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클리셰, 80년대 시대극, 배우의 재발견 - 헌트 [영화]

글 입력 2022.08.2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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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일시정지 됐던 일상이 다시 재생된 후 시간이 꽤 흘렀다. 코로나19가 종식된 것은 아니라서 완전한 일상 회복은 아니지만, 제한이 많이 없어진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재확산이 이어지고 있어서 경계심을 유지한 채 일상회복에 적응하는 분위기다.


이 분위기는 문화생활에서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데, 그중 변화가 큰 것은 아무래도 영화가 아닐까 싶다. 고요했던 극장은 관객들의 발길로 가득 차고, 뜸했던 국내 영화의 소식이 잦아졌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영화 고르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는 요즘이다.


이번에 고른 영화는 ‘헌트’였다.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호기심이었다. 톱배우 이정재가 감독으로 변신하여 연출한 첫 작품이며, 시나리오 각색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여기에 절친인 배우 정우성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하고, 1983년대의 시대극으로 (허구이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해서 더욱 궁금했다.


하지만 작품성과 재미에 대한 의심도 있었다. 배우가 감독인 영화 그리고 첫 작품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해외에서는 배우가 감독인 재밌고, 작품성 있는 영화가 많지만, 국내에서는 흔하지 않은데다 첫 작품이라니 아무래도 반신반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액션영화답게 처음부터 쫄깃한 액션신으로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끌어모았다. 중심이 튼튼한 스토리와 신인답지 않은 연출에 의심은 사라지고 재밌게 보는 데에만 집중했다.

 

다만, 잘 놀라고 고문하는 신을 보기 어려워하는 편이라 귀를 막거나 눈을 감을 때가 많아서 놓친 장면들이 많았다. 그러나 액션 또는 자극적인 요소가 없는 신에서도 긴장감이 팽팽해서 끝까지 몰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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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헌트' 포스터

 

 

영화 ‘헌트’는 제목처럼 암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요 소재는 암살과 아웅산테러사건으로 여기서 아웅산테러사건은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난 사건을 말한다.

 

1983년. 전 대통령 전두환은 서남아시아 및 대양주 6개국을 순방 중이었는데, 첫 번째 순방국이 버마였다. 북한군 소속인 테러범들은 미리 아웅산 묘소에 폭탄을 설치했고, 대통령이 도착했을 때 폭탄을 터트리는 계획을 세웠다. 계획대로 대통령이 도착하기로 한 시간에 폭탄이 터졌지만, 전 대통령 전두환이 늦게 도착하면서 대통령 암살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곳에 있었던 많은 사람이 참변을 당했다.


아웅산테러사건이 일어나기 전, 동림은 안기부에서 실체를 숨기고 남한의 정보를 북한에 빼돌리며 대통령 암살계획을 세웠다. 동림이 정보를 빼돌린다는 사실을 안기부에서 알게 된 후, 동림을 찾는 데 집중한다. 안기부 해외 팀장인 박평호와 안기부 국내 팀장인 김정도는 서로를 동림으로 의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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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헌트' 스틸컷

 

 

‘헌트’는 전체적으로는 박평호와 김정도가 서로를 동림으로 의심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줬다. 이에 관객도 자연스럽게 동림이 누구일지 추리하게 된다. 캐릭터를 따라서 끝까지 의심과 경계심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보니 심장이 쫄깃해졌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 요소이다. 이 외에 여러 재미 요소들이 있었다.


먼저 소재 선택이었다. 앞서 소개한 대로 이 영화의 주요 소재는 암살과 아웅산테러사건이다. 사실 암살 이야기는 여러 영화에서 많이 나왔다. 80년대 시대극 또한 택시운전사, 변호인 등 이미 여러 영화에서 배경으로 삼았다. 그래서 신선한 이야기보다는 흔하고 뻔한 이야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동안 다뤄지지 않았던 아웅산테러사건을 소재로 선택함으로써 흔하고 뻔한 이야기는 새롭게 재탄생되었다. 영화적으로 기적 같은 상황이 없는 현실적인 스토리도 신선했다. 신인 감독의 첫 작품에 빠지지 않는 신선함이 영화 ‘헌트’에도 있었다.


두 번째는 80년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근현대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아웅산테러사건 뿐만 아니라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웅평 귀순, 장영자 사기 등 여러 사건을 극의 흐름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곳곳에 등장시켰다.

 

특히 마지막에 나온 테러사건신을 볼 때는 아웅산테러사건을 디테일하고 생동감 있게 그려낸 영화는 ‘헌트’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픽션이 아니므로 허구가 가미되어 있지만, 그 시대에 살았던 관객은 공감을, 근현대사를 좋아하는 관객은 반가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관객은 역사를 재밌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캐릭터다. 배우가 감독이라서 그런지 캐릭터를 섬세하게 표현했고, 캐릭터와 하나가 될 수 있는 배우를 선택했다. 특히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이 온전히 박평호와 김정도로 보일 만큼 배우와 캐릭터의 합이 매우 좋았다. 다른 작품에서 보기 어려운 두 배우의 투샷과 절친의 호흡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마지막으로 목표는 같지만, 뜻이 다른 박평호와 김정도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한편으로 착잡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스포방지를 위해 자세히 적을 수 없지만, 사건 현장에서 서로를 향한 마음이 드러난 신과 아웅산테러사건 후의 신들을 볼 때는 가슴 속에 온통 까만 잉크가 번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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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헌트' 스틸컷

 

 

배우 그리고 신인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완성도와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영화였다. 배우와 신인 감독의 장점이 작품과 잘 어우러진 영화였다. 80년대 시대를 다룬 다른 영화들처럼 이 영화도 묵직한 메시지와 여운을 관객에게 전한 영화였으며,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영화 ‘헌트’에서의 배우들은 그동안의 연기와 좀 다른 면을 보여줬다. 덕분에 배우들의 재발견을 할 수 있었다. 배우 이정재는 연기 외에 다른 재능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연기뿐 아니라 감독으로서의 재능도 갖춘 예술인이었다.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탄생시킬까? 기대된다.

 

 

[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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