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에서 내가 사라진다면 [영화]

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글 입력 2022.08.18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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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같이 우편배달부 일을 하던 주인공은 뇌종양으로 인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어느날 그에게 자신과 똑같은 외관을 가진 존재가 나타나고, 그는 자신을 악마라고 소개한다. 악마는 이 세상의 것들 중 하나를 없애는 대신 주인공의 수명을 하루 연장해주겠다고 말한다. 악마는 첫째 날 전화를, 그 다음은 영화, 시계,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고양이를 없앤다.


'~를 없애는 대신 ~원을 준다. ~를 없애고 살 것인가?' 하는 류의 질문은 SNS를 살펴보면 그다지 드물지 않게 마주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평생 밀가루를 먹지 않고 살면 7억을 얻을 수 있다는 류의 이야기이다. 나 역시 그런 질문을 마주하면 속으로 이건 되겠다, 이건 좀 힘들겠다, 하고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이 영화 속 악마는 이와 비슷한 결의 발언을 한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악마는 주인공의 시계를 없애는 것만이 아닌 시계 자체를 이 세상에서 아예 없애버리고, 시계와 관련된 사람들과의 기억이나 관계까지도 지워버린다. 바로 이 점이 영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중심 주제이다.


악마가 첫 번째로 이 세상에서 없애기로 한 전화. 전화는 문자와 더불어 물리적으로 함께 있지 않은 사람들과의 연락을 용이하게 해주는 도구이다. 전화를 없앤다고 생각할 때, 망설일 사람이 있을까? 예전에야 집에 있는 전화 한 대만이 유일한 연락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문자나 메신저, SNS로도 연락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에게 전화는 한 사람과의 관계를 맺게 해준 소중한 존재이다. 자신의 집으로 잘못 걸려온 전화를 통해 전 애인을 알게 되고, 그와 깊은 인간 관계를 가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전화가 없어진 이후 곧 전 애인과의 관계는 없었던 것이 되어버린다. 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겪은 시간과 그 속의 추억들 모두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두 번째로 사라진 영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친구가 된 타츠야와의 소중한 기억들과 관계는 역시 영화가 사라지며 존재하지 않던 것이 되어 버렸다. 타츠야가 운영하는 DVD 대여점에서 대화를 나누곤 했지만 더이상 타츠야는 주인공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고, DVD 대여점은 아예 책방이 되어 버렸다.


세 번째로 사라진 시계와 마지막으로 사라질 뻔했던 고양이는 주인공과 그의 부모님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어쩌면 주인공이 더이상 이 세상에서 무언가가 사라지면 안 될 것 같음을 깨닫게 된 계기이다. 그의 아버지는 '갈매기 시계점'을 운영한다. 주인공이 기억하는 거의 모든 시간을 시계점의 책상에 앉아 시계를 고치고, 어머니가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있는 때에도 아버지는 묵묵하게 어머니를 위해 시계를 고치곤 했다. 그가 살아가는 기반이 바로 아버지의 시계점이었던 것이다.

 

또한 고양이는 가족의 사랑을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존재이다. 키우던 양상추(레타스)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비밀이라고 하며 새로운 고양이 양배추(캬베츠)를 데리고 온다. 고양이는 주인공의 가족을 하나로 모이게 하는 중심축이었고, 무뚝뚝해보이는 아버지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었다. 가족이 어디를 가든 고양이 역시 함께 있었으며, 고양이라는 존재가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감정을 생각하면 고양이의 사라짐은 곧 주인공 가족의 붕괴를 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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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마지막 날, 고양이와 관련한 자신의 추억을 회상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세상의 것을 하나씩 없애자고 제안한 악마는 바로 자신임을 깨닫는다. 동시에 그는 고양이를 없애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그는 어쩌면 전화와 영화, 시계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동안 자신의 모든 삶은 그 어떤 하나라도 없었다면 완성될 수 없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전화나 영화, 시계는 생각보다 나의 삶에 깊게 연결되어 있었고 그것들로 인해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 단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닌, 나의 삶을 구성해온 퍼즐 조각들이었다.

 

전화가 없다면 어릴 적 친구 집에 전화해서 "ㅇㅇ이 있나요?"하고 전화하던 그 추억도, 함께 놀던 친구와의 관계도 없을 수 있다. 나와 영화 취향이 비슷해서 별 연락을 안하고 지내다가도 영화가 개봉할 즈음 자연스럽게 만날 약속을 잡는 내 친구 A와도 이만큼 친밀한 관계를 쌓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숨을 쉬니까 깨닫지 못하는 산소의 존재처럼, 이 세상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조그마한 존재들은 사실 모두 우리에게 있어 소중한 것임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말했듯 우리가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아닌 고양이가 우리와 함께 있어주는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의 것들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모여 나의 삶을 구성한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전화와 영화, 시계가 사라진다면 내가 슬퍼하게 될 것처럼, 세상에서 내가 사라진다면 누군가는 울어주겠지. 주인공의 전애인이 물은 것처럼 분명 그러할 것이다. 나조차도 누군가의 삶의 일부를 지탱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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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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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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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자유롭고싶어
    • 참 좋아했던 영환데, 이렇게 섬세히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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