생각났다. 좋아, 같이 달려보는 거야. 바로 연락을 해봤지만 안타깝게도 일정이 맞지 않아 해당 대회는 함께 할 수 없었다. 대신 다른 마라톤 대회에 같이 참가하기로 했다.

 

FAO 한국협회에서 주관하는 ‘2022 세계 식량의 날 기념 제로헝거런(Zero Hunger Run) 챌린지’에 참가 신청을 마치고 남은 약 2주간의 시간동안 열심히 연습하기로 서로 약속했다. 참가신청을 늦게 해 아쉽게도 레이스팩은 받지 못하겠지만(부끄럽지만 상 중에서도 참가상을 제일 좋아한다) 앞으로 있을 마라톤 대회의 시작이라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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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리는 마라톤 참가를 기약하며>

 

 

“작가는 군살이 붙으면 끝장이다”라고 말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달리기에 심히 열정적이었다. 달리기에 관함 책을 내기도 했으며, 그가 쓴 자전 에세이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달리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그의 말대로 한번 달리기라는 것을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며 안되는 일’로 만들어 보려고 한다.

 

나름대로 큰 꿈을 꾸고 있다. 예를 들면, 매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같은 야망을 품고 있다.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이걸 이루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아무래도 ‘오늘부터 달리기’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적어도 한 걸음이라도 내디뎌 보기. 어쨌거나 저 쨌거나 뛰는 흉내라도 내보기. 내 인생의 재미는 내 인생에서 찾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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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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