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원더풀 라이프'로 감상하는 영화 속 추억 이야기

글 입력 2022.09.0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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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기억을 기억한다면

당신의 유종의 미는 원더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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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기 전 잠시 들릴 수 있는 중간역 ‘림보’가 있다.


림보의 직원들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기억 하나를 말하라고 한다. 최대한 그들의 추억을 비슷하게 복구해 짧은 영화를 만들어 준 뒤, 그들의 죽음에 마지막 선물로 남겨준다.


과거로 돌아가 영원히 붙잡아두고 싶은 그 시절, 우리에게도 있을까?


 

 

영화 속 주인공의 대화 장면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추억을 딱 하나만 선택해 주세요

다만 제한 시간이 있습니다

사흘 내에 선택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선택한 추억은 저희 직원들이 최선을 다해 영상으로 재현합니다

토요일에는 그 영상을 시사실에서 관람합니다

그 추억이 여러분께 선명히 되살아난 순간

그 추억만을 가슴에 안고 저세상으로 가게 됩니다

 

 

   

원더풀 라이프에 대한 에디터의 견해


 

1년 전 2021년, 대학교 기숙사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휴학계를 내고 짧은 내일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서로 저장해뒀던 버킷리스트가 같았다. 도심을 탈피해 적막한 외지에서 스님과 함께 108배라는 경험 쌓기. 요새 젊은이들에게 또 하나의 추억 쌓기로 유행을 이끄는 ‘템플스테이’가 우리의 버킷리스트였던 것이다.

 

새벽 4시. 우리는 이 시간에 기필코 일어나야 스님들 옆자리에 자리 잡고 함께 절을 할 수 있었다. 핸드폰으로 플래시 하나 킨 채 어둠 속을 헤쳐 스님들 옆자리에 슬쩍 방석을 두고 자리를 잡았다. 처음 겪어본 예불 체험에 으쓱해하며, 이제 슬슬 들어가서 잠을 다시 청해볼까 하던 참에 인상이 푸근하신 스님이 우리를 불렀다.

 

“어이구 학생들이 새벽에 일어나서 예불을 다 참석해 줘서 고마워요. 커피 한 잔 내어줄게요.”

 

지금 잠이 문젠가. 한국이라는 땅에 발을 내딛고 있는 사실만 공통점이지 나와 전혀 다른 궤도에서 숨 쉬고 계시는 분과의 대화는 언제나 설레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굉장히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내심 발랄하게 “감사합니다” 하고 스님 앞에 공손히 앉았다.

 

어렵지도, 무겁지도 않게 대화를 유도했던 스님이 마지막에 딱 한마디해 주셨다. “기억을 기억하지 말아요.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가슴이 요동쳤다. 미치도록 설렜다. 기억을 기억하지 말라는 이 문장의 조합은 난생처음 들어봤고 어쩌면 추억과 기억, 과거에 심하게 매몰되어 있는 내게 로또만큼의 값어치 있는 설교였다.

 

내 인생을 마침내 결정하는 건 거대한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매일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전제조건은 이 매일매일의 기억을 다음날까지 챙겨오지 않아야 했다. 기억이 쌓이면 과거의 다시 오지 못할 그리움과 허전함으로 머리가 무거워질게 뻔했기 때문에 세례명까지 있는 천주교인은 잠시 스님의 언어를 내 인생에 대입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사고의 유연함은 때론 필요한 기로 아니겠는가.

 

여행도 삶에 큰 가르침을 주지만, 내게 영화는 여행보다 더 큰 울림과 사고를 단단하게 만드는 지침서다. 비가 추적추적을 넘어 너무 오버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날씨에 <원더풀 라이프>가 갑자기 생각났다. 일주일에 한 편식 영화를 정복하고 있는데 요 근래 도무지 인생 영화의 리스트가 바뀌지 않아서 이동진 평론가가 인생 영화로 손꼽았다고 했던 이 영화가 궁금해졌다.

 

천국으로 가기 전 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주일간 머무를 수 있는 림보라는 중간역이 있다. 림보를 운영하는 면접관들은 매주 월요일마다 찾아오는 죽은 사람들에게 살아온 생애 중 가장 행복했던 한순간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면접관들은 그들이 선택한 기억을 영상에 담아 1주일 뒤 영원한 시간 속으로 사라질 때 마음속에 간직하고 떠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만일 하나의 추억을 선택하지 못한 자는 계속해서 림보에 머물 수밖에 없다.

 

헉. 인생의 행복했던 순간을 선택하라니. 기억을 기억하지 말고 살자고 마음 정했던 사람에겐 너무 가혹한 면접 아닐까. 허나 영화에서 면접을 보러 온 수많은 주인공들은 이렇게 면접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디즈니랜드를 갔었을 때요, 사랑하는 사람과 첫 관계를 맺었을 때요." 등.


다양한 연령층들이 풀어놓는 행복한 일을 읊는 장면 중 내 시선을 멈춘 대사는 “선택할 마음 없어요. 전혀 없고요.”였다. 나는 21살 남자아이가 답한 이런 류의 부정적인 뉘앙스처럼 답하진 않을 테지만 “4일 안에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답변을 할 게 예상 갔다.

 

아마 책상에 공책을 하나 펴두고 행복했던 일에 대해 한 문장을 쓰기 시작하면 막힘없이 내려갈 것이다. 내 입버릇은 “와 인생이 진짜 별 탈 없이 소소하게 잘 흘러가는 것 같아”를 달고 사는 애 중 한 명이니까.

 

그런데 그 한 줄의 기억을 기억하지 않겠다는 청춘의 다짐이 죽음의 앞에서 너무 많은 고민의 시간으로 할애된다면 다른 의미로 스스로에게 충격으로 다가올 것 같았다. 누구보다 유종의 미를 늘 염두에 두는 사람으로서 누군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추억 하나만 말해주세요”라고 물을 때 곧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삶이 인생 다운 인생을 잘 살다 간 장본인이지 아닐까 싶었다.

 

림보의 직원들이 하루가 아닌, 단 하나의 행복했던 순간을 답하는 데 있어 4일의 기간을 준비했다. 기억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에겐 너무 많은 행복의 목록에서 고르는데 어려울 것이고, 나처럼 오늘의 삶에만 의미를 부여하면 여태까지의 기억을 되짚느라 답하기 곤란할 것이다.

 

림보의 역에서 행복했던 기억을 답하지 못하면 영원히 삶의 역과 죽음의 역 그 가운데 껴서 어디로든 향하지 못하게 된다. 추억을 말해야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면 어떤 행복한 추억을 회상해야 잘 죽었다고 만족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

 

죽음은 순번이 없다. 누구나 알다시피 늦게 태어났다고 늦게 죽는 것도 아니다. 삶이 준비된 그 순간부터 인간은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으며 실제로 림보라는 역을 한 번 거치게 될 수도 있다. 

 

<원더풀 라이프>를 보니 사후세계에 입장하기 전 두려워하는 상상력을 접어놔도 될 것 같다. 죽으러 가는 길에 설마 한국인이 제일 싫어하는 수학 문제처럼 당황스러운 출제지를 설마 펼쳐둘까. 아닐 것이다. 그냥 삶을 통틀어 단순한 질문이지만 대단히도 본질적인 단 한 가지의 질문에 4일 이내에 답할 수 있는 답변 하나면 죽음에 아무 걱정 없이 들어갈 수 있도록 자리 한 켠 내어줄 것 같다.

 

스님의 영향력이 확실히 강해 한결 가벼운 머리로 삶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기억을 기억하지 말자는 내 가치관에 변동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1년을 주기로 한 번씩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언제예요?”라고 질문을 던진 후 그에 맞는 답변을 다이어리에 적어둬야겠다. 그러면 기억을 기억하지 말자는 가치관도 지키면서 행복했던 기억을 4일 안에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추억에 대한 또 다른 영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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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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