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인생의 모든 이야기를 알게 된다면? [영화]

영화 <컨택트>, 목적론적 사고의 세계
글 입력 2022.08.2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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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택트>의 첫 장면은 바다 근처에 사는 루이즈 뱅크스(에이미 아담스) 집의 천장을 쓸어내려와 창문 밖으로 바다와 나무가 보인다. 막스 리히터의 The daylight of the nature이 흐른다. 루이즈의 목소리가 들린다.

 

 

“난 이날의 네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었어

기억이 참 이상하지

내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

이게 마지막이었지.        

이제 내겐 처음과 끝이 별 의미가 없어.

네 삶 너머에도 너의 이야기는 존재하니까

그들이 왔던 그날처럼”

 

- 영화 <컨택트>

 

 

그날, 알 수 없는 12개의 외계 비행 물체가 지구로 도착한다. 각국의 정부는 비행물체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외계인과 접촉을 시도한다. 언어학자 루이즈는 전문가로 발탁되어, 그들과 소통하며 왜 지구에 왔는지 이유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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헵타포드 언어, 시작과 끝이 없는 목적론적 사고


 

영화 <컨택트>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를 전제를 바탕으로 애벗과 코스텔로와 루이스의 의사소통 관계를 보여준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인과론적 사고가 일반적이다. 과거의 행동이 미래의 결과를 결정하고 순차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와 달리 헵타포드의 세계는 목적론적 사고다. 과거와 미래가 없고 현재만 유의미하게 존재한다. 단지 목적이 존재할 뿐이다.

 

영화에서 구현한 헵타포드 문자는 원형이다. 어디 부분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헵타포드의 생김새도 언어와 비슷하다. 어디가 코고 눈이고 입인지 알 수 없다. 겉으로 보면 문어가 서 있는 것 같다. 동그란 머리와 7개의 다리가 있다. 다리 끝에 4개의 촉수를 열어 먹물을 뿜어 원형의 문자를 쓴다.

 

영화 <컨택트>의 원작인 테드 창의 <내 인생의 이야기>는 헵터포드어를 ‘페르마의 원리’를 이용해 설명한다. “빛의 경로는 언제나 최소시간에 도달한다.” 광선이 최소한의 시간으로 가기 위해서는 최종 목적지를 알아야 한다. 이처럼 영화에서 구현한 헵타포드 언어는 그들이 어떤 말을 쓸지 문장을 처음부터 결정해야 문자를 한번에 쓸 수 있다. 반면, 인과론적 사고는 지금 내가 쓰는 글처럼 순서대로 한 글자씩 작성하면서 끝을 이상하게 바꿀 수 있다.

 

목적론적 사고는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한다.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헵타포드어를 배운다면 사주나 타로카드가 필요없다. 헵타포드는 한 명의 수행자로 행동할 뿐이다. 사고방식에 따르면 애벗은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지만 지구로 간다.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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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 선물의 비밀, 논제로섬 게임(non-zero-sume game)


 

왜 헵타포드가 12개 조각으로 나눠서 인간에게 그들의 언어를 선물했을까?

 

외계생명체가 지구로 와서 본인의 언어를 선물한 이유는 3000년 뒤 인류가 자기 종족을 도와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한 번에 언어를 다 주지 않는다. 12개 조각으로 나눠준다. 각국이 협업해야만 언어 전체를 완성할 수 있다.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이 아니라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논제로섬게임(non-zero-sume game)의 가능성을 열었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제로섬게임이다. 상대의 손실은 나의 이익이 된다. 영화 속에서 중국은 마작 장기를 통해 헵타포드와 대화했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다. 중국이 헵타포드를 먼저 공격하려고 한다. 중국은 관계를 제로섬게임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들이 소통한 방식은 공존과 화합을 중요성을 표현할 수 없는 도구였다. 반면, 역설적으로 헵타포드가 인간에게 선물한 방법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더 나은 세상을 살기 위해서 무엇이 더 나은지 생각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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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남은 질문 : 루이즈처럼 살 수 있을까?


 

만약 내 인생의 모든 이야기를 알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사실 난 처음 영화를 봤을 때, 루이즈의 선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딸이 자신보다 일찍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를 낳는다는 건 쉬운 선택이 아니다. 루이즈의 남편인 이안은 사실을 알고 루이즈를 떠난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이기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루이즈는 안다. 죽음은 인생의 끝(결과)이 아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죽음이다. 모든 인간은 우리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는 자주 영원히 살 것처럼 스스로 속인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현실은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무용해진다. ‘어차피 죽는데 뭐 어때,’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루이즈가 딸의 죽음을 아파하지만 버티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과정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빛이 목적을 향해 최소한 시간이 걸리는 방법을 찾는 것처럼, 우리는 어떻게 삶을 살지 결정할 수 있다. 목적을 향하는 발걸음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탄생과 죽음 사이의 과정을 끝없이 고민이 필요하다.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지금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 책 『네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나는 고민없이 진입한 시험을 실패하고 2년의 세월을 정리하기 위해 애썼다. 나는 확실한 실패자였다. 실패를 온전히 마주하기 힘들 때, 영화 <컨택트>를 다시 봤다. 영화 도입부부터 나는 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나는 영화의 끝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루이즈처럼 헵타포드 언어를 배워서 시험을 떨어지는 걸 알면 도전했을까?”

 

나는 솔직히 “NO”버튼을 누르고 싶지만 두 눈을 질끈 감고 “YES” 버튼을 누를 것이다.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영화 <컨택트>의 채경을 포스터로 구매했다. 나는 사는 게 두렵고 피하고 싶을 때 채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한다. 이렇게 나는 또 영화에게 빚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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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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