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라는 인간을 정의한다는 것

어느새 나는 매우매우 좁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글 입력 2022.09.30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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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해하고 설명하고 표현하기


 

요즘 MBTI 또는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물음들, 간단한 검사 등이 유행하고 있다. 나를, 그리고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쉽고 명확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나 또한 내 MBTI의 특징들 몇십 가지를 하나하나 읽어봤을 만큼 '나에 대한 설명'에 빠져 있었다. 대학에 오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나를 소개해야 하는 기회가 더 많아진 탓도 있겠다.

 

같은 지역, 같은 환경 속에서 내 모든 것들을 알았던 학창 시절 친구들과는 달리, 내가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은 내 이름과 나이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설명해야만 했다. 내 옆의 누군가가 나를 몇십 년 동안 봐오며 느꼈을 것들을, 새로운 사람에게는 그 긴긴 시간들을 언어로 압축해 표현해야 한다.

 

나는 나를 나름 잘 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나는 내가 나 자신을 잘 안다는 사실에 심취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냉정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심취해 있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깊은 생각을 하고 일기를 쓰며 나와 일종의 대화를 하는 행위는 그리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는다 생각했고, 이를 나의 특징이자 장점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를 자꾸만 정의하려 했다. 사람들은 뭐든지 간략하고 확실하게 설명하고 싶어한다. 무언가에 계속 수식어를 붙이고, 혈액형과 MBTI처럼 한 인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수단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그게 쉽고 편하니까. 복잡한 한 인간을 설명한다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니까.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는데, 하물며 태어나서 처음 본 타인을 길고 긴 언어로 설명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틀에 '나'를 집어넣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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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나에 대해 수많은 설명들을 만들어 냈다.

 

나를 이해하고 정의하려 노력하는 건 좋은 일이다, 그만큼 나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는 의미니까. 그러나 '내가 정의한 나'의 틀에 갇히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여기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주의해야 한다.

 

뭐든지 절대적인 게 되어버리면 생각의 굳어짐을 유발하게 된다. 어느새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것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정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언젠가부터 그 정의에 나를 집어넣게 된 것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이것도 잘 안 맞겠지.' '난 이걸 싫어하니까, 이것도 싫어할 거야.' 어느새 나는 매우매우 좁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내 틀을 만들고 나니, 사유도 좁아지고 쉽게 도전하기도 힘들어졌다. 내가 스스로 내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는 mbti I의 수치가 매우 높고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이야.' 이 생각에 사로잡히다 보니, 내가 낯을 가린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전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어졌다. 가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쉽게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럴 때는 이럴 수 있다는 생각보다 '나는 원래 낯가리는 사람인데 오늘은 좀 이상하네.'라고 생각했다.

 

 

 

매 순간 '적정한 나'만 존재할 뿐이다


  

며칠 전 친구가 한 글귀를 보내주며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다. 함께 속초 여행을 갔을 때 들렀던 문우당 서림에서 받았던 스티커의 글귀였다.

 

"내가 지향하는 것은 '원래'의 내가 아닌, '적정'한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것."

 

내가 요즘 하고 있던 생각과 너무나도 비슷해서 놀랐다. 그렇다, '원래'의 나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나'니까 하면 안되고, 또 해야할 것도 더이상 없다. 그냥 매 순간 적정한 나만이 있을 뿐이다.

 

끊임없는 상황과 선택들을 마주하게 되는 '나'는 정해져 있는 존재가 아니다.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라는 틀에서 벗어나 그저 그때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 원하는 것을 하면 된다.

 

 

[최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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