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장보다 회복이길 바라는 - 어떤 미소 [격주의 문학]

글 입력 2022.08.1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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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소설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어떤 미소』이다.

 

사강의 작품은 이전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슬픔이여 안녕』을 소개한 바 있다. 사강의 매력은 개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에 있다. 소설은 마땅히 인간의 감정을 그럴 듯하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 사강의 소설에는 조금 특이한 면이 있다. 사강의 소설을 읽어보면, 소설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정확히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는 알기 어렵고 모든 인물들이 사회적인 신분이나 배경이 아니라 인물 그 자체의 인간됨과 감정으로만 독자에게 드러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정치성이나 시대성은 모두 소멸하고 각각의 인물은 각자의 감각과 감정으로만 남게 된다. 모든 시대성을 지우고 자아의 감정만을 남겨놓는 사강 특유의 미학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정치적 폭력성의 시대를 경험한 독자들에게 있어서 큰 위로가 되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전개된 20세기 프랑스 낭만주의는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커다란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어떤 미소』의 주인공은 20살의 평범한 여대생이고, 이 학생은 남자친구의 삼촌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그러나 주인공의 도덕성이나 사회적 평판에 대한 어떠한 가치 판단도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 새롭고 위험한 관계에 돌입하며 주인공은 그 전에 느끼지 못한 새로운 감각과 감정을 느끼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사랑과 불안을 느끼게 된다. 사랑과 불안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 주인공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자신의 감각과 감정이다. 사회적, 윤리적 잣대는 독자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인간과 자아의 이야기만이 소설을 추동한다.


『어떤 미소』는 하나의 사랑이 시작하는 시점부터 끝나는 시점까지 모두 온전하게 담고 있는 러브스토리이다. 그러나 이 사랑은 조화롭지 못한 사랑이다. 스무 살 대학생인 도미니크와 30대 뤽이 이루고 있는, 각각 애인 베르트랑과 아내 프랑수아즈를 뒤로 한 사랑. 끝이 예견된 시간들 속에서 뤽은 냉소적이고 도미니크는 불안해한다. 그리고 관계를 끝으로 도미니크와 베르트랑은 이별을 하게 되고, 뤽은 프랑수아즈에게로 돌아간다. 이런 면에서 이들의 사랑은 애절하게 느껴지지도 않고, 응원을 하게 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사랑이 끝난 도미니크는 뤽을 만나기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 사랑 이후에 남겨지는 것. 무엇이 도미니크에게 남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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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사는 스무 살 법대생 도미니크는 자신의 남자친구 베르트랑과 함께 학교에 다니며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도미니크는 베르트랑의 외삼촌 내외를 만나는 자리에 동행하게 되고, 거기서 그의 외삼촌 뤽에게 반하게 된다. 뤽과 그의 아내 프랑수아즈는 도미니크를 마치 딸과 같이 여기게 되고 종종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뤽 역시 도미니크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하고 뤽과 도미니크는 남들의 눈을 피해 만남을 가지게 된다.


시간이 지나 도미니크와 뤽은 단둘이 파리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게 된다. 해변에 누워서, 혹은 침대에 누워서 둘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뤽의 매력적인 몸짓과 말투 속에서 도미니크는 사랑을 느끼는 동시에 그가 떠나갈까 불안감도 느낀다. 보름의 시간이 지나고 그들은 함께 파리에 돌아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도미니크는 뤽이 변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도미니크는 오지 않는 뤽의 전화를 기다리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뤽은 그 뒤에 한 달간 미국으로 떠난다. 뤽이 떠난 사이 도미니크는 프랑수아즈와 만나게 된다. 프랑수아즈는 도미니크와 뤽 사이의 모든 일을 알고 있었고, 한없이 인자했던 프랑수아즈의 모습은 사라지고 불안하고 슬픈 모습만을 보인다. 도미니크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별의 슬픔에서 벗어난다. 거울에서 미소짓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아주 주의하며 내 방으로 다시 올라갔다. 음악은 끝나 있었고, 나는 음악의 끝부분을 놓친 것이 안타까웠다.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고는 놀랐다. 미소 짓는 내가 보였던 것이다. 미소 짓는 나 자신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혼자라는 것. 나는 나 자신에게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혼자, 혼자라고. 그러나 결국 그게 어떻단 말인가? 나는 한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이다. 그것은 단순한 이야기였다. 얼굴을 찌푸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떤 미소』(소담출판사) 200면

 


『어떤 슬픔』의 이 마지막 장면을 흔히들 이별을 경험한 여인의 성장과 성숙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나는 ‘성장’보다는 ‘회복’의 키워드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성장이라는 표현은 과거를 극복했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과거를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지만 미래는 반드시 현재나 과거보다 개선되고 발전되어야 하는가. 발전되어야 한다면 발전의 척도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그리고 그 척도는 바뀔 수는 없는 것인가. 지금은 발전 혹은 극복이라고 생각한 것이, 미래에도 동일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가. 극복 혹은 성장의 서사는 특정한 방향성에 집착한다는 측면에서 다소 위험할 수 있다. 특히 그것이 상대의 삶에 대한 평가일 때, 혹은 서로 다른 삶들을 나란히 놓고 비교한다고 할 때 더더욱 그렇다.


나는 도미니크가 다음 사랑에서 한층 성숙해지거나 더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사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은 불확실한 것이고 인간은 결핍된 존재이다. 한 차례의 사랑을 미소로 마무리한 도미니크는 한 남자를 사랑했던 여성으로 스스로를 기억하고 있다. 결핍된 두 존재가 만들어내는 관계는 불안할 수 있고 끝내 좌절될 수도 있지만, 그 관계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은 반드시 발전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만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장이 아니라 회복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하더라도 그 시간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회복에는 방향성이 없다. 회복 이상의 무언가는 요구되지 않는다. 그저 자아의 존재, 외부의 감각을 수용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자아의 작용만을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


사강이 그려내는 관계들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상성에서 벗어난 관계들이다. 온전한 가족의 사랑, 혹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연인의 사랑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사랑의 크기가 불균형한 관계, 무관심과 불안이 대립하는 관계를 그려낸다. 이들 이야기 속에서 독자는 윤리나 도덕의 잣대에서 벗어나 인간의 감정 그 자체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사강의 소설은 감각과 감정 그 자체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강이 그려내는 관계들은 겉보기에 비정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관계들 속에서만 살아온 사람이더라도 크거나 작게 사강이 그려내는 감정들에 공감을 하게 될 것이다. 완벽한 관계는 없고, 관계의 내밀한 역학에는 필연적으로 요동치는 구석이 있다. 사강의 소설을 통해 독자들은 지나간 감정들을 불현듯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부디 그것들을 소중히 다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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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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